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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안 바지니, 오수원 옮김, 예문아카이브, 2018

<토론과 설득의 수사학> 변지원 교수가 추천하는 『진실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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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궁금한 시대다. 궁금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는 어려운 복잡한 시대다. 그래서 ‘믿고 거를’ 단서를 찾기도 한다. “단언하는 사람은 믿고 거르세요” “○○자료를 사용하는 채널은 믿고 거르세요” “그래프를 왜곡해 제공하는 기사는 믿고 거르세요” 해석하고 적용하는 고민을 덜어주기에 편리하지만, 빠르게 요령이 공유되는 시대라 단서의 유효기간이 그리 긴 것 같지는 않다. 
가끔 학생들이 철학 전공자인 내게 묻는다. “진리란 무엇인가요?” 수업 후로 대화를 미루어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이제까지 철학에서 논의된 몇 가지 이론을 간략하게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철학사에 대한 지적 호기심에서 나온 전공생의 전형적인 질문이라기보다는 일상을 잘 보내다 문득 당혹스러워져 나온 질문임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 바깥에서 던진 근본적인 질문에는 답답함이 담겨 있다. 
눈치챈 독자도 있겠지만, 첫 문단에서는 ‘진실’이라고 썼다가 다음 문단에서는 ‘진리’로 슬쩍 바꾸었다. 철학에서 더 자주 보는 단어는 ‘진리’이고, 사회에서 더 자주 듣는 단어는 ‘진실’일 것이다. 예컨대, 철학자는 진리론을 연구하고, 시민은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한다. 한편, 일상에서는 ‘사실’을 흔히 쓰고 언젠가부터는 ‘팩트’도 말한다.  
‘진실’, ‘진리’, ‘사실’, 이 세 단어는 모두 ‘참’과 동의어이고 영역마다 선호하는 대표 용어가 다른 것뿐일까? 아니면 참에는 종류가 여럿 있어서 알게 모르게 다른 단어들이 생기고 퍼진 걸까? 학생들과 대화하다 물으면, 조금씩은 다른 의미로 쓰는 것 같다는 답변을 늘 듣는다. 진리는 사실보다 더 거창한 것 같다거나, 진실은 인간과 관련 있어 보인다는 등 어감 차이에 대한 의견도 얻는다.  
세 단어에 대한 의견을 물으며 변죽을 울리는 까닭은, 어떤 것으로 통칭하든지, 참은 한 가지라고 가정한 채 생각을 펼치기 쉽기 때문이고, 그 의문스러운 가정을 드러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진리란 세계에 관한 참된 진술, 혹은 진리란 실재와의 부합과 같은 무난한 정의만 소개해봤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동어반복처럼 들리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홍익대학교는 한국에 있다"나 “눈은 희다”와 같은 비교적 쉬운 사례에 주목해 단일한 기준의 진리관을 갖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진실’의 여러 가지 모습을 접해보면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줄리언 바지니(Julian Baggini, 1968~)의 『진실사회』를 권한다. 원제는 『A Short History of Truth』로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진실’을 10개 범주로 나누어 논한다. 종교적eternal 진실, 권위적 진실, 은폐적 진실, 이성적 진실, 경험적 진실, 창조적 진실, 상대적 진실, 권력적 진실, 도덕적 진실, 총체적 진실. 각각의 특징은 무엇인지, 어떻게 접근하면 좋은지 등을 다양한 사례와 철학 이론을 활용해 안내한다.    
긴 목록 때문에 두꺼운 책이라고 짐작할 수 있지만, 시집 정도의 크기와 두께로 읽기 전부터 위축되는 외양이 아니다. 철학서, 특히 참된 앎을 다루는 인식론으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이라 어렵지는 않을까 걱정할 수 있지만, 저자가 간결하고 명쾌한 글쓰기로 유명한 영국 철학자 바지니다. 그가 일반 독자를 향해 쓴 많은 책이 높은 접근성과 유익함 때문인지 이미 한국에도 꽤 소개돼 있다. 
이 책을 고른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철학을 접해봤자 어떤 입장을 선택해야 하는지 답을 주지 않는다는 불만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축구에서 공을 손으로 거의 못 만진다는 불만과 비슷하다. 철학은 여러 입장을 제안하고, 의심하고, 보완하고, 폐기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확신에 차 특정한 입장을 고를 수 있을 때 우리는 선명함을 느낀다. 하지만 거리를 두고 다양한 지점을 차분히 고려한 끝에 얻는 선명함도 있으며, 생각이 정리되고 뚜렷해지는 이런 선명함은 철학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진실이든 진리든 사실이든 딱히 관심은 없더라도, (바지니의 표현을 빌려) “혼자서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며 얻는 철학적 개운함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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