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당신은 어떤가요?, 『도요새에 관한 명상』(1979)

인간의 오만함에 대하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진강 하구 모래톱. 각양각색 새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동진강 하구 모래톱. 각양각색 새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제 막 중간고사를 마친 기자는 많지 않은 시간이지만, 『도요새에 관한 명상』(1979)의 배경을 답사한다는 생각에 들떴다. 작품에서 꼬집은 참담한 근대 산업화 현장, 그로 인한 환경 파괴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니! 마감까지 일주일 남았다는 점, 동진강 부근에 교통편이 비교적 열악하기에 차를 빌려야 하지만 차를 빌리기에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점 때문에 하루 남짓의 시간밖에 할애할 수 없었다. 시간적 제약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신문사에서 나름 베테랑에 속한다는 자부심에 하루는 별거 아니라고 치부하며 동진강 하구로 향했다.

김원일 작가(1942~)의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총 4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 장 마다 ‘병식’, 병식의 형인 ‘병국’,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가 번갈아가며 화자로 설정된다. 화자들은 각 사건에 각자의 생각을 드러내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나’(병식)는 강 하구 얕은 언덕에 앉아 있었다. 삼각주와 넓은 바다가 잘 내려다보였다. 이제 날이 밝아오는 참이었다. 강 하구에서부터 갈매기들이 날아올랐다. (중략) 자유스러웠다. 한껏 해방된 그 날갯짓이 부러웠다. 주위의 뭇눈길로부터 나도 저렇게 해방될 수 있다면. 그 해방을 어른들은 방종이라고 말했다. 타락했군, 하고 손가락질했다. 사실 손가락질은 저들이 받아야 마땅했다. 우리 세대의 타락은 그들에게서 배웠다. 그들은 자동 기계로 찍어 내듯 새로운 타락 방법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 방법을 답습할 뿐이다.

 

▲석교천
▲석교천

대학 입학에 실패해 재수생 신분인 병식은 성실한 재수생은 아니다. 같은 처지의 친구 ‘족제비’와 술을 마시거나 사교 모임에 나가는 등 욕구를 절제하지 않는다. 족제비는 병식보다 현실적이고 속물적이다. 족제비의 권유로 병식은 족제비와 함께 갯벌에 독이 든 콩을 뿌린다.  박제사에게 새를 팔아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기자는 둘의 ‘범죄 현장’인 동진강 하구의 모래톱으로 향했다. 크지 않은 모래톱이었지만, 새들은 꽤 많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실망했다. 강 한가운데 있는 모래톱이었기 때문에 가져간 카메라의 줌을 최대로 당겨도 모래톱 위에 앉아 있는 새의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없었다. ‘큰 소리를 내 날아오르게 할까’라는 충동이 들었지만, 인터넷에서 읽었던 새 촬영 윤리가 떠올라 그만뒀다. 멋진 그림을 찍을 낌새가 안 보이자 아쉬웠지만, 저녁 어스름에 그림이 나오길 기대하며 석교천으로 향했다.

 

“두고 봐라. 내가 기필코 석교천은 물론 동진강까지 예전의 자연수 상태로 만들고 말 테니.”

누가 들으란 듯 내(병국)가 혼잣말을 했다. 그 말은 내 자신에게도 수천 번 반복하여 자기 최면에 걸린 말이었다. 누가 이 말을 듣는다면 터무니없는 헛된 집념이라고 나를 비웃을지 모른다. 아니, 미쳤다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그러나 지구의 절반을 한 해 두 차례씩 건너다니는 그 작은 도요새의 인내와 고통만큼 그 일이 내게 결코 어렵게 생각되지 않았다.

 

병국은 어릴 적 수재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데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대학으로부터 제적된다. 이에 병국은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그를 반기는 사람은 몇 없다. 그토록 그를 아꼈던 어머니마저도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자 병국을 증오한다. 이런 환경에서 그는 새와 환경오염에 집중함으로써 삶의 목표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기자는 그가 혼신을 다하며 탐구했던 석교천 부근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석교천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앞서 봤던 동진강도 겉보기에 흠잡을 점이 별로 없었다. 1970~1980년대 사람도 기자와 비슷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 눈에는 병국이 유난을 떠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석교천에 폐수를 방류하는 기업을 고발하면 어김없이 보복, 회유, 협박이 돌아온다.

 

“국민 소득 1천 달러 달성에, 오늘날 조국 근대화가 다 무엇으로 이루어진 성과인 줄 선생도 알지요?”,“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겠다는 미친놈 짓거리를 이번으로 뿌릴 뽑아야 해!”

 

▲석교천 인근의 공장단지(위)/지역 주민들이 공단 인근에 걸어놓은 현수막(아래)
▲석교천 인근의 공장단지(위)/지역 주민들이 공단 인근에 걸어놓은 현수막(아래)

병국의 탐구 정신을 좇고자 석교천 근처 공단으로 향했다. 일요일을 맞아 조용하던 공단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한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내용은 “김제시민의 먹거리와 물을 오염시키는 땅속 35m 폐기물덩어리”였다. 도요새를 비롯한 철새와 매연을 내뿜는 공장 촬영에 실패한 기자의 첫 성공적인 촬영지였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진을 찍은 후, 진정하고 내용을 곱씹었다. 환경오염은 당장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중에 어찌할 수 없는 재해로 돌아온다. 우리는 그것을 자주 경험하고 있다. 작년 여름의 폭우, 봄철 미세먼지, 이번 가을 급변하는 기온 등등. 지역 주민은 폐기물 덩어리가 향후 끼칠 피해와 생태계 교란을 방지하기 위해 병국처럼 노력하고 있었다.

 

세월의 부침 속에 고향에 대한 내 향수도 차츰 식어 갔다. 이제 새 떼가 부쩍 줄어든 동진강 하구도 내 인생과 함께 황혼을 맞고 있었다. 동진강이 악취 풍기는 폐수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지금 보는 바다 역시 헤엄쳐 북상하면 며칠 내 고향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던 거리가 까마득히 멀어 보였다. 철새나 나그네새는 휴전선을 넘어 자유로이 왕래하건만 나는 그곳으로 갈 수 없다는 안타까움만 해가 갈수록 내 이마에 깊은 주름을 새겼다.

 

‘아버지’는 이북땅인 강원도 통천군 두백리가 고향이지만, 휴전선에 가로막혀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실향민 신세가 됐다. ‘아버지’는 약혼자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지속되는 분단 상황으로 고향에 돌아가는 꿈을 거의 체념했다. 통일을 바라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지난 10월 5일(화)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열린 ‘2021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매우”와 “약간 필요하다”를 합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44.6%로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20대는 통일이 “별로” 또는 “필요하지 않다” 비중이 42.9%로 연령대별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버지’가 바랐던 염원이 멀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착잡해졌다. 그때 하늘에서 새 소리가 들렸다. 해가 거의 저물었기 때문에 실루엣만 보였지만, 새 두 마리는 하늘을 원형 비행하고 있었다. 마치 ‘아버지’의 애환을 달래주는 것 같았다.

반나절 동안 차와 야외에서 활동해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며 이번 기행을 평가해봤다. 이번 기행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뜻밖의 수확을 건지기도 했지만,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이유는 오만함이다. 경력이 좀 생겼다는 인식에서 시작해 어떻게든 잘 할 수 있을거란 생각까지 미쳤다. 세상 모든 일은 다르기에 변수는 생길 수 밖에 없다. 이 작품 속, 한솥밭 먹은 가족도 성격은 전부 상이하다. 이상을 좇고 실천하는 삶을 사는 병국, 속물적이지만 관점에 따라서 현실적인 병식, 이상이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좇진 않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아버지…. 작품 속에서 상상 속 도요새가 병국에게 하는 말은 인간의 오만함과 그것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려 사악하고 간사하고 탐욕하고 음란하고 권력욕에 차 있어,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끝내 너희들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새 두마리가 하늘을 날고 있다.
▲새 두마리가 하늘을 날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