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갓 고등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나온 이들에게 대학교는 드넓게 펼쳐진 들판과 같다. 울타리에서 나오자마자 자유를 만끽하며 뛰노는 이도 있을 것이고, 방금 태어난 송아지처럼 위태로운 한 발짝을 내딛는 이도 있을 것이다. 무한한 자유가 펼쳐져 있는 듯해도 경험이 부족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두려움이 가득하면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 다행히 대학 사회는 어리숙한 새내기들에게 도움의 흔쾌히 손길을 뻗친다. 대학 내외에 있는 크고 작은 동아리와 모임들이 그러하다. 중요한 사명을 갖고 비장하게 모였거나, 혹은 단순히 공통된 관심사만으로 모였을지라도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소속감을 느끼게 한다. 단체에 소속되는 것만으로도 안정적이고 든든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한편, 어딘가에 소속됨과 동시에 부여받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막중함 또한 생긴다.
얼마 전 대면으로 개최돼 성황리에 막을 내린 본교 동아리 박람회를 보며 대학 내 동아리가 가진 힘이 크다고 느꼈다. 어쩌면 사람들이 어딘가에 소속되고 만남을 가졌을 때 소위 말하는 ‘이상적인 대학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기자 또한 매번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어떤 동아리나 모임에 들어갈 수 있을지 가슴이 설렌다. 기자는 신문사에 들어간 이후 경험해보지 못한 소속감을 느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 지원한 이유가 컸다. 하지만 결국 기자를 계속하도록 이끌었던 것은 기자가 되고 느꼈던 소속감과 경험했던 것들이었다. ‘기자’라는 자리가 지속적으로 기사를 쓰게끔 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이제는 신문사에 익숙해졌고, 기자라는 직책에 익숙해졌지만, 처음 기자라는 직책에 적응하는 건 녹록지 않았다. 예상보다 ‘기사’는 정교하게 맞물린 톱니바퀴들과 같았다. 하나의 톱니바퀴가 어그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시간을 들여 취재하고 글을 적어 내려가는 것은 물론이고,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할 것인지 고민하기 위해 깊은 머릿속 한 켠에는 기사에 대한 고민이 항상 내재해 있었다. 기사의 영향과 파장까지 고려해 기획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언제 이런 일을 해보겠어’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글을 써왔다. 하지만 어려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자가 되어 얻었던 것이 훨씬 가득했다. 기사에 실을 진실된 내용을 위해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곳곳을 취재하는 것에 고충도 있었지만, 그 행위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주변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과거와 다르게, 점점 캠퍼스 곳곳의 크고 작은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자’라는 직위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흔쾌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였다. 신문을 보는 경우도 많지 않다고들 하고, 주변을 돌아보면 홍대신문을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여전히 기사가 가지는 진실의 힘을 믿는 이들이 많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기자의 진실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은 기사가 절대 헛된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사람이 어떤 직위에 있게 되면 그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하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기자라는 자리는 사람을 바꾸어놓았다. 한편으로는 이 자리에 익숙해져서 실수를 하면 어쩌나 하고 경계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기자’라는 이 자리는 너무나 과분하고 감사한 자리라고 매번 느끼고 있다. 사람들에게 신문사가 자유롭고 하고 즐겁기만 한 곳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재미가 찾아온다기보다는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며 스스로 재미를 찾아가야 하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신문사에 들어옴으로써 경험하게 될 것들은 오직 기자라는 자리만이 만들어주는 귀중한 순간들이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 것 같다.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