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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문경>, 낙랑, 청동, 지름 18.3cm,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박물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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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문경>, 낙랑, 청동, 지름 18.3cm,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신수문경>, 낙랑, 청동, 지름 18.3cm,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우리가 일상적으로 비춰보는 거울, 하지만 고대에는 신이 내린 신물(神物)이자 신의 뜻을 알려주는 매개체였다. 보통 거울의 앞면은 물체를 비추거나 빛을 반사하도록 아무 문양 없는 민면이지만, 뒷면에는 다양한 문양이나 글씨 등을 장식하였다. 이러한 뒷면의 여러 장식문양을 기준으로 거울의 명칭이 붙여지고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사상이나 신앙의 영향을 받아 특정 문양과 명문을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주목받아왔다. 또한, 인간이 죽은 후 무덤에 묻히는 부장품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대학 박물관 소장품은 서기  1세기 후한대 들어 처음 등장한 일명 ‘신수문경(神獸文鏡)’으로, 당시 유행한 신선 사상의 영향으로 신선 세계를 거울에 표현하려는 열망이 반영되었다 할 수 있다. 

문양구성을 보면 크게 두 구획으로 나눠 단정히 앉은 서왕모(西王母)와 동왕공(東王公)을 대칭으로 배치하였고 옆으로는 두 개의 유(乳)로 해와 달을, 그리고 여섯 마리의  용과 한 척의 배로 장식하였다. 이러한 배치는 음양의 조화라는 당시 신선 사상의 전형성을 반영한 것으로 인간 사상의 예술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한대 사람들이 즐겨 장식한 서왕모는 고대 문헌에 따르면 장생불로(長生不老)의 신인(神人)으로, 하늘의 화(禍)와 다섯 가지 재앙을 담당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불사의 약을 가져 집안의 안녕과 번영을 주관하는 등 신화와 전설상의 중심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서왕모가 청동거울에 표현된 것은 풍부하고 다채로운 신선 세계를 이상으로 추구하던 당시 사람들의 강렬한 그리움을 거울이라는 작은 공간에 재현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로써 거울은 ‘비춰보는’ 생활 용구이자, 악귀를 막고 복과 재화를 부른다는 ‘벽사(辟邪)’적 주술용구로 기능이 확대되면서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문명 패러다임의 주축이었던 중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한반도와 일본 등 동아시아 각국에도 선진 문물의 상징이자, 귀한 위세품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우리 소장품도 중국으로부터 낙랑 지배층에게 사여된 중국제 청동거울로 볼 수도 있다. 다만 해와 달로 표현된 유(乳)의 구획이 비대칭이고 일반적으로 4개 이상이 배치되지 않았다는 점과 선인이 타고 있는 배의 모습이 잔잔한 강물 위를 오가는 나룻배라기보다는, 험난한 파도를 헤쳐나가는 3층 누선(樓船)과 같은 모습은 같은 시기의 중국제 금속공예품의 제작방식과 다소 차이가 있다. 어쩌면 낙랑 지배층들이 선호하던 고유한 자신들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소재를 거울에 표현한 것이 아닐지 새로운 해석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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