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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경제 성장, 그리고 그 이면이 공존하는 곳 ‘한강’

서울 도심 그 어느 곳에서든 우리는 서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한강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말로 큰 물줄기를 의미하는 ‘한가람’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한강은 도시 ‘서울’ 그 자체를 대변하기도 한다. 한강을 생각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돗자리를 깔고 치킨과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부터 함께 나들이하는 가족들, 강가를 따라서 운동하는 사람들, 그리고 연인들이 불꽃 축제를 즐기는 모습까지. 오늘날의 한강은 각자의 방식으로 모처럼의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도시의 발전 과정을 함께 해오며 지금도 우리 삶에 밀접히 맞닿아 있는 한강. 그 물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 보자.

도시의 역사가 흐르는 한강 

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가 증명하듯, 물을 쉽고 편리하게 접할 수 있는 강가는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터전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로, 한강 중류에 위치한 현재의 서울 부근과 북한강 유역의 춘천 부근, 한강 하구의 여러 섬에서 발견된 구·신석기 유적들은 우리 조상들이 선사시대부터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생활해왔음을 보여준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한강 유역의 점령은 곧 패권을 쥐었음을 의미했다. 실제로 삼국시대의 백제, 고구려, 신라 모두 각국의 전성기에 한강을 차지했다.

▲광진나루터의 옛모습/출처: 광진구청

그렇다면 한강 지역이 수도가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조선 건국 당시 한강이 수행한 국가적 역할에 주목하여 한양을 도읍지로 정했다. 당시 한강은 농경사회인 조선에 중요한 생업의 터전이 되었으며, 안보적 관점에서는 수도를 보호하는 자연적인 요새가 되었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상인집단 형태의 경강상인(京江 商人)이 등장하며 한강은 세금과 물품을 운반하는 수상 교통로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외에도 조선시대의 한강은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양반들의 사랑을 받는 풍류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들은 한강 주위에 정자를 짓고 물놀이와 배낚시를 하며 여유를 즐겼다. 이렇듯 이전부터 한강 변에서 생업활동을 하고 여가생활을 즐기는 이들에게 한강은 ‘삶’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며 한강의 입지는 이전에 비해 현저하게 좁아졌다. 철도와 도로를 중심으로 하 루빨리 조선을 침략하고자 했던 일본의 입장에서 육로를 단절시키는 한강은 그저 걸림돌에 불과했다. 이에 빠르고 많은 양의 화물을 옮길 수 있는 교량 건설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그 결과 1916년 4월에 시작된 다리 공사가 1년 뒤 완공되며 한강에 대한민국 최초의 다리 ‘한강인도교’가 놓였다. 한강인도교가 일본의 조선 물자 수탈에 박차를 가하자, 조선인들은 극심한 생활난과 억압을 이기지 못하고 한강인도교에서 투신자살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당시 한강인도교 곳곳에는 “잠깐, 한번 더 생각하시오”라는 문구가 쓰인 팻말이 걸려있었다고 전해진다. 가혹했던 일제강점기를 지나 큰 비극이었던 6·25 전쟁 또한 한강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정부의 거짓 녹음 방송을 믿은 국민들은 총소리가 가까이 들려온 후에야 피난길에 나섰다. 그런데 국민들이 피난에 한창이던 1950년 6월 28일 새벽, 정부군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한강인도교를 폭파했다. 남아있던 광진교마저도 군에 의해 무너지자 당시 다리 위로 피난을 가던 민간인 800여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이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난 9월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의 한강대교에 ‘한강인도교 폭파참사 희생자 위령비’가 건립되기도 했다. 6·25 전쟁 이후 새로운 시작을 꿈꾼 대한민국은 개발의 열기로 가득 찼고, 이는 한강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정책을 통해 전국에 대규모 공업단지를 만들면서 도시화 또한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이는 대한민국의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강의 기적’이 시작된 것이다. 또한 농촌에서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 상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도시의 전기, 상하수도,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이 모자라게 되자 한강 중심의 서울 개발이 해법으로 떠올랐다. 이에 한강대교와 영등포 간의 강변로가 개통되었고, 여의도에는 새 도로와 주택단지가 생겨났다. 이때 강남에 경부 고속도로 건설과 함께 한남대교가 착공되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오늘날 ‘강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이를 계기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당시 주요 관공서와 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되자 정부는 강남과 강북 간의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실 △영동 △천호 △성 수 △성산 △원효 △반포 △동작대교를 차례로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발전에 긍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급속한 도시화와 개발 탓에 극심한 환경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본래의 기능을 잃고 몸살을 앓는 한강을 위해 1980년대부터 치수(治水), 미관, 오염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다룰 계획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지만 이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에 이르러서야 구체화되었다. 올림픽 개최를 통해 국제 사회에 비춰질 한강의 모습을 걱정한 정부가 ‘한강종합개발 계획’을 시행한 것이다. 이 사업 시행 결과 한강 주위에 210만평 규모의 한강시민공원이 생겨났고, 오늘날과 같은 여러 체육시설과 편의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밝고 활동적인 한강의 모습은 1990년대가 지나서야 형성된 것이다.

▲1960년대 초반 한강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

한강, 시민들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다 

 

▲서울세계불꽃축제의 모습/출처: 한화 홈페이지

한강시민공원이 생기면서 한강은 누구나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한강에 설치된 다양한 체육시설과 레저시설은 시민들이 일상에서 운동과 레저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체육·레저공간으로서의 뛰어난 기능을 자랑하는 한강은 각종 운동 동호회의 모임 장소로도 많이 이용되면서 누구나 언제든지 이용 가능한 만남의 공간으로 인정받고 있다. 운동뿐만 아니라 한강에는 예술·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그 대표적 예시인 뚝섬 전망문화콤플렉스  ̒자벌레’는 아마추어 예술인들을 위한 전시·공연장을 무상으로 대여해주고 시민들에게 유익한 예술작품들을 선보이는 공간이다. 또한 시민들이 문화·여가생활을 도심 속에서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한강사업본부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반포와 여의도에서 열리는 ‘밤도깨비 야시장’, 바쁜 현대인의 뇌를 쉬게 해준다는 취지의 ‘멍때리기 대회’, 그리고 한강과 인근 유적지를 전문해설가와 함께 탐방하는 ‘한강역사탐방’ 프로그램이 그 예이다. 특히 2000년부터 매년 진행된 ‘서울세계불꽃축제’는 역사가 오래된 만큼 시민들부터 외국인들까지 100만 명 이상이 찾는 한강의 대표 축제다. 이처럼 한강은 바쁜 도심 속 시민들에게 휴식과 문화생활을 제공하면서 서울의 매력적인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한강에 사는 서로 다른 사람들 

 

▲한강 조망권인 아파트를 건축하는 모습

한강은 휴식을 ‘즐기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곧 우리가 ‘사는 곳’이기도 하다. 주거지를 평가할 때 언급되는 역세권 (지하철), 학세권(학군), 숲세권(녹지) 등의 단어를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 을 것이다. 이른바 ‘O세권’은 부동산 신조어로서 집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들인 교통, 학군, 자연환경과 얼마나 밀접한지를 드러낸다. 특히 한강 변에 위치한 아파트나 주택들은 이른바 강(江)세권을 가진 부동산으로, 강남과 여의도와 같은 주요 업무지구와의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장점 덕에 많은 수요를 가진다. 덕분에 한강 조망권을 가진 아파트들은 날이 갈수록 그 경제적 가치가 오르고 있으며 한강 주변 아파트는 곧 성공과 가치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지만 한강이라는 공간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어떤 사람들에게 한강은 다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지난 2018년 12월, 서울 아현동 재건축으로 집에서 쫓겨나 노숙 생활을 하던 30대 철거민 박씨가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은 빛나는 발전 뒤 그늘진 그림자를 여실히 보여준 일이었다. 서울 내에서 재건축이 시행되자 그곳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노숙 생활을 하며 강변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한강은 경제적 발전과 성공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소중한 쉼터를 잃은 사람들이 여 전히 존재한다.

서울이라는 넓고도 좁은 지역에서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이동하는 현대인들에게 한강은 언제나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의 일상 속 자연스레 녹아든 한강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적 성장, 그리고 그에 가려진 부작용과 비극적인 사회의 이면이 존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오늘도 우리는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한강을 마주한다. 유리창 너머 흐르는 한강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참고문헌]
고건, 『한강의 어제와 오늘』,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1.
서찬석, 『한강 Road』, 어린른이, 2011.
김재완, 『구한말- 일제강점기 한강 중류지역에 있어서 교통기관의 발달에 따른 유통구조의 변화』, 2000년.

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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