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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문화인가 범죄인가?

알페스와 딥페이크, 그리고 젠더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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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던 달이었다. 동성애 소설인 알페스(RPS)와 딥페이크(Deepfake) 영상 유포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청와대에 처벌 요청 청원이 올라오는 등 전국적으로 이슈화됐었고, 이는 또다시 성별 간의 갈등을 불러왔다. 이는 비단 1월만의 문제가 아니다. 딥페이크 문제의 경우 이미 작년부터 논란이 되기 시작하여 작년 3월 관련 법이 제정됐었고, 이외에도 딥페이크 영상과 알페스가 주로 소비되는 트위터 내에서는 오래전부터 스스로 음란물을 찍어 올리는 ‘일탈계’와 같은 음란물 유포 문제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지적되어 왔었다. 그런데도 이러한 음란물 유포 문제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낯선 이름, 알페스와 딥페이크 

딥페이크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여 영상에 나온 실제 인물의 얼굴을 *딥러닝해 다른 영상에 합성하는 영상편집물을 말한다. 4차산업과 함께 진화해 온 딥페이크 기술은 대상의 표정과 입 모양마저 완벽히 복사하는 특성 때문에 실제 영상과 같은 자연스러움을 갖는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 때문에 실제 인물을 포르노 영상과 합성하는 일명 ‘딥페이크 포르노’를 양산하는데 이르렀고, 여러 음란물 사이트와 SNS에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었다. 

이와는 다르게 알페스는 소설형식의 글로 된 창작물, 일명 팬픽이다. 알페스는 알파벳 RPS의 한국어 발음인 ‘알피에스’의 줄임말로, 정확한 명칭은 ‘Real People Slash’이다. 이때 ‘Slash’는 동성애를 소재로 한 팬 픽션의 한 갈래이다. 국내 알페스의 탄생은 90년대 초 PC통신의 발전과 아이돌 팬덤 문화의 확산이 맞물리면서 H.O.T., 젝스키스 등 1세대 아이돌 관련 동아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여 년간 음지에서 연재된 알페스는 2010년 초반 트위터가 한국에서 유행하면서 트위터로 거처를 옮겨가게 되었다. 하지만 알페스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실제 인물을 대상으로 동성 간의 성관계를 묘사하는 창작물이기 때문에 민감한 문제였고, 결국 지난 1월 9일(토) 래퍼 손심바가 개인 SNS 계정을 통해 이를 공론화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알페스는 성희롱의 일환이므로 근절되어야 한다”라는 취지로 작성된 래퍼 손심바의 글은 이내 사회적으로 큰 파급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알페스의 주 이용층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여성 회원 위주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큰 반발이 일어났고 이에 대립하여 남성 회원 위주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알페스와 더불어 알페스 이용자들, 특히 여성들을 비판하는 이른바 ‘편 가르기’가 시작되며 젠더 갈등으로 이어졌다. 1월 11일(월), 알페스의 처벌을 요청하는 “미성년 남자 아이돌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 '알페스' 이용자들을 강력히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등록되어 20만여 명이 청원에 참여하면서 알페스의 심각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어 이틀 뒤인 1월 13일(수), 딥페이크의 처벌을 요청하는 “여성 연예인들을 고통받게 하는 불법 영상 '딥페이크' 를 강력히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등록됐고, 하루 만에 30만 명에 이르는 동의를 얻으면서 수면 아래 묻혀있었던 딥페이크 문제 역시 재점화되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팬 문화 VS 처벌받아야 할 성범죄

알페스 사태가 젠더 갈등으로 번졌던 만큼, 알페스에 대한 찬반양론 또한 의견이 분분하다. 찬성 측은 알페스는 하나의 팬 문화이며, 이를 제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알페스가 성 착취라는 지적에 대해 알페스는 팬들의 ‘망상’에 불과할 뿐이라며 반박한다. 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에 따르면, 알페스는 유명 아이돌 멤버들이 서로를 도와가며 성장해가는 과정, 즉 성적인 내용을 담은 ‘성애적’인 소설이 아닌, 멤버들 간의 브로맨스에 더 집중한 소설이며, 이러한 멤버들 간의 관계성과 친밀성은 아이돌 그룹의 인기도와 직결된다. 또한 “성착취는 실질적으로 우위의 권력을 지닌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성적으로 이용하거나 실제 성범죄로 이어지는 행위”라며 팬덤과 연예인은 이러한 권력 관계에 놓여있지 않기 때문에 알페스는 성 착취로 보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일부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알페스가 논란이 된 것 또한 의도적인 움직임이며, 알페스 자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왔던 팬 문화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알페스는 1990년대 H.O.T, 젝스키스, god와 같은 남성 아이돌 그룹이 흥행했을 때부터 팬덤 사이에서 창작됐으며, 인터넷이 활성화된 2000년대 동방신기, 신화, 빅뱅을 대상으로 한 알페스가 창작됐었다. 이후 현재까지 창작 및 소비가 계속됐으나, 소속사 측은 이를 일종의 마케팅 수단으로 보고 암묵적으로 용인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또한, 알페스 논란이 부각되기 시작한 시기가 남초 커뮤니티 AI 챗봇 이루다 성희롱 문제가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에,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전부터 향유되어온 문화인 알페스를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황진미 문화평론가는 “논의가 나온 배경 자체가 ‘남성만큼 여성에게도 도덕적 흠결이 있다’라고 주장하려는 목적의 보복적 패러다임”이라며, 알페스 논란은 남성들 스스로가 일으킨 수많은 도덕적 해이를 가리기 위해 발생한 사태라 비판하였다.

그러나 알페스를 성범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알페스는 문화가 아닌 범죄에 불과하다며 비판한다. 그들은 먼저 알페스에 미성년자가 연루된 점을 지적한다. 이는 대상이 된 아이돌과 알페스 이용자에게도 해당하는 문제다. 앞서 언급했던 일부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성행위와 같은 민감한 내용이 미성년자들에게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성인 인증 등 나름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글로 작성된 알페스의 특성상 블로그, SNS 게시물 등으로 공유할 수 있고, 이는 무분별하게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알페스의 처벌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알페스는 망상이며, 성 착취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에도 강력하게 반발한다. 국민의 힘 하태경 의원은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성 착취물’은 법률상 객관적으로 확립된 용어로, 음탕하고 난잡하다는 뜻의 ‘음란물’이 갖는 의미와 달리, ‘성 착취물’은 미성년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 폭력성을 강조하고 있다”라며 “실존 인물을 소재로 당사자의 동의 없이 노골적인 동성 간 성행위 장면을 묘사하고 또 온라인에서 돈을 주고받고 광범위하게 유포하는 행위는 그들만의 아름다운 음지 문화가 아니라 성 착취물이다”라고 언급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성범죄는 법률의 영역이며, 젠더를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알페스 논란이 여성을 공격하려고 만들어낸 보복성 움직임이라는 주장에 반박했다.

 

젠더 갈등이 아닌, 하나의 풀어나가야 할 사회적 문제로

딥페이크와 알페스의 문제점은 비단 창작물 그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건의 심각성은 이러한 불건전 컨텐츠의 ‘제작자’와 ‘이용자’ 모두 이러한 창작물들이 ‘범죄’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딥페이크 영상의 경우, 트위터 내에서 돈을 내고 원하는 연예인 딥페이크 영상을 구매하는 시장이 활성화 돼있으며 알페스의 경우 알페스를 팬 문화로 보는 등 하나의 유흥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이번 사태를 ‘남성’과 ‘여성’으로 편을 가르고 한쪽의 잘못에만 집중하는 태도가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문제점이 더욱 부각되었다. 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러한 사태들이 젠더 이슈가 아닌, 심각한 범죄임을 인지하고 똑같이 경각심을 길러야 할 것이다.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적인 도움 또한 필요하다. 딥페이크의 경우 이미 2020년 3월 17일 관련 법안이 개정된 바 있다. 대상의 동의 없이 제작된 딥페이크 음란물의 제작자와 유포자 모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 영리를 목적으로 했을 때 형벌은 7년 형으로 가중된다. 이러한 형벌은 12개월 징역, 3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등에 불과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딥페이크 처벌에 비하면 강력한 편이다. 그러나 현재 딥페이크 강력 처벌 청원이 40만 명의 동의를 얻었을 정도로, 현행법에 구멍이 존재한다. 앞서 언급했듯 해외에서는 아직 딥페이크 관련 법안이 제대로 제정되어 있지 않은 국가들이 많다. 그러므로 외국에서 제작하고 대한민국에 배포할 경우, 우리나라에서 제작자 혹은 배포자를 처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인지 신원을 알기조차 어렵다. 또한 알페스의 경우 관련 법안이 부실해, 연예인 혹은 기획사 측에서 고소를 진행해서 승소해야 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연예인들의 인기에 타격을 줄 수 있어서 제작자를 고소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외국에서 제작, 배포된 딥페이크의 처벌 법안과 알페스 관련 법안의 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처음부터 배포를 막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두 창작물 모두 트위터에서 유포되고 있다. 알페스와 딥페이크 외에도, ‘일탈계’와 같은 트위터 내의 음란물 유포 문제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트위터 내부에서도 자체적으로 검열을 진행하나 완벽하지 않고, 대부분의 영상물 혹은 알페스와 같은 음란성 팬픽들이 ‘민감한 컨텐츠 표시’ 라벨을 달고 문제없이 배포되는 시스템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다른 SNS 서비스와 비교했을 때 음란물의 제작 및 유포가 가장 많이 행해지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음란물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면 트위터 내부에서의 정책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2021년 2월 9일, 하태경 의원 외 11인이 알페스와 관련하여 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 14조 2항 개정안의 법안 발의를 마지막으로, 논란은 젠더 간 갈등이라는 상처만을 남긴 채 흐지부지 종료됐다. 알페스와 딥페이크 모두 젠더 이슈라는 명목으로 ‘편가르기’를 하지 않았다면, 혹은 순수하게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했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딥러닝: 여러 비선형 변환기법의 조합을 통해 높은 수준의 추상화(abstractions, 다량의 데이터나 복잡한 자료들 속에서 핵심적인 내용 또는 기능을 요약하는 작업)를 시도하는 기계 학습 알고리즘의 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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