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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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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사람을 얼마나 악하게 만드는가. 이를 짐작하게 하는 무서운 실험이 하나 있다. 바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필립 조지 짐바르도(Philip George Zimbardo) 심리학 교수에 의해 진행된 이 실험은 단지 실험일뿐이지만 기자는 왠지 모르게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교도관의 잔인성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진행된 일종의 역할극이다. 이 실험은 육체적, 정신적 장애가 없고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대학생 참가자 24명에 의해 진행됐다. 24명의 선발인원 중 18명이 본격적인 실험에 참여했다. 9명은 교도관 역할을, 9명은 죄수 역할을 맡았으며 각 역할은 무작위로 정해졌다. 교수는 이들이 실험에 몰입할 수 있도록 각각 교도관 옷과 죄수복을 입혔으며 교도관 역할을 맡은 이들에겐 죄수를 제압할 수 있는 무기를 소지할 수 있게 했다.

실험이 진행될수록 평범한 대학생이던 이들은 점점 자신이 맡은 역할에 몰입했으며 결국 본래의 자아를 잃고 역할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교도관 역을 맡은 대학생들은 소동을 일으키는 죄수를 통제하기 위해 엄격한 규칙을 만들어 죄수 역을 맡은 대학생들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했을 뿐만 아니라 성적 학대(性的虐待)를 가하기도 했다. 이렇게 교도관 역을 맡은 대학생들은 권력을 쥐었다는 생각에 권위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죄수 역을 맡은 대학생들은 본인이 진짜 죄수가 되었다고 생각해 권위에 무기력하게 굴복했다. 결국 2주를 계획한 이 실험은 ‘인간의 행동은 주어진 환경과 역할에 의해 결정된다’와 ‘권력이 인간을 악하게 한다’는 결론을 보여주고 6일 만에 중단됐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조작되었다는 폭로에도 불구하고, 해당 실험이 함의하는 바는 변치 않는다. 기자는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도 발생한 권력에 따른 불합리의 근본적인 원인은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이해 부족이라 생각한다. 집단에 우위가 존재한다고 해서 무조건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이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에서 우위에 있는 자들이 자신이 맡은 역할은 ‘억압’과 ‘괴롭힘’이 아니라 ‘선도’와 ‘관리’였다는 것을 제대로 알았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남에게 상처 줄 권리’가 아니라 ‘선도 권한’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권력으로 상처받는 이들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이란 것이 너무 달콤한 탓일까, 모두가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상황에서 느끼는 우월감 때문일까. 권력을 가진 이들 중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이들은 적은 듯하다. 사회 속 어느 집단에나 우위 관계가 존재한다.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선배와 후배, 사수와 부사수 모두 어느 집단에서나 흔히 볼 수 있으며 위계가 존재하는 역할들이다. 이처럼 우위는 어느 집단에나 존재하지만, 많은 집단에서 역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부조리가 발생한다. 뉴스나 SNS를 보면 심심치 않게 ‘상사 대처법’, ‘꼰대’, ‘태움’ 등의 단어를 볼 수 있으며 ‘꼰대’를 소재로 한 글과 일러스트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산다. 선도와 가르침을 주어 후배들이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이들이 정작 후배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복종이며 주는 것은 스트레스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주최자들의 조작이라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지만, 권력을 쥔 자의 비도덕적 행위가 비극적 결말을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기자는 바람직한 역할의 분배가 이뤄지기 위해선 권력을 가진 자가 본인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 사회는 권력의 우위에 의한 부조리가 만연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 높은 위치에 있는 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역할’이지 ‘특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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