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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Literature - Poem

제46회 홍대 학・예술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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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부문

최우수상 조수연 (게임그래픽디자인 4)

「구름」

우수상 최현수 (국어국문학과 4)

「목소리는 가로막혀」

우수상 유서영 (영어교육과 1)

「차가운 천국」

 

최우수

<구름>

 

나는 아직 어리고 무서워

종종걸음으로 다가갑니다

가파르지 않은 새벽 산길은

활짝 핀 야생화 보기에도 빨리 지나가고,

비탈길에선 풍경을 눈에 담기도 전에 사라집니다

 

계속 미끄러지듯 흘러가며 후두둑 떨어집니다

가보지 않았던 곳까지 가는 동안

초목은 싱그럽고

아주 뜨겁지 않은 오후의 햇살

빗물은 산열매에 송글송글 맺혀 금세 사라집니다

같은 출발선에서 쉬지 않고 떠내려왔는데도

반대로만 가는 우린, 뭉게구름 흐르는 곳이 그립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최우수 당선소감

조수연 (게임그래픽디자인4) 

 

몇 달간 가을 하늘을 보면서 구름이 유달리 크고 몽실거려서 참 좋았습니다. 건조했던 마음에 힘이 되어주었던 깊게 관찰한 일상을 글로 쓸 수 있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금세 변하는 구름처럼 희미해진 순간들이 참 많은데 글을 쓰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 중에서 제가 꼭 간직하고 싶은 기억들을 곱씹어볼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고 솔직해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읽어주시고 좋아해주신 분들 덕에 기쁩니다. 감사하고 고마워요. 

조수연

 

우수

<목소리는 가로막혀>

 

나는 스스로 수조에 갇힌 대왕고래 하나를 안다.

 

하지만 유리판 너머의 나는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 아는 것을 안다고 내뱉어 말하지 못한다. 다른 눈과 다른 언어를 가진 우리는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었고, 앞을 가로막은 유리판은 서로의 숨결이 만들어낸 공기의 떨림까지 감춘다. 시선 사이에서 서성이며 번뜩인 감정이 단단히 뭉쳐 형태를 얻기까지, 언어 너머의 음역을 발견하기까지의 우리는 벙어리들이다. 그에 대해 말할수 있는 것은 햇빛을 거부해온 피부의 빛깔과, 나의 것의 몇 배는 될 눈동자의 크기와, 들이키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커다란 입. 눈에 보이는 것뿐이다.

 

때문에 그가 수조에 들어간 까닭을 다만 나는 짐작해 볼 뿐이다. 하늘에 목을 메달아 날숨의 비린내가 사라지는 동안, 그렇게 흙 내음 나는 맑은 공기 아래서 말라가는 동안, 사람 머리통만한 눈알이 혼자 빙글빙글 돌아가게 될까 두려워. 오래 묵은 살코기의 썩은 냄새가 산 사람의 살결에서 빠져나갈 즘, 발목까지 자라난 잡초를 베며 햇볕 냄새에 파묻힐 어느 미련한 존재의 안부가 걱정되어. 목을감싼 채 굳어버린 해수를 풀어내 틀어막은 숨구멍을 억지로 비집어 못내 숨을 들이켰을까.

 

사실, 어느 결에 도달한 그가 대왕고래로 살기를 저버리게 되었기 때문에, 갇힌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과 이해받는 것이 무용했기 때문에, 관성처럼 되짚은 생각에 다시금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거룩한 말로써 단단한 유리판 안에 새겨진 한 구의 시체가 되고자 했던 나는 어느 대왕고래 하나를 알지만, 수조 밖에는 나와 그 외에 모든 것이 흐르고 있었다.

 

우수 당선소감

최현수 (국어국문학과4)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힘들어진, 참 외로운 시기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각자의 수조에 갇혀버린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세상을 이해하는 자신의 언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몇 번이고 되짚어보는 사람들이 있고, 사랑하는 법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믿고 싶습니다. 그런 생각이 헤엄칠 줄도 모르는 제 목소리에서 이따금 옅은 비린내가 풍길 수 있는 원동력이겠지요. 이 목소리가 수많은 진동으로 형태를 갖춰 타인에게 닿을 수 있게 되어 영광이고, 기쁩니다. 앞으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창작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신 홍대 학예술상 관계자분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우수

<차가운 천국>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치이다가 무너지다가

끝끝내 머물 곳이 없던 너는 근처 맥주집에 들어갔더랬다

차가운 맥주나 마시면서

그냥

무엇이든 잊어버리고 싶었더랬다

 

끝있는 청춘에 고생은 사서 하는 거라며

있는 마음과 없는 체력 끌어모아

제 마음이지만 제일 알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달래고 달래서 겨우 잠자리에 들었더랬다

 

살아도 살아도 어색하기만 한 삶에서

자신은

어떻게든 어떻게든 끼워맞춰도 어긋나는 퍼즐조각 같았더랬다

그저 항상 낯을 가리는 어린아이로 남아 있는 것만 같았더랬다

 

그러다 그날 추운 새벽에 번쩍 눈이 뜨였단다

술김에 창문을 열어놓고 잔 탓이라고 웅얼거리며

입김이 훅훅 나오는 차가운 날씨 덕에 정신도 번쩍 뜨였단다

서리 낀 창문 앞에 서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주택가들을 바라보며 너는

뭐라고 썼다더라

 

아, 아름다운 지옥이라 썼다던가

혹은 차가운 천국이라고 썼다던가.

 

우수 당선소감

유서영 (영어교육과1) 

 

제 시는 하나로 정의되는 특별한 해석이 없습니다. 시를 읽은 후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 시 속의 ‘너’, 혹은 ‘낯가리는 어린아이’가 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고등학생 시절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삶은 항상 차갑지만 아름다운 면모를 모두 지닌 양날의 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과거의 삶도 그러했고 현재의 삶도 그러합니다. 가끔은 그런 삶에 지치고, 시의 주인공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곤 합니다. 그렇지만 매번 무너지고 지치는 건 아닙니다. 어느 날에는 -새벽 공기와 같이-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던 일상적 요소로부터 잊었던 목표를 찾고,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런 느낌을 담고 싶었습니다. 추운 새벽에 여러분들이 접한 세상은 아름다운 지옥이었는지, 차가운 천국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리 무너지고, 마음 둘 곳 없이 흔들리는 삶이더라도, 우리가 쉬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끝 있는 청춘을 겪으며, 끊임없이 세상과 낯을 가리고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 모두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심사평

이승복 (국어교육과 교수)

 

진지한 시도를 만나는 것은 기쁨입니다.

 

한 편의 시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는 그 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만큼이나 중요하다. 까닭은 이러하다. 너무 익숙하다 싶은 상실이나 아픔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서는 도저히 독자의 공감에 다가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어느 순간 반짝하고 느꼈던 격정과 흥분을 오롯이 시에 담는다면 그것은 욕망의 형상일 뿐 간직할 가치가 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 점이 시는 시다워야만 한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시가 시다워진다는 걸까? 답은 이러하다. 첫째, 다듬어야 한다. 그래야 본래의 뜻이 오히려 왜곡되지 않은 채 전달될 테니 말이다. 버리고 다듬는 과정 자체가 시 쓰기의 행위인 셈이다. 둘째, 나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남들이 알아듣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말해야 한다. 세상은 안다. 아무리 나 혼자만의 감정 같아 보여도 실은 남들도 다 해본 감정인 탓이다. 그러니 나만 아는 척해선 안 될 일이다. 반대로 세상은 모른다. 마땅히 알아야 할 놀라운 상황인데도 사람들은 의외로 모르고 있다. 그러면 알려야 한다. 그들이 알 수 있는 말로 꼭 전해야 한다.

이번 학예술상에 참여한 19명 85편의 시는 대부분 이미 시다움의 경계 안에 분명히 들어서 있다. 시답다. 다만 충분하지 않을 뿐이다. 기대와 희망이 새삼 크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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