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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뒤에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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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마지막 S동을 쓰게 되었다. 기사를 쓰는 지금도 곧 퇴임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2년 전 1학년 2학기, 딱 이맘때쯤 신문사에 들어와 수습기자로서 신문사에 적응하고 있었던 기자는 ‘어떤, 바쁜 일을 하겠다’라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신문사에 지원했다. 그러나 당시의 기자가 생각했던 신문사와 지금의 기자가 느끼는 신문사는 사뭇 다르다. 

기자는 단지 신문사에서 만들어내는 ‘신문’, 그리고 이를 위한 업무만을 생각하며 홍대신문사에 입사했다. 그러나 기자가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신문사에서의 모든 것은 결국 ‘사람’과 연결된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신문사 존재의 목적은 완성도가 높고 의미 있는 신문을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결국 그 신문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었다. 이런 기자를 보고 누군가는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신문사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게 기사가 아닌 사람들이라니. 하지만 기자에게는 인쇄된 지면보다는 그 과정에서 고생하며 큰 노력을 쏟은 선후배, 그리고 동기 기자들을 비롯한 홍대신문사의 많은 구성원들이 더 깊게 남았다. 그렇다고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 기사를 놓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자부한다.

기자뿐만 아니라 신문사의 많은 기자들은 신문사를 통해 많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S동에서의 생활을 지면에 풀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마 그 과정에서 기자들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도 가장 힘들게 하는 것도 모두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어쩌면 기자 또한 알게 모르게 누군가를 기쁘게도, 아니면 슬프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힘들게 쓴 기사가 의미 있는 결과를 끌어낼 때 기자들은 보람을 느꼈고, 기사의 작성이 도저히 진전되지 않을 때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 이렇게 결국 신문을 만드는 일이라고만 단순하게 생각했던 기자 활동은 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일이었다. 동료 기자들, 신문사의 구성원들부터 취재원들, 그리고 그 글을 읽는 사람들에 의해 기사는 만들어졌다. 이는 기사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글 쓰는 능력이 늘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글을 읽거나 쓰는 것에 있어 확실한 기준은 생겼다. 바로 기사를 읽고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에 있어 독자가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이더라도 이해에는 무리가 없어야 한다는 기준은 어느 글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물론, 기자가 이러한 기준을 처음부터 확고히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기준으로 기자가 써온 기사들을 돌아보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많아 보여 가끔 1, 2학년 때의 기사를 보면 부끄럽기도 하다.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명백한 거짓말이겠지만, 기자는 이렇게 지면을 통해 연결된 사람들 덕분에 신문사에 입사한 순간을 한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다. 부족해진 시간, 어렵게만 다가오는 마감 등은 신문사 활동을 어렵게, 가끔은 싫게도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신문사의 기자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절대 다른 곳에서 얻지 못할 경험들과 인연들을 만들었기에. 누군가는 “그래. 그러니까 그 힘들고 굳이 안 만들어도 될 경험을 왜 해야 하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자는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했던 그 시간들이 소중하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신문으로서 기사로서 엮어온, 또는 맞닿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모든 신문사 기자들의 바람이듯, 그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지면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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