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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육부터 직장생활까지, 영어에 파묻힌 대한민국

How Are You? 당신의 영어는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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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안되면 ○○스쿨~닷컴!’ , ‘왕!초보영어 탈출 ○○○톡~’ TV 광고나 대중교통의 안내방송에서 들을 수 있는 영어 사교육 업체들의 광고문구다. 한 방송국에서는 연예인들이 유명 영어 강사에게 영어를 배우는 형식의 프로그램이 방송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영어유치원이나 조기유학, TOEIC(이하 토익), TOFLE(이하 토플) 등과 같이 영어는 ‘배움의 대상’을 벗어나 하나의 ‘스펙’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과연 현 영어교육의 현실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본 기획에서는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고, 효율적인 영어교육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학생 시절 영어교육 직장까지 간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다 

“알다가도 모르겠는 영어…왜 배우나 싶기도 해요”

 

올해로 고등학교 2학년이 된 A양(18)은 영어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고3을 앞두고 있어 교과서는 이미 안 본지 오래고, 학교에서 ‘EBS 수능특강’ 등 각종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대비 교재를 이용한 수업을 듣고 있다. A양의 영어 공부는 학교 밖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유명 사교육 업체에서 운영하는 단과 학원을 다니며 학원 교재와 모의고사 등을 통해 수능 영어를 대비하고 있다. 영어에서 무엇보다 A양을 힘들게 하는 것은 한국어로 해석을 해도 이해하기 힘든 지문과 어휘들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영어랑은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아, 나 영어 진짜 못 하는건가?’라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주변의 유학을 다녀온 친구들의 존재도 A양을 작아지게 만든다. “가끔 해외에서 살다 온 친구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읽는 걸 보면 나도 유학을 다녀 왔다면 영어를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좀 그럴 때가 있어요.”

 

“장학금‧취업 위해 토익 공부…힘들지만 버텨요”

목요일 오후 6시, 수업이 다 끝난 서울 모 대학의 강의실에서 대학교 2학년 B군(21)이 토익 교재를 챙겨 밖으로 나온다. 이윽고 그는 어학원이 위치한 강남으로 가는 지하철에 오른다. B군이 다니는 학교에서 강남까지는 약 50분. B군은 그 시간이 아까워 지하철에서 문법과 어휘 공부를 한다. 그렇게 학원에 도착한 그의 주위에는 B군 또래의 대학생들이 나란히 앉아 수업을 기다리고 있다. 토익 수업이 다 끝난 밤 9시, B군은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도 휴대전화로 토익의 LC(듣기) 영역의 음성 파일을 듣는다. “항상 토익을 보면 LC 영역에서 집중력이 좀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익숙해지려고 파일을 가지고 다니면서 들어요.” B군의 소속 학과는 다른 학과들과 달리 장학금 요건으로 공인 영어 시험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거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가뜩이나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장학금이 필수다. 때문에 B군은 울며 겨자 먹기로 어학원의 ‘수강료 환급 보장 강좌’를 이용해 강의를 듣는다. B군은 가끔 힘들 때면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취업에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버텨낸다.

 

“직장에서 민폐 안 되려면…뒤처지지 않으려는 거죠”

 

불이 다 꺼진 회사 사무실 안.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고 있는 자리가 있었으니, ○○기업 입사 10년 차인 과장 C씨(38)의 자리다. C씨는 다른 직원들이 퇴근한 뒤 자신의 컴퓨터로 영어 인터넷 강의를 듣곤 한다. 어학원에서 운영하는 직장인반에 다니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학원과 직장의 거리가 멀고 야근이 잦아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아무래도 어린 친구들이 저보다 영어 능력도 더 뛰어나고 하니까, 외국 자료를 해석하거나 해외 바이어를 응대할 때 그 친구들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죠.” C씨는 자신의 영어 실력이 부족해 승진이 늦는 것 같다며 푸념했다. 실제로 승진 시험에 공인 영어 시험 성적을 반영하는 등 영어 능력을 중시하는 풍조가 기업계에 만연해 있다. “공부를 안 하면 뒤처지니까, 조금이라도 공부를 해 놔야 나중에 제가 업무를 맡게 되더라도 민폐가 안 되죠.”

 

*위에서 소개된 3명의 이야기는 허구의 인물을 이용하여 실제 상황을 재구성하였습니다.

 

사교육 열풍이 휩쓸고 간 ‘영어 공화국’ 

통계청에서 발표한 「학교급별 사교육 참여율」을 보면 2018년 기준 초중고 영어 과목 사교육 참여율은 평균 40.9%로 다른 언어 과목인 국어 사교육 참여율 평균 19.9%의 수치와 비교했을 때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또한 「학교급별 사교육비 총액」을 통해 그 추이를 살펴보면 영어에 집중하는 현상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통계청 자료 기준 전체 교과 사교육비는 2018년 기준 14조 2600억 원 정도인데, 이중 영어 과목 사교육비는 약 5조 7000억 원(전체 중 29.1%)으로 집계됐다. 또한 국어 과목 사교육비는 약 1조 4000억 원(10.2%) 가량으로 영어 과목 사교육비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최근 세계화에 따라 그 비중이 커지고 있는 제2외국어와 비교해보자. 제2외국어 과목의 사교육비 평균은 약 2800억 원 가량으로 전체 교과 사교육비의 약 5%만을 차지한다. 같은 언어 과목이지만 영어에만 집중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영어 사교육에 둘러싸인 것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초중고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토익 개발사인 미국 ETS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의 영어 사교육 참여율 또한 매우 높다. 토익 응시자들의 나이는 21~25세가 39.4%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고, 26~30세는 15%를 차지하는 등 전체 토익 응시자 가운데 20대가 전체의 54.4%를 차지했다. 20세 이하의 토익 응시자는 21.9%로 집계됐다. 토익은 한국에서 취업스펙의 하나로서 활용되는 만큼 20대의 응시율이 높은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성인과 직장인 중심의 온라인 영어회화 교육업체인 ‘스피킹 맥스’는 처음 내보였던 2011년 당시 20억 원에 불과했던 연간 매출액이 지난 2018년 239억 원으로 약 11배 가량 증가했다.

이처럼 끝없는 영어교육은 과연 우리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을까? 슬프게도 오랜 영어교육 끝에도 대화상에서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글로벌 교육기업 에듀케이션 퍼스트(EF)가 발표한 2017년 국가별 영어 구사 능력(EF)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80개국 가운데 56.27점으로 31위를 차지했다. 이는 말레시이아 등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일부 국가들에도 뒤처지는 수치다. 또한 우리나라 토익 응시생들의 평균 성적은 676점(990점 만점)으로 응시 국가 47개국 중 17위를 기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처럼 영어권이 아닌 독일, 벨기에와 비교했을 때 훨씬 낮은 점수다.

 

 

우리들의 ‘비뚤어진’ 영어교육, 무엇이 잘못됐을까 

독해, 학술 영어 위주 시험과 조기교육 열풍의 폐해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영어 시험의 평가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독해력 평가 위주의 시험 문제는 상대적으로 듣기와 말하기 등 회화 능력의 평가를 어렵게 하고, 학술적 용어가 주가 되어 일상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 이유다. 국내에선 2006년에야 토익에 스피킹 테스트 부문이 신설되었고, 그마저도 비즈니스용 영어에 한정되어 있어 일상에서의 활용도는 높지 않다. 수능 영어는 시험 특성상 말하기 문제의 도입이 불가능한데다 그나마 있는 듣기 문제도 지나치게 난도가 낮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듣기의 낮은 난도 때문에 응시자의 변별력 확보를 위해 독해 영역에서 지나치게 어렵게 출제하는 경향도 영어 학습 목표와 동떨어진 것이라며 비판받고 있다. 1등급 커트라인 원점수가 93점으로, 고난도였던 수능 영어 중 하나인 2014학년도 수능 영어 영역 B형이 대표적인 예다. 해당 시험에서 가장 높은 오답률을 기록했던 34번과 35번 문제의 경우 각각 진화심리학자의 논문과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의 기고문에서 지문을 발췌해, 해석을 해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국내 영어교육의 기형적 형태를 바로잡기 위해 원어민 강사를 고용하는 등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자격 미달 원어민의 강사 채용이나 원어민 서류 위조 문제 등 각종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영어 조기교육 열풍 또한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달으며 각종 폐단을 낳고 있다. 언어의 특성상 어린 나이대부터 해당 언어를 사용하면 나중에 처음 접하는 사람보다 월등한 실력을 갖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며 자녀를 영어유치원 및 해외어학연수에 보내는 ‘조기교육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정의 재정 및 기타 사정에 따라 조기교육 가능 여부가 확연히 갈리기 때문에 실력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영어유치원이 밀집한 서울 강남‧강동‧서초‧송파구의 영어유치원 월평균 교습비는 102만 3천원(2018년 기준)으로, 4년제 대학 연평균 등록금(671만원)의 약 2배에 달한다. 대학 등록금 이상의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는 가구만이 조기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보여주기식 영어교육’의 문제점

‘보여주기식 교육’ 또한 영어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요소 중 하나다. 지난 19일(일) 세계일보가 진행한 ‘2019학년도 1학기 기준 서울 시내 13개 대학교의 영어강의 비율’ 조사에 따르면, 4년제 대학 13곳의 평균 영어 강의 비율은 19.9%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연세대가 32%, 고려대는 38%, 성균관대가 40%의 비율로 영어강의를 개설했다. 해당 조사에서 본교의 영어 강의 비율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본지 조사 결과 2019학년도 1학기에 개설된 총 2,275개의 강의 중 464개의 강의가 영어 강의로 진행되어 20.4%의 비율을 기록했다. 영어 강의 개수는 전공 및 교양 강의를 모두 합친 것이다.

이렇듯 많은 대학에서 국제화를 명분으로 적지 않은 비율의 영어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대학에서 실제 강의는 한국어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본교 또한 2018-1학기까지 ‘부분영어강좌’라는 이름으로 한국어 혼용 강좌를 존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학생들의 학습 능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본교 박상주 교무처장은 “영어 강의의 목적은 영어 원서 및 용어 활용을 통해 졸업 후 외국인과 함께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될 때 소통에 어려움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인데, 한국어만 사용하게 되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몇몇 대학에서는 공인 영어 시험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기록해야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요건을 설정하는 경우가 있다. 본교의 법과대학도 공인 영어 시험에서 700점(토익 기준) 이상을 받았을 시에만 장학금 신청이 가능하다. 물론 지속적인 시험 준비를 통해 학생들의 영어 실력 발전을 유도하려는 학교 측의 취지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자칫 중등교육에 이어 고등교육에서도 영어 시험을 위한 사교육을 조장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청춘의 영어,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앞서 많은 대학이 국제화 등 명분에 맞춰 영어강의의 수만 늘리고 강의의 실효성을 잃었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명분에 맞춰 영어 강의 개수만 늘리기보단 대학생들이 실질적으로 영어 실력과 전공 지식을 함께 배양할 수 있도록 강의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교 영어교육과 최이진 교수는 “영어를 바탕으로 무엇인가에 대해 비판·창의적 사고가 같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본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에서는 기존의 영문법과 독해법 위주로 강의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다양성과 관련된 사회적 주제에 대해 영어로 토론하는 커리큘럼을 준비 중이다. 영어 실력과 사회학적 지식을 동시에 늘리며 실질적인 학습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영어교육의 방향성을 도모하는 것이다. 또한 연세대학교는 2020학년도 수업부터 필수과목이었던 <영어>를 전면 선택과목으로 운영한다. 학생들의 필요에 맞는 실질적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각 영역에 특화된 발표·글쓰기·독해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커리큘럼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2017년부터 ‘블라인드 채용’(선발 과정에서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응시자의 개인 정보를 배제하고 진행하는 채용 방법)이 공공 기관에서 사기업으로 확대되며, 입사 과정에서 공인 영어 시험의 중요성이 감소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작년(2018년) 7월 4년제 대학 3∼4학년생 1,37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1.5%가 ‘토익·토플 등 영어 점수를 올리기 위한 취업 사교육을 받는다’라고 답해 여전히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의 영어 스트레스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일부 기업들은 여전히 입사 과정에서 취준생들의 영어 실력의 확인을 위해 공인 영어 시험에서의 높은 성적을 요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올해 기준으로 한국전력에 입사하려는 취준생의 경우, 토익 700점 이상을 받아야 서류 전형에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전력 입사를 준비하는 취준생들은 실질적인 합격선은 더욱 높다고 말한다. 취준생 커뮤니티 「스펙업」의 게시물과 댓글에 따르면, 해당 시험의 성적이 850점 미만의 점수로 지원한 지원자는 서류 심사에서 통과는 하지만 토익 850점 이상의 점수를 기록한 지원자가 많은 것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불합격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취준생이 여전히 토익 고득점에 목을 매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토익 등 어학 시험의 성적과 지원자의 실제 영어 실력은 비례하지 않는다며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직무상 영어 점수가 필요한 사람만 영어 시험을 보는 풍토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입시 및 취업에서의 성공을 위한 하나의 스펙으로 자리 잡아 우열 가리기 수단이 되어버린 영어. 우리가 만들어 낸 하나의 ‘이데올로기’는 벗어날 수 없는 ‘공화국’을 만들고 그 속에 우리 자신을 가두어 버린 셈이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생각하는 교육 구조의 변화와 ‘오로지 스펙으로서 필요한 영어’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영어 공화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입시 또는 취업에 한정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될 때, 그에 맞춰 우리의 부담감은 줄어들 것이고, 비로소 영어는 소통 방식으로서의 언어라는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주영 기자(B881029@mail.hongik.ac.kr)

김채원 기자(won6232@maill.hongik.ac.kr)

박주형 기자(timpark0912@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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