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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처벌법의 실효성을 알아보다

22년이 걸린 스토킹처벌법, ‘죽어야 끝나는’ 스토킹 범죄 막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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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천in
▲출처: 인천in

지난 3월 23일(화), 피의자 김태현이 수개월간 스토킹을 하던 여성과 그녀의 일가족 전원을 살해한 사건이 세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온라인 게임에서 알게 된 피해자에게 일방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던 김씨는 피해자의 집 주변을 맴돌고 끊임없이 연락을 시도하는 등 피해자를 집요하게 스토킹했다. 끝내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피해자에 앙심을 품은 김씨는 퀵서비스 기사로 위장해 피해자의 집에 침입했고, 피해자와 그녀의 여동생, 그녀의 어머니까지 살해했다. ‘김태현 스토킹 살인사건’이라 알려진 이 사건은 스토킹이 더 이상 ‘가벼운 문제’,  ‘개인 간의 애정 문제’가 아닌,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인 24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공포안(이하 스토킹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스토킹처벌법이 처음 발의된 지 22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이다.  

 

‘살인의 전조’ 스토킹 범죄, 스토킹처벌법은 만들어지는 데에 왜 22년이나 걸렸는가?

스토킹처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피해자를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주거·직장·학교, 그 밖에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우편·전화·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해 물건이나 글, 말, 그림, 부호, 영상 화상을 도달하게 하여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다. 스토킹처벌법이 통과하면서 가해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게 됐다. 또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이용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가중 처벌된다. 그렇다면 왜 스토킹처벌법은 논의된 지 22년 만에야 국회에 통과됐을까? 스토킹 행위를 처벌할 법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1999년 ‘스토킹 처벌에 관한 특례법안’이 발의된 이래로 꾸준히 제기됐다. 이후 스토킹 관련 특별법이 15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14건의 의원입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스토킹 행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등을 두고 부처 간 의견 조율이 안 됐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후 처벌 법규가 없어 경범죄처벌법상으로 분류된 스토킹 범죄는 스토킹 피해자가 용기를 내어 가해자를 신고해도 가해자에게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불과한 경미한 처벌밖에 내리지 못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가해자를 양산했고, 보복이 두려운 피해자를 더욱 위축시키는 문제를 만들었다. 

스토킹 관련 처벌법이 전무한 사이 스토킹 범죄는 꾸준히 발생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7월 사이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는 2756건으로, 하루 평균 12.9건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가해자의 보복을 우려하여 신고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입법적 불비로 인해 스토킹 범죄 피해자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희생으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다. 2020년 5월 4일 경남 창원시에서 40대 남성이 6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 또한 스토킹으로부터 시작됐다. 10년 동안 가해자에게 스토킹을 당한 피해자는 살해당하기 바로 전날, 가해자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가해자는 단순 업무방해로 처리됐고 이에 앙심을 품은 가해자가 결국 피해자를 살해했다. 많은 전문가가 스토킹 범죄를 ‘살인의 전조’라고 말하며 그 위험성을 강조한다. 실제 KBS가 2018년도 발생한 살인·살인 미수 사건 381건의 판결문을 입수하여 분석한 결과, 피해자가 여성인 사건(159건) 중 무려 30%(48건)에서 스토킹이나 스토킹 의심 정황이 확인됐다. 

 

스토킹처벌법, 그 실효성은?

스토킹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전무해 최고 10만 원의 범칙금 수준에서 처벌이 끝나고,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가 없던 과거와 달리, 이번 스토킹처벌법의 개정으로 경찰의 즉각적인 개입이 가능해졌다. 처벌법 제 4조(긴급응급조치)에 따르면, 신고를 받은 경찰은 직권으로 △스토킹 행위 상대방에 대한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등의 조처를 할 수 있다. 또 재발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처벌법 제3조(스토킹행위 신고 등에 대한 응급조치)에 따라 스토킹 행위에 대해 경찰이 신고를 받은 경우 즉시 현장에 나가 △스토킹행위의 제지, 향후 스토킹행위의 중단 통보 및 스토킹행위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할 경우 처벌 경고 △스토킹행위자와 피해자 등의 분리 및 범죄수사 △피해자 등에 대한 긴급응급조치 및 잠정조치 요청의 절차 등 안내 △스토킹 피해 관련 상담소 또는 보호시설로 피해자를 인도 할 수 있다. 또 스토킹행위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행해질 우려가 있고 스토킹범죄의 예방을 위하여 긴급을 요하는 경우 처벌법 제4조(긴급응급조치)에 따라 △스토킹행위의 상대방이나 그 주거 등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접근 금지 △스토킹행위의 상대방에 대한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등의 조치도 취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스토킹처벌법 제정은 스토킹 행위가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광범위하게 형성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또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원인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생겼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다. 하지만 제정된 스토킹처벌법에 한계가 많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해당 법이 피해자 보호보다 가해자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피해자 보호‧지원, 처벌 및 제재 부분에 있어서 부족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문가와 여성단체는 스토킹처벌법 제18조 제3항에 명시되어 있는 ‘반의사불벌죄’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할 때만 처벌을 하는 것으로 스토킹처벌법에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되면 가해자가 피해자를 회유, 협박할 가능성이 발생하고, 스토킹 피해자가 보복이 두려워 제대로 처벌 의사를 밝힐 수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이어 스토킹 범죄가 피해자가 용서하면 처벌을 받지 않아도 되는 범죄로 치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 해당 법안은 피해자를 ‘직접적’인 피해를 본 사람으로만 한정하고 있어 피해자의 가족, 동거인 등에 대한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동거인, 친족, 직장동료 등 생활상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도 스토킹 범죄로 인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 스토킹 행위가 일어났을 때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100m 이내 접근 금지나 통신 매체 접근을 금지하는 정도로 그치는 것, 가해자가 접근금지 등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했을 때에 처벌이 과태료 처분에 그치는 것도 스토킹처벌법이 과연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한다. 이 밖에도 반복적이거나 지속적이지 않은 일회성 스토킹의 경우 처벌이 불가능한 점, 피해자의 일상회복을 위한 지원제도가 빠진 점 등이 스토킹처벌법의 한계점으로 꼽힌다. 이렇듯 새로 생긴 법률이 스토킹 범죄의 특이성을 모두 담지 못하면서 피해자를 보호하는데 부족하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제정’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제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법이 필요한 때

스토킹 피해자 보호를 위한 보안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한국성변호사회가 주최한, 피해자 보호관점에서 바라본 스토킹처벌법 제정안의 문제점, 심포지엄에서 스토킹처벌법이 ‘제정’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정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송 사무처장은 ‘스토킹이 범죄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가해자 처벌 및 그 절차에 관한 특례와 스토킹범죄 피해자에 대한 각종 보호절차를 마련하여 범죄 발생 초기 단계에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고, 스토킹이 더욱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여 건강한 사회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하려는 것’이라 명시된 스토킹처벌법의 제정 목적을 ‘특정인이 상대방의 동의 없이 그 생활 영역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접근하여 괴롭히는 행위를 방지함으로써 피해자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함’으로 변경할 것을 제안했다. 또 스토킹범죄 처벌법을 △스토킹의 포괄적인 정의 필요 △피해자 범위 확대 △경찰의 초기 대응 강화 △피해자 보호 및 지원 절차 강화 △반의사불벌 조항 삭제 및 가중처벌 조항 신설 △스토킹범죄의 국가 책무성 및 예산상 조치 명문화 △고소에 관한 특례 신설 역시 스토킹처벌법이 놓쳐서는 안될 부분이라 말했다. 

한편 정영애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장관은 지난 4월 14일(수) 여가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포함된 문제와 피해자보호명령이 없는 문제 등 스토킹처벌법이 가진 한계에 대해 법무부, 경찰청 등과 협의해서 문제를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며 개선 의지를 밝혔다. 이어 여가부는 지난 4월 28일(수), 민간위원과 정부위원이 함께한 여성폭력방지위원회 실무위원회를 개최해 스토킹피해자 보호 및 지원 강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스토킹처벌법은 제정되었으나 피해자보호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과 관련하여,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이라도 가정폭력, 성폭력 등 보호시설을 활용하여 스토킹 피해자에게 숙식과 상담, 심신안정 및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의료지원, 법률지원 연계 등 필요한 서비스를 우선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김경선 여가부 차관은 “스토킹처벌법 제정으로 피해자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가 명확해진 만큼 한 명의 피해자라도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며 “피해자 지원 현장에서 서비스가 실효성 있게 제공될 수 있도록 사업운영지침 개정, 스토킹 피해자 지원 매뉴얼 마련, 홍보 등을 지속적으로 점검 보완해 나가는 한편, 현재 연구가 진행중인 스토킹피해자보호법안의 입법 추진도 차질 없이 준비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스토킹은 단순히 구애의 문제, 사람을 쫓아다니는 정도의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이번 김태현 스토킹 살인사건처럼 누군가에게 스토킹이란, 죽어야만 끝나는 심각한 범죄이다. 그동안 스토킹 피해자는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어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고,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 중 일부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2021년 3월 24일(수), 스토킹처벌법이 22년 만에 국회를 통과하면서 스토킹 범죄를 범죄로 명문화하고 처벌하는 법안이 첫발을 뗐다. 스토킹처벌법은 오는 10월 21일부터 시행된다. 더 이상 제2의 김태현이 나오지 않도록, 스토킹 범죄에 의해 희생되는 사람이 없도록 스토킹처벌법은 가해자 처벌뿐만 아니라 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보장하는 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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