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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철, 문경자 옮김, 한길사, 2007

<서양철학입문> 황수영 교수가 추천하는 『에밀 또는 교육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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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에밀』(1762)이라는 책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겉보기에 가상의 제자인 에밀을 어린 시절부터 교육하는 에세이 형식으로 구성된 교육론이지만 사실은 인간성과 도덕, 자유, 종교, 진리 등의 철학적인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철학 고전이기도 하다. 이런 묵직한 내용은 현대인에게 매력적인 주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루소는 철학자이기 전에 작가의 능력을 타고났기에 그의 책을 읽어 내려가는데 큰 부담이 없다. 한 편의 소설과 같은 파란만장한 자신의 생애를 담백하게 써 내려간 루소의 『고백록』(1782)은 고백문학이라는 문학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될 만큼 독창적인 문체와 내용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루소는 자녀 다섯을 낳았지만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인해 모두 고아원에 맡기고 일생을 고통스럽게 살았다. 루소의 교육론인 『에밀』은 이러한 자신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보상하고자 하는 심정으로 쓰였다. 루소는 이 책에서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아이에게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을 간직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어떠한 인위적 교육도 주입하지 않으며 타고난 순수함과 선함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고, 소년 시절 이후부터 이성을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육을 권장한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가장 고귀한 본성인 도덕성이 변질되지 않고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루소는 『에밀』과 『사회계약론』(1762)을 출간하여 찬반양론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두 책 모두 금서 처분을 받는다. 특히 『에밀』은 기성종교의 눈에 과격하게 비친 자연종교 사상으로 인해 분서령이 내려진다. 루소는 이때부터 죽을 때까지 망명 생활을 한다. 타고난 감성과 내면적 자기성찰의 사상가가 가상의 제자에게 자연적 순수함을 간직할 것을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국가는 대체 어떤 이유로 금지령을 내렸던 것일까?

 

그것은 『에밀』의 자연교육 이념의 기초가 된 자연종교의 개념 때문이다. 우선 루소가 말하는 자연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사회 형성 이전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내면적이고 감성적인 순수한 인간 본성이다. 사회적 갈등 속에서 타락한 인간에게도 자연적 본성은 남아 있어 양심이나 정의감과 같은 도덕적 가치들로 나타난다. 또한 루소는 이러한 자연적 본성이 박애정신의 토대가 되어 공화국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종교의 이념은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에밀』 4장에서 나타난다. 자연종교는 신학과 계몽주의의 투쟁으로 대표되는 당대의 지적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루소는 제도권의 교회권력에 대항하고 기성 종교를 비판하는 점에서 계몽주의자들과 입장을 함께 한다. 그러나 자연종교는 계몽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자연의 합리적 질서에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이고 감성적인 인간 본성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감지되는 것이다.

 

사회 관계는 각종 이기심이 충돌하는 장소여서 이기심을 극복하지 못하면 이성이 있다고 해도 선한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다. 즉 이성과 행동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선을 느끼고 우리에게 선한 행동을 추구하도록 인도하는 것은 바로 양심이다. 루소에게 선악의 심판자인 양심은 인간을 인간 이상으로 만드는 유일한 본성, ‘천상의 목소리’이다. 자연종교의 목표는 인간을 오로지 이러한 양심의 목소리에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루소는 종교로부터 인격적이고 의인화된 신의 형상을 벗겨내고 순수하게 내면적인 인간 본성에 충실할 것을 주장한 점에서 신성을 자연화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가 종교에 의해 박해받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편 루소는 오로지 이성에 의해 사회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자 하는 계몽주의자들에도 반대한다. 그는 공동체의 정의는 이성보다도 도덕적 인간의 탄생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이성은 사회의 올바른 방향을 추론할 수는 있으나 감정으로 느끼게 할 수는 없다. 우선 선함과 올바름을 느끼는 감성의 역할이 기초가 되어야 하며 이성은 그러한 기초를 무시하고서는 사회 문제의 해결에 이를 수 없다.

 

이와 같이 루소는 종교의 권위와 비합리성을 거부하면서도 오로지 이성만능주의적인 태도도 비판하는 점에서 현대적 이성비판의 토대를 일찌감치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루소의 『에밀』은 소설처럼 부드럽게 읽히면서도 인간성의 깊은 토대에 접근하게 해주는 근대의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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