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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는 변신 괴물이라서 그걸 보거나 만진 사람에 따라 변하지.”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타임슬립 1932』(2015) 속 서대문구와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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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의 『타임슬립 1932』는 고등학생 전율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되돌아가는 타임슬립(time slip)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전율은 DVD 가게 아르바이트와 영화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낸다. 역사와 관련한 영화를 찍던 전율은 우연히 옛날 물건을 만지게 되었고, 그 물건이 존재했던 시대로 돌아가게 된다. 그 시대에서 역사 시간에 배웠던 인물뿐만 아니라 조명 받지 못한 인물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흔히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을 들려주기도 한다. 찬바람이 부는 방학 중 어느 날, 기자는 주인공 전율이 만났던 역사의 현장을 만나기 위해 사건의 순서에 따라 역사를 따라가 봤다.

현아가 동상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민중의 구토상이 빗속에서 토하고 있는 것 같아.” “뭐라고?” “민중의 구토상이…‥.” 현아가 손으로 가리킨 자리에 조선 시대 사람들 모습이 담긴 조각상이 서 있었다. 그것도, 이순신 동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았다. 서민들이 배 위에 올라 방패막이를 하는 모양새였다. 몇몇은 창을 휘두르고 있었고, 몇몇은 엎드려 토악질을 하고 있었다.

전율이 임진왜란과 관련한 영화를 찍다가 소품으로 사용된 검을 만지게 되고 그 검이 존재했던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흔히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주역을 이순신 장군만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율이 만난 역사적 현장에는 이순신 장군 뒤로 많은 이가 있었다. 그래서 소설 속 현재는 이후 광화문 거리에 이순신 장군 동상 대신 조선 시대 수군들의 조각상이 세워졌다. 기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기위해 광화문 거리로 향했다. 그곳은 탄핵 찬성, 사드 반대 등의 시위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새로운 역사를 담고 있었다. 하루 동안 역사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나섰던 길이였기에 이전에 수없이 갔었던 광화문 거리가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그렇게 많은 인파를 뒤로하고 기자는 이순신 장군을 찾아 나섰다. 기자가 찾아간 광화문 거리에는 조선 시대 수군들의 조각상이 아닌 이순신 장군의 동상만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평소라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있는 이순신 장군만이 보였겠지만 이날은 평소와 다르게 그 뒤로 수군들의 함성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내가 끌려간 곳은 정말, 독방이었다. 두꺼운 철문을 열자 한 평도 채 안 되는 좁은 공간에 차가운 돌바닥이 검은 입을 벌린 채 날 기다렸다. 들어가는 순간 밑도 끝도 없는 바닥을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았다.

기자는 조선시대 수군들의 함성을 뒤로한 채, 일제강점기 때의 수많은 독립투사의 외침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서대문 형무소는 을사조약 이후 일제가 국권 침탈을 시작하면서 만든 큰 교도소이다. 기자가 그곳을 찾은 날이 토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현장학습을 온 어린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 가슴 아픈 역사를 직접 느끼고 있었다. 기자는 꽤 오랜만에 서대문 형무소를 찾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견학을 오곤 했지만 그 이후로는 처음이다. 하지만 그곳을 찾을 때마다 느껴지는 묘한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기자는 전율이 1920년대로 돌아가 지남철 아저씨를 만났던 옥사를 가장 먼저 찾아갔다. 지남철 아저씨는 독립 운동가였고 누군가의 밀고로 옥사에 갇히게 되었다. 기자는 좁고 한기가 가득한 감옥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소설 속 ‘지남철’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분명 이 옥사에서는 역사 시간에 배운 독립투사 외에도 지남철처럼, 조선시대 수군들처럼 주목받지 못한 더 많은 독립투사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햇빛이 가득하고 평화로운 바깥과는 달리 그곳은 너무나도 차갑고 쓸쓸했다. 옥사에서 나오자 마주한 서대문 형무소 한 곳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태극기는 유난히 찬란하다. 그렇게 많은 여운을 남긴 채 발걸음을 돌렸다.

청년의 타오르는 분노와 열정이 불길보다 더 이글거리는 게 느껴졌다. 저 눈빛, 전율이 담긴, 저 눈빛. 그는 왼손에 틀어주니 두꺼운 책을 흔들며 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도 뒤를 따랐다. 이대로 있으면 깔려 죽을지도 모르는데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우린 기계가 아니다. 노동 시간을 엄수하라. 우린 인간이다!” 그의 작은 체구에서 사자후가 뿜어져 나왔다.

이번에는 전태일이다. 기자는 소설 속 주인공인 전율을 따라 청계천 거리로 향했다. 전태일은 청계천 앞 평화시장의 재단사였다. 그는 재단사로 일하며 노동착취에 대해 인식하였고, 부당한 근로기준법을 고발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자 1970년 11월 13일에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을 외치며 자신의 온몸에 석유를 붓고 불을 붙였다. 이 사건은 노동권에 대한 많은 변화를 일으켰지만 그 누구보다도 이 세상의 변화를 갈망하던 젊은 청년 전태일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없다. 소설 속 전율은 1970년으로 돌아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려 하는 전태일과 만나 역사 속에서 그의 죽음을 지운다. 소설 속에나마 그의 아름다운 내일을 열어준 것이다. 그 후 노동시장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현재 1주일에 40시간, 하루 8시간의 노동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최저시급은 6,470원으로 노동자들은 조금이나마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 이는 전태일의 죽음으로 지켜진 노동자들의 권리이다. 기자는 청계천 거리를 거닐며 청년 전태일의 소리를 영원히 기억할 것을 다짐했다.

기자는 서대문구와 종로구에서 전율과 함께 역사를 되돌아보며 역사 속 숨겨진 인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기자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많은 사람의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저 역사 시험을 위해 유명 인물에만 집중했던 점을 반성하였다. 기자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보았던 크게 쓰인 문구를 마음속에 되새기며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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