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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도시를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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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자. 만남의 광장, 열린 광장, 뉴스 광장 등,  광장은 친숙한 단어다. 특히 2016년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박근혜 전(前)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던 촛불시위는 사람들에게 광장이 익숙해지는 계기가 됐다. 광장이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가 되기까지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그리고 지금의 광장은 어떤 모습일까?

 

광장은 개방된 장소로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일컫는다. 광장은 정치집회, 종교행사, 문화축제 등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며 발달해왔다. 광장의 기원은 기원전 800년경 그리스의 고대 도시국가 ‘폴리스(police)’에서 찾을 수 있다. 폴리스의 광장인 아고라는 사람들이 모이는 만남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상업, 종교, 재판의 공간이었다. 당시 농업이나 수공업을 하는 상인들은 아고라에서 상업 활동을 했으며, 아폴론 신전, 제우스 신전이 위치한 종교 활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또한 아고라는 토론이 활발히 일어나는 민주 정치의 현장이었다. 특히 아고라에서 열린 시민 법정에서 아테네의 시민들이 재판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아고라가 가진 직접민주주의로서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발달한 유럽 도시들

▲이탈리아 산 마르코 광장
▲이탈리아 산 마르코 광장


유럽 도시들은 광장 중심의 도시 계획을 펼쳤다. 따라서 광장은 오랜 기간 도시와 함께 변화하고 발전했다. 특히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는 광장의 전성기였다. 중세 시대의 광장은 주로 정치적 이유로 생겨났다. 당시 왕정은 구성원을 결속시키고자 통치 수단으로 가톨릭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광장의 중심에 교회와 성당을 배치함으로써 구성원을 결속시키는 효과를 거뒀다. 전형적인 중세 광장은 16세기 조성된 이탈리아 산 마르코 광장(San Marco Piazza)이다. 이 광장의 동쪽에는 산 마르코 대성당이, 남쪽에는 성당의 아홉 행정관 관저가 있다. 성당을 중심으로 한 광장을 통해 구성원들을 결속한 것이다. 

▲이탈리아 시뇨리아 광장
▲이탈리아 시뇨리아 광장

한편 르네상스 시대에 광장이 많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상업의 발달이 있다. 상업이 발달하면 사람들의 이동이 잦아져 도시가 발달한다. 당시 유럽의 도시 계획은 광장 중심이었기 때문에 도시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광장의 발생으로 이어졌다. 이때 도시를 구성 한 귀족들은 광장을 만들어 가운데 통치자의 동상을 세운 다음, 그 주변에 주택을 배치하는 것을 선호했다. 르네상스 시대 광장의 대표적인 예로 이탈리아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이 있다. 이 광장의 중앙에는 메디치가의 통치자인 코시모 1세(Cosimo I de' Medici, 1519~1574)의 청동 조각상이 있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신화, 성서를 표현한 작품들을 주변에 배치해 코시모 1세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시민의 목소리가 된 한국의 광장

한국 광장의 역사는 유럽에 비해 짧다. 한국의 도시 계획은 광장 중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0년대까지도 한국에서 광장이 가지는 의미는 미미했다. 비록 1987년 민주화 운동이 지금의 서울광장 터에서 일어나는 등 광장이 사용되기는 했으나, 당시 광장은 공터로서의 의미가 컸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광장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2002년에 개최된 한‧일 월드컵이다. 월드컵 응원단인 붉은 악마는 거리를 꽉 채우며 다 함께 ‘대한민국’을 외쳤다. 이들이 같이 모여 응원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기에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었다. 이후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적다는 점이 지적됐고, 광장이 마련돼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따라서 2004년 서울광장, 2009년 광화문광장 등 실질적인 광장이 생겨났다.

한국의 광장은 시민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는 민주주의로서의 의미가 크다. 광장의 필요성이 대두된 2002년부터 광장의 역할이 극대화된 2016년 사이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목소리를 냈다. 2002년 주한 미군 장갑차에 두 여중생이 희생된 사건,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으로 인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 등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광장에 모였다. 특히 2016, 2017년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전개된 박근혜 전(前) 대통령 탄핵 요구 촛불집회는 우리나라 광장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수많은 인원이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혔고, 박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는 정치적 변화로 이어졌다. 이후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정치·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광장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문화와 환경을 담은 현대 광장

▲덴마크 슈퍼킬렌 붉은 광장
▲덴마크 슈퍼킬렌 붉은 광장

덴마크 코펜하겐(København)의 슈퍼킬렌(Superkilen)은 문화를 담은 공간의 대표적인 예다. 슈퍼킬렌은 공공 공간으로, 붉은 광장(red square), 블랙 마켓(black market), 녹색 공원(green park)의 세 가지 공간으로 구성돼있다. 붉은 광장은 음악, 스포츠 등을 즐길 수 있는 현대 문화적 공간이며, 블랙 마켓은 분수와 벤치가 있는 고전적 광장이다. 녹색 공원은 사람들이 소풍을 하거나 운동과 산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 세 공간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큰 광장을 완성한다. 즉 방문자가 휴식을 취하며 유희를 즐길 수 있는 문화복합적 공간이면서 축제의 공간인 것이다.지금까지 유럽과 한국 광장의 역사를 살펴봤다. 그렇다면 세계의 현대 광장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도시 계획가 카밀로 지테(Camillo Sitte, 1843~1903)는 도시 건축물이 상호 관련 있는 유기적 조직으로 연속돼야 하며, 보행자 우선의 공간을 구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테의 이론을 뒷받침하듯, 현대의 광장은 주위 공간들과 연결되고 보행자가 편하게 오갈 수 있도록 개편됐다. 나아가 보행자들이 유희를 즐기는 문화복합적 공간이자 환경을 고려하는 녹색 공간이 됐다.

프랑스 낭시(Nancy)에 위치한 스타니슬라스 광장(Place Stanislas)도 문화복합공간의 예다. 이 광장에서는 매년 가톨릭 축제인 생 니콜라 축제가 열린다. 2일 동안 열리는 이 축제에는 음악 축제, 퍼레이드, 빛 축제가 포함돼 방문객들의 흥을 돋운다. 이 광장은 다른 광장들과 연결되어 큰 유기적 공간을 생성한다는 특징도 있다. 광장의 중심축은 승마 연습 및 경기 시설을 갖춘 카리에르 광장(Place de la Carrière)과 연결된다. 그리고 스타니슬라스로부터 150m 안팎에 알리앙스 광장(Place d'Alliance in Nancy)이 있다. 알리앙스 광장에서 스타니슬라스 광장으로, 그리고 카리에르 광장까지 이어지는 연속성은 주변과 결속된 광장의 특성을 보여준다. 

▲서울시 광화문광장 조감도
▲서울시 광화문광장 조감도

나아가 광장은 환경친화적인 공간이 됐다. 현재 새 단장을 위해 공사 중인 광화문광장이 그 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광화문광장을 ‘차로로 단절된 회색 콘크리트 광장’이라 표현하며, 새롭게 바뀔 광화문광장은 ‘시민이 쉬고 걷기 편한 광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계획에 따르면 광장의 세종문화회관 쪽 도로는 ‘공원을 품은 광장’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보행자 중심의 환경친화적 광장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한편 샹젤리제 거리의 도시계획으로 변화할 콩코르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도 광화문광장과 궤를 같이한다. 샹젤리제 거리는 콩코르드 광장부터 개선문으로 유명한 드골 광장(Place Charles de Gaulle)까지 이른다. 파리 정부는 2030년까지 샹젤리제 거리의 8차선 도로를 절반으로 줄이고, 녹지를 확보해 보행자 친화적인 공간을 만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과정을 통해 콩코르드 광장은 환경친화적이며, 보행자를 위한 복합 공간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파리 시가 발표한 이 도시계획의 목표는 대기 오염을 줄이고, 매일 10만 명의 보행자를 수용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광장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부터 시작해 현대까지 이르며,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가치를 담은 공간이 됐다. 우리나라에도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등 크고 작은 광장들이 도심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광장은 역사가 담긴 공간이자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열린 공간이다. 또한 사람들의 흥을 돋우는 문화적 공간이자 환경을 보호하는 녹색 공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광장은 도시의 한 축을 이루며 다양한 가치를 담은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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