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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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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일은 예측 불가의 연속이다. 속된 말로 언제 기사가 펑크 날지 모른다. 취재하려 했던 사안의 일정이 변경되어 취재 자체가 불가하거나, 예정된 인터뷰이에게 인터뷰가 불가하다는 답변을 들을 때도 있다. 그때가 되면 새로운 취잿거리를 찾아, 새로운 인터뷰이를 찾아 부리나케 움직인다. 돌발 상황에 대처하다 보면 세 시간을 투자하면 될 줄 알았던 것이 다섯 시간이 되고, 여섯 시간이 된다. 하루는 24시간으로 정해져 있는데, 기사에 투자해야 할 시간은 계속 늘어만 간다. 야속하게도 교수님은 쉴 틈 없이 과제를 내주신다. 결국은 잠을 줄이고 개인시간을 줄인다. 이런 기자의 모습을 보며 주변인들은 ‘파이팅 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안쓰러운 눈빛을 보낸다. 신문사에 들어온 건 기자의 선택이었는데, 주변인들은 마치 기자가 어쩔 수 없이 신문사에 끌려가기라도 간 듯,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그냥 나오면 안 돼?” 사람인지라 그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 잘못된 선택이었던 걸까 의심도 했다.

그럴 때면 기자가 처음 왔던 때를 생각한다. ‘초심’ 말이다. 사실 기자는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 마음은 변하는 게 당연하지. 왜 자꾸 초심을 그대로 가지라는 거야?’ 하지만 최근 들어 그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생각해보면 처음에 원했던 건 이미 다 가졌음에도 그것보다 더 원하느라 결과에 만족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기자는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성격이다. 신문사에 들어온 것도 단순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칼럼, 인터뷰에 관심이 많았고 꿈도 스포츠 칼럼니스트였던 만큼, 글 쓰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이때 기자의 눈에 들어온 것이 홍대신문 수습기자 모집 공고였다. 홍대신문 이전에 두어 차례 다른 기자단 활동에 원서를 넣었지만, 쓴맛을 본 기자는 바로 홍대신문에 원서를 제출했다. 본교에 체육부도 있겠다, 칼럼과 인터뷰 코너도 있고 다른 보도 기사도 흥미로워 보여 냉큼 지원했다. 그리고 최종 합격하여 홍대신문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지금, 과연 기자는 본래 원했던 것을 이뤘을까? ‘당연히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먼저, 이렇게 오피니언을 쓰고 있다. 또한 보도기사, 주제기획을 작성하며 수없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토록 쓰고 싶었던 체육부 기사도 마찬가지다. 비록 최근 비대면으로 경기가 치러져 직접 경기를 관전하지는 못했지만, 본교 체육부 감독님들을 인터뷰했고, 경기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할 수 있게 됐다. 오히려, 처음 바랐던 것보다 더 얻었다. 첫 번째로, 세상에 좋은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반인이라면 본인의 인터뷰나 글이 지면에 실리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이들은 기자가 늘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했던 인터뷰, 투고글 작성 요청에 흔쾌히 답해줬다. 이런 요청을 받으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오히려 좋은 기회를 주어 감사하다고 말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이들에게 나의 무한한 감사를 ‘감사합니다’ 이 한 마디로밖에 녹여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두 번째로, 기자의 성격이 변했다. 매사 ‘귀찮아…’를 읊조렸는데, 먼저 기자실로 향하고 먼저 기사를 쓰겠다고 나선다. 급한 과제마저도 끝까지 미루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겨우 손가락을 까딱하는 성격인데, 이젠 기사를 미리 쓰고 더 고민한다. 계획을 세워놓고도 세웠다는 걸 까먹곤 했던 기자는 이제 플래너까지 쓰며 하루를 계획한다.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 있음에도 눈은 자꾸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을 때가 있다. 원하던 대학, 꿈꾸던 직장에 합격했지만 그곳에서마저 불만을 토로하듯 말이다. 그 눈을 좇느라 손에 무엇이 있는지는 생각도 못하고 다리만 분주히 움직인다. 오히려 왜 다리가 눈을 좇아가지 못하냐고 투정을 부린다. 그때가 오면 내가 손에 쥔 것에 눈을 돌려보자. 지금 내가 쥔 게 무거운 짐이 아니라 비바람을 막아줬던 우산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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