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다, <봄>(2014)

당신의 봄날은 언제였나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골마을의 전경
▲강골마을의 전경

누구나 한 번쯤 지금 이 순간을 봄이라고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연인이 생겼을 때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을 때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봄이 오기까지 수많은 시련과 고난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조근현 감독의 <봄> (2014)은 베트남 파병으로 남편을 잃은 ‘민경’과 병으로 인해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준구’, 그리고 그런 준구를 바라보는 ‘정숙’ 등 시련과 고난을 겪는 인물들을 내세운다. 그리고 이들이 ‘조각’이라는 예술 활동을 통해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과연 이들은 원하던 봄을 맞았을까? 기자는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 공간에 가보기로 했다. 

 

경산댁: 여긴 됐응게, 선생님(준구) 약이나 챙겨 드려라. 

송이: 맨날 드리봐야, 드시지도 않더만.

 

준구는 서울에 살던 조각가이자 교수였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해 팔이 점점 마비되기 시작했고, 더는 조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준구는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채 아내 정숙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다. 기자는 준구와 정숙이 살았던 보성 강골마을을 찾았다. 아직 봄이 다가오지 않았는지 나무에 이파리가 없어 멀리서 마을을 봤을 땐 다소 삭막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나 막상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니 첫인상과는 달랐다. 추위가 풀린 따스한 날이어서 그랬을까? 고택 몇 채와 연못만 있는 시골 마을이었음에도 고즈넉한 골목의 분위기와 새소리는 기자의 심금을 울렸다. 아무것도 없이 마을을 거닐었을 뿐인데도 여행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준구가 왜 이곳으로 돌아왔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이 마을의 풍경이 준구에게 삶의 의지까지는 불어넣지 못했더라도 위로 정도는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용욱 가옥의 모습
▲이용욱 가옥의 모습

정숙: 오늘 낮에 젊은 애기 엄마 한 명을 봤는데 남들보다 키가 한 뼘은 크고 팔다리가 길고 가는게 당신 다시 작업…

준구: 이런 손으로 뭘 할 수 있겠어. 쓸데없는 짓 하지 마요.

정숙: 그러지 말고 한 번… 한 번 보기만 해봐요. 며칠 내로 데려올게요. 보고 아니면… 다시는 안 데려올게요.

준구: … 좋아요.

 

정숙은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나누어주는 봉사를 하다가, 쌀을 받으러 온 민경을 만난다. 정숙은 남들보다 키가 한 뼘은 큰 데다가 팔다리가 길고 가늘었던 민경이 준구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후 정숙은 집에 돌아와 준구에게 민경을 모델로 데려올 테니 한 번만 더 조각해달라고 부탁한다. 준구는 이제 조각을 할 수 없다며 정숙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설득하는 정숙에게 준구는 결국 침묵을 통해 암묵적 동의를 내비친다. 마을 구경을 어느 정도 마치고 기자는 준구와 정숙이 살았던 이용욱의 가옥을 찾았다. 이용욱 가옥은 강골마을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가옥 앞에 연못이 있어 신비한 느낌을 줬다. 아쉽게도 지금은 개방하고 있지 않은지 대문이 굳게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순 없었다. 결국 기자는 가옥 주위를 돌며 담장 너머로 가옥을 살펴보기로 했다. 이용욱의 가옥은 마을의 어떤 가옥보다 규모가 커서 주위를 도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커다란 가옥과는 반대로 가옥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 무언가 공허함이 밀려들었다. 준구와 정숙은 단둘이 살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한 이 공간에서 더욱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열화정
▲열화정

민경: 가만히 서있기만 하면 돈을 주신다고예?

정숙: 조각가 김준구 선생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요?

민경: 서울서 오신 유명하신 교수님이 계신다고 한 얘기는…

정숙: 그 사람이 바로 조각가 김준구 선생이에요.

 

이후 정숙은 민경을 불러 준구의 조각을 위한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민경은 옷을 다 벗어야 한다는 사실에 놀라지만, 현재 월급의 10배를 준다는 제안에 승낙하게 된다. 민경은 남편의 부고 소식을 알리러 왔던 근수에게 겁탈당해 어쩔 수 없이 같이 살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근수는 술과 도박에 빠져 민경 홀로 아이 둘을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정숙과 민경이 대화를 나눈 열화정(悅話亭)으로 향했다. 열화정은 기쁠 열(悅)에 말씀 화(話)를 써서 기쁘게 이야기하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정자라고 한다. 말의 뜻처럼 열화정은 연못이 자그맣게 있고 바람까지 선선하게 불어 기분 좋은 공간이었다. 이 때문에 기자는 정숙이 민경을 열화정으로 초대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처럼 푸른 나무까지 가득했다면 이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도 즐거울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민경은 자신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란 기대를, 정숙은 어쩌면 준구가 다시 한번 조각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을 것이다.

 

▲영화 속 준구의 작업실
▲영화 속 준구의 작업실

민경: 근데 얼굴도 이래 완성되는 겁니까?

준구: 거의 그렇지.

민경: 지를 하나도 안 닮았네요? 눈도 감고 있네예. 자고 있나?

준구: 눈도 뜨고 있고 표정도 있다고 생각을 해봐. 누가 몸을 보겠나? 얼굴을 보지.

민경: 근데 지는, 사람 얼굴을 봐야 이게 화가 난 긴지 슬픈 긴지 아니면 죽은 긴지 알 수 있겄는디…. 그라믄 선생님은 사람 몸만 갖고 그런 걸 다 표현하시는 갑지예? 참말로 대단하십니다.

준구: 얼굴….

 

그로부터 며칠 후, 민경과 준구는 작업에 착수한다. 처음부터 작업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준구는 오랫동안 조각에서 손을 뗐었고, 민경은 난생처음 모델 일을, 그것도 누드모델 일을 해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은 각자의 역할에 적응하며 작업이 계속된다. 그렇게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작업실에 근수가 쳐들어온다. 민경은 근수에게 준구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한다고 둘러댔지만 하는 일에 비해 보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준구와 민경이 바람이 났다고 생각한 근수는 준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민경을 흠씬 두들겨 패고, 조각마저 박살 내버린다. 기자는 준구의 작업실로 향했다. 그러나 기자가 찾아갔을 때는 작업실이 있던 위치에 아무것도 없었다. 작업실 자체가 촬영을 위해 제작된 공간이고, 영화가 개봉된 지도 7년이 넘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기자는 이곳 취재를 계획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장소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꼈다. 오랫동안 공들인 조각이 박살 났을 때 준구는 이보다 더한 절망감을 느꼈으리라.

 

▲준구가 오가던 둑길
▲준구가 오가던 둑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지. 비록 내 몸은 겨울을 향하고 있지만 내 작업은 비로소 봄을 맞았어. 나는 이 작품의 제목을 봄이라고 지으려고 해. 어느 조각가의 말처럼 예술보다는 삶 그 자체가 값어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기자는 마을과 작업실을 잇는 둑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완연한 봄이 아니라 둑길이 영화 속 모습처럼 푸르르지는 않았지만, 억새와 강물이 있어 전경이 나쁘지 않았다. 조각이 박살난 이후 준구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민경 또한 더는 모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음에도 매일 같이 이 길을 통해 작업실로 향했다. 그리고 준구는 지금껏 조각하지 않았던 정숙의 얼굴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민경과의 대화를 통해 사람의 몸보다는 삶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사람의 얼굴이야말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평생 자신과 함께해온 정숙의 삶의 모습을 한 번도 담아내지 못했기에, 준구는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는 와중에도 조각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며칠간의 강행군 끝에 준구는 조각상을 완성하고 숨을 거두게 되지만, 그토록 염원하던 봄을 맞는다.

기자는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다행히도 집에 도착하기까지는 4시간도 넘게 남은 탓에, 생각할 시간은 차도록 넘쳤다. 영화 봄의 부제는 ‘여름 끝에 찾아온 봄’이다. 기자는 이곳을 오기 전까지는 왜 부제가 여름 끝에 찾아온 봄인지 알지 못했다. 오히려 ‘차가운 겨울 끝에 찾아온 봄이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기사를 써가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여름이란, 봄이라는 따뜻하고도 포근한 시간을 갖기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시간이었다. 부끄럽게도 기자는 지금까지 봄을 위해 여름처럼 살아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번 취재에서만큼은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기사를 발간하기 위해 고생하고 노력했던 시간이 ‘여름’이라면, 내가 쓴 기사가 발간되는 것을 보는 일은 나만의 ‘봄’이라고.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