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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남기고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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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하단의 다섯 가지 아이콘을 하나씩 누르며 화면을 채우는 이미지들을 가볍게 훑어보자. 방금 당신은 스토리의 팔로워 프로필, 최근 소식, 관심 갖는 해시태그에 따른 게시물들과 릴스, 쇼핑몰의 제품 이미지, 본인의 게시물들을 보았다. 스크롤을 내리지 않아도 그 짧은 순간 동안 우리는 32개의 이미지 정보에 노출된다. 2014년 기준, 인류가 하루에 생산하는 이미지는 18억 장에 달한다는 수치(Mary Meeker Annual Internet Trends 2014)는 경이를 넘어 공포심까지 자아낸다. 심지어 이는 영상, 상업 광고 등 동시대의 포괄적인 이미지 개념을 적용하지 않은 수치이다. 유튜브, 광고, 수업 자료 등까지 떠올려보자. 우리는 그야말로 이미지 홍수의 시대, 그 중심에 서있다.

당신의 스마트폰 갤러리에만 들어가도 이 사실을 체감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장치가 되어 추정조차 불가한 수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묻게 된다. ‘어떤 이미지를 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이미지가 유의미한가.’

화려한 등장과 함께 한 세기 정도, 사진은 우리에게 가장 믿음직한 매체였다. 기술이 사진의 왜곡을 허용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모든 이미지가 데이터화되는 시대가 열리고, 우리는 더 이상 쏟아지는 이미지를 어떤 기준으로, 어떤 순서로, 어떤 판단 하에 시각 언어로서 받아들여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스스로에게 돌아가서, 우리가 만드는 이미지 중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어진 것이다.

지난 겨울, 아니 에르노(Annie Ernaux, 1940~)의 책 『사진의 용도』(2018)를 선물 받아 읽게 됐다. 유방암 투병 중 동거 애인과의 흔적을 사진으로 남긴 그녀의 피사체는 특별하지도 유별나지도 않다. 그러나 그것은 찍힐 가치가 있는 사진이었다. 한 사람이 지구에 다녀간 삶의 흔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사진들을 토대로 그녀가 누구였고, 어떤 일을 겪었고, 사진이 찍힌 전날 밤 누구와 어디에 있었는지 떠올리며 공감을 시도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만든 이미지들을 곱씹어보자. 갤러리의 수 천 장 이미지들은 명쾌하게 증명한다. 우리가 이 땅에 왔고, 언젠가 ‘다녀간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만들기도, 접하기도 편리한 이미지라는 매체를 통해 삶의 흔적을 남기려는 욕구를 분출한다. 그러나, 그런 중대한 역할을 맡기자니 이미지는 우리 시대에 너무나도 가벼워졌고, 신뢰할 수 없으며, 고유하지 못하다. 이래서일까, 최근 몇 년 간 필름이라는 이미지 생성 도구에 대한 수요가 유난히 급증했다. 시각디자인전공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필름과 필름 카메라를 작업 도구로 사용하는 나는 필름과 필름 카메라의 시세 급등을 통해 이를 체감하고 있다. 동시대 이미지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시도와 필름의 수요 급증이 무슨 상관인지 묻는다면, ‘물성’으로 답하겠다. 공책에 쓰는 일기와 메모 애플리케이션에 쓰는 일기, 전자책 리더기와 종이 뭉치 서적의 위계 차이가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는 소유할 수 있고, 질량을 느낄 수 있으며, 왜곡 불가능하면서도 고유한 ‘물성’에 담긴 정보를 기술 발달의 매서운 위협에 맞서 지켜내고 있다. 그야말로 ‘무거운 정보’를 지켜내는 것이다. 이미지에 있어서는 필름이 이 물성을 상징한다. 필름은 작업자의 동의 없이 복제되거나 왜곡될 수 없으며, 영구성을 통제할 수 있다. 마침내, 우리는 동시대 이미지의 특성들이 가져올 재앙을 피할 방법을 과거로부터 찾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성 매체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기술의 찬란한 발달을 이룩할 것이고, 더는 액정 속의 시각 언어를 만드는 행위를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동시대에서 이미지를 만들고 파악할 때 유의할 점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 디지털 상의 이미지는 반드시 영구하거나 반드시 휘발된다. 우리가 이미지를 만드는 순간, 클라우드 등을 통해 이미지에 대한 데이터가 업로드된다. 인류가 존속하는 한, 혹은 인류의 멸종 이후에도 이 데이터는 보존된다. 하지만 우리가 단 한 번의 클릭만 한다면 이미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사라지고 만다. 둘째, 이미지는 인상이다. 이미지는 가장 강력한 시각언어가 되었다. 18세기에 떠나간 누군가를 기억할 방법은 그가 남긴 편지나 글이었다면, 21세기의 사람들은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이미지를 남긴다. 그리고 우리 이후의 지성 생명체들은 그 이미지로써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이미지 특성을 기준으로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유의미하길 바라는 이미지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 그리고 당신의 존재는 어떤 이미지로써 증명될 것인가? 마지막으로, 홍대신문을 읽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디지털 노마드(Nomad)들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당신의 이미지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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