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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접착제 한 조각의 힘, 테이프(T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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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지우개, 테이프 등.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찾게 되는 문구들은 내 책상이나 사물함 어딘가에 있을 것 같지만 막상 필요할 때 찾으려 하면 없거나 찾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그중 접착력을 통해 무언가를 봉하거나 벽 등에 붙이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는 테이프(Tape)는 그 편리함 덕에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되었다. 스테이플러만 들고 게시판에 홍보 포스터를 붙이러 다닐 때엔 그 짧은 셀로판 조각이 매우 간절하게 생각난다.

 

편리한 접착 조각의 탄생

접착용 테이프가 사용된 최초의 기록은 1676년 류트(16세기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매우 유행했던 현악기) 제조공이 악기를 만들면서 피스를 고정하려고 풀을 바른 조그만 종이를 사용했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당시의 테이프는 접착력을 지닌 작은 조각이었을 뿐 우리가 잘 아는 지금의 테이프와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1920년대에도 제빵사, 식료품 장수, 그리고 정육업자 등이 자신의 제품을 포장하기 위해 셀로판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음식이 눅눅해지거나 상하는 것을 막을 정도의 봉합력은 가지지 못했다. 

193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접착용 셀로판테이프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포스트잇(Post It), 스카치테이프(Scotch Tape) 등의 제품으로 유명한 기업 「3M」의 전신인 미네소타광업회사의 엔지니어 리처드 드류(Richard Drew, 1899~1980)와 그의 팀이 1년 이상의 연구 끝에 1925년 셀룰로오스 테이프인 ‘스카치테이프’를 제작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다만 발명 초기에는 테이프의 가장자리에만 접착제가 붙어 있었다는 점이 지금과 다르다. 이는 자동차 등에 페인트 칠을 할 때 색 사이의 경계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었던 스카치테이프를 작업이 끝난 후 쉽게 떼어 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가장자리에만 접착제가 발려있다 보니 점착력이 약해 일을 끝내기도 전에 테이프가 자꾸 떨어지기 일쑤였고, 이에 고객들로부터 상품이 ‘인색하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바로 여기서 스카치테이프라는 이름의 유래가 탄생했다. 당시 ‘인색한’이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던 단어가 바로 ‘스카치(Scotch)’였기 때문이다. 회사는 인색하다는 비판을 오히려 상품의 이름으로 삼았고 이 이름은 오늘날까지 셀로판테이프를 지칭하는 용어로까지 정착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 탄생한 테이프는 대중에게 급속도로 퍼져나가며 발명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테이프, 그 엄청난 활용에 대하여

일상 속에서 우리는 투명한 셀룰로오스 테이프를 주로 이용하지만 세상에는 의료용 테이프, 덕트 테이프 등 용도에 따라 다양한 테이프가 존재한다. 그중 자신만의 특별한 기능을 통해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테이프 몇 가지를 알아보자.

 

“인체에 적합한 의료용 테이프”

 

의료용 테이프는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보통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상처 부위를 보호하거나 주삿바늘 등의 의료기기를 신체에 고정하는 용도로 쓰인다. 이는 의료 행위뿐만 아니라 부검 과정에서도 쓰이는데, 실제로 한 부검 전문의는 테이프의 끈적거리는 부분이 증거를 보존하는 데 있어 놀라울 정도로 유용하다며 테이프를 예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맨살에 붙여도 자극이 덜한 의료용 테이프를 이용해 얼굴의 살을 잡아당겨 고정하는 ‘얼굴형 메이커’가 인기를 얻고 있다.

 

“다재다능 덕트 테이프(Duct tape)”

미국의 덕트 테이프는 주로 포장이나 수리에 쓰이는 테이프로 우리에게 익숙한 청테이프의 원조 격인 제품이다. 이는 본래 1942년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탄약상자에 습기가 차는 것을 막기 위해 존슨앤 존슨(Johnson & Johnson)사가 개발했으나, 이후 민간에 보급되어 환기구 공사에 주로 사용되면서 배관을 뜻하는 ‘덕트(Duct)’와 결합하여 덕트 테이프라고 불리게 되었다. 오리를 뜻하는 ‘덕(Duck)’이라는 단어를 붙여 ‘덕 테이프(Duck Tape)’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마치 오리 깃털처럼 방수가 잘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덕트 테이프는 우수한 접착력과 내구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데,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Forbes)>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 도구 20가지 중 하나로 덕트 테이프를 선정하기도 했다.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이지 않으면 ‘WD-40(항공우주 분야에서 부식 방지 등을 위해 개발됐으나, 이후 민간에서 윤활제로 상용화된 스프레이형 제품)’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데 움직이면 ‘덕트 테이프’를 사용하라”는 말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행하기도 했으니 덕트 테이프의 활용도가 얼마나 좋은지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덕트 테이프는 우주탐사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1970년 4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의해 발사된 아폴로 13호 폭발로 인한 수리 작업 당시 덕트 테이프가 사용된 것이다. 덕분에 아폴로 13호는 무사히 지구로 귀환할 수 있었다. 이에 우주탐사 관련 잡지에서는 ‘아폴로 13호를 구한 13가지’ 중 하나로 덕트 테이프를 꼽기도 했다. 이외에도 1972년 아폴로 17호가 달 착륙에 성공했을 때 달 탐사 차량에 덕트 테이프가 사용되었다. 또 덕트 테이프는 항공기와 전투 무기 수리에도 활용되었다. 베트남 전쟁(1960~1975) 당시 헬기 정비공들에게 ‘시속 100마일 테이프’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덕트 테이프로 헬기를 수리하면 시속 100마일(160km)의 강풍에도 견딘다는 의미였다.

 

“마스킹 테이프의 재발견!”

 

마스킹 테이프는 얇은 종이 테이프로 1925년 개발되어 페인트를 칠할 때 벽지, 몰딩 등에 붙여 페인트가 묻지 않아야 할 부분을 가리는 데 주로 쓰였다. 손으로 찢어 사용하기 쉽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으며, 떼어냈을 때 점착면에 자국이 남지 않으며 여러 번 붙였다 떼었다가 재점착이 가능하단 점이 특징이다. 가장 싼 상아색의 민무늬 마스킹 테이프가 가장 흔하며 임시고정용으로 많이 쓰여 건축학과나 입시 미술을 한 사람들에게 친숙한 제품이기도 하다. 한편 마스킹 테이프가 생활소품 및 꾸미기 용도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단색이던 테이프에 여러 색상을 입히거나 무늬를 넣은 화려한 마스킹 테이프가 출시되었다. 이는 일명 ‘다꾸’라고 불리는 ‘다이어리 꾸미기’ 열풍과도 연관되는데, 뉴트로(New-tro, 새로운 복고) 열풍으로 디지털 세대가 아날로그 감성이 담긴 종이 다이어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 요소 중 하나로 마스킹 테이프가 주목받은 것이다. 이는 싸고 흔한 제품이었던 테이프가 디자인과 재질의 발전을 통해 일종의 상품으로 인정받으며 그 가치가 더욱 상승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테이프 예술의 한 분야가 되다, 

‘테이프 아트’

출처: 연합뉴스
출처: 연합뉴스

어느덧 테이프는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 잡기도 했다. 테이프를 사용하는 ‘테이프 아트’는 다양한 색과 크기의 테이프 조각을 이용해 대상을 표현한다. 국내 테이프 아티스트인 조윤진이 테이프 아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테이프 아트가 가진 의미를 보여준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대학 학부 때 누군가 강의실 벽에 표현한 테이프 작업을 떠올렸고, 그때부터 돈이 안 드는 재료, 제한된 것부터 시작해보자는 생각으로 테이프를 사 모으며 테이프 아트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다가가기 쉽고 접근성이 좋은 테이프의 물성이 빛을 발한 것이다. 그녀는 청와대×아티스트 협업 전시인 <어서 와, 봄>展에서 ‘올해의 인물’을 주제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인물과 세계를 놀라게 한 인물을 표현한 테이프 아트를 전시하기도 했다. 쉽게 붙였다 뗄 수 있다는 특정 테이프의 특성 덕분에 이는 거리예술에 활용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작년에 열린 <서울거리예술축제>의 ‘도미노 퍼레이드’에서는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테이프 아트를 통해 자유롭게 서울 세종대로를 꾸미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테이프는 단순한 기능 안에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오늘 밤 집으로 돌아가 책상 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테이프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남들이 아직 찾지 못한 테이프의 새로운 역할을 발견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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