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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일상과 엄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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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주고 받을 때에는 음성이 가 닿을 수 있는 공간적 거리 안에서, 동시간대를 공유하여야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난다. 거리가 너무 멀어지거나 시간대를 공유하지 못한다면, 언어에 의한 의사소통은 전혀 불가능하게 된다. 음성 언어만 있던 시기에 인류의 지식은 구전의 형태로 전해졌다. 인간의 기억력은 경이롭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어, 인류 지식은 더디게 축적되었다. 또한 한정적 거리에서만 가능했던 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축적된 지식의 공유를 제약했다. 이러한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한 문자의 등장과 인쇄술의 발명은 문명의 비약적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문자와 인쇄술은 현장에서 즉시 이루어지는 언어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정보를 전할 수는 없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이것을 저기에다 두었어”라는 말을 시간과 공간을 공유해서 듣는 경우에는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문자로 기록되어 전해지면 ‘누가’, ‘어디에’ ‘무엇을’에 대한 정보는 전달되지 않는다. “점심 먹었어”는 억양에 따라 질문이 되기도 하고, 물음에 대한 대답이 되기도 한다. 본래의 시간과 공간을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이 생긴 반면, 생각하지 못한 오해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생기는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문자는 철자와 구두점이라는 보조적 장치를 갖게 되었으며, 인쇄술이 나오면서 편집의 규칙들이 생기게 되었다.

문자언어에서 구두점과 편집의 규칙이 얼마나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는지는 대학교 보고서나 논문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다. 분명한 논지, 서지 및 인용 표기, 문장의 명료성과 더불어 논문 작성 시 형식의 중요성은 결코 작지 않다. 이 모두가 문자언어가 태생적으로 가지는 오해나 오류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자연스럽고 가장 흔한 방식의 언어 커뮤니케이션의 제약을 벗어난 문자는 여러 가지 엄격한 규칙들이 지켜질 때에야 제대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신학기가 되면 학생들의 활력으로 넘쳐나던 교정이 이태 동안 조용하다. 강의실마다 가득했던 학생들의 열의를 이제 현장에서는 느낄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실시간 형태의 강의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찾아낸 비일상의 소통방법이 실시간 비대면 강의이다. 이 방법은 커뮤니케이션의 제약 중에서 공간적 제약을 극복한 장치이다. 대구, 순천, 춘천, 대전, 목포, 부산 등 거의 전국에서 강의에 참여한다.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도 등하교에 걸리는 시간에서 자유로워졌다.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접속만 하면 된다. 그러나 공간을 공유하던 일상적 강의 현장에서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들이 생겨난다. 강의라는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시공간을 공유하는 일상의 현장 강의는 언어적, 비언어적 수단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의 성공적 수행을 확인하고 이끌어갈 수 있지만, 비대면 강의는 이러한 수단의 사용에 제한이 생기기에 이를 대신할 보조적 수단들을 동원해야 한다. 카메라를 통한 영상의 공유, 강의에 집중할 것이라는 상호 약속과 신뢰, 작은 시간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대화 주고 받기 타이밍의 간극에 대한 인내 등등. 

문자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철자, 구두점 등의 보조적 규칙들에 대한 엄격한 준수가 필요한 것처럼, 비대면 강의도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보조적 규칙들에 대한 엄격한 준수가 필요하다. 비대면 강의가 주는 시간적 여유는 강의 참여 준비를 면제해 주지 않으며, 거리가 멀어도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은 서로 대면할 수 있는 장치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비일상의 모습들은 일상적 상황보다 더 엄격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새롭게 정해지는 규칙들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비일상의 엄격성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2021학년도 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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