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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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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려는 노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어왔다. 허상(虛想)과 진여(眞如)를 구별하고, 환영(Phantasma)과 실체(Substance)를 구별하려는 노력이 그것들이다. 미술에서는 ‘진본과 위작’ 같은 논란뿐만 아니라 ‘원본(Original)과 복사본(Copy, Reproduction)’의 문제도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중요한 논점이 된다. 루브르 미술관에 있는 단 한 개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짜 <모나리자> 작품은 복사본인 포스터, 달력, 잡지 등의 각종 인쇄물로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인쇄물들이 가짜 <모나리자>인 것을 안다.
같은 작품이 여러 개가 존재하는 복수원본(Multiple Original)인 판화와 사진, 멀티플 아트인 경우에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것은 좀 더 복잡하다. 이 경우에는 원본이 될 수 있는 정해진 규칙이 있다. 예를 들면 같은 그림에 작가가 원하는 만큼만의 수량에 한정매수(Edition)를 매기고 사인을 해서 이것이 원본 작품임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복수원본은 예술품을 특정 계급이 향유하는 것에서 벗어나 일반 대중에게까지 확대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원본이 여러 개가 존재하다보니 가짜가 나타날 가능성이 더 많다. 예를 들면 작가의 사후에 다시 찍어서 가족 구성원이 대신 사인한다거나, 혹은 드물게는 작가가 자신의 유화와 같은 일품 원본을 복제한 복사본들을 원본인 것처럼 유통 하는 비윤리적인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오프셋 인쇄로 복제를 할 때에는 상대적으로 작품 크기의 제약이 있고, 또한 여러 작품을 소량 복제하는 것에는 불리했으나, 최근에 나온 디지털 복제는 크기의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여러 작품의 소량 복제에도 적합하기 때문에 특정 기획사에서 유명 화가의 작품을 디지털 프린트 방식으로 복제하여 ‘아트 에디션(Art Edition)’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해서, 포스터와 인쇄물과 같은 복사물을 마치 원본인 것처럼 포장해서 케이블 TV나 인터넷 마켓에서 판매하는 것도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20세기 말부터 우리의 곁에 디지털 가상이라는 새로운 현실이 등장했다. 가짜로 치부되던 디지털 가상세계(Digital Virtual Reality)가 현실세계(Reality)와 순환하면서 진짜 세계의 한 축이 되기 시작하였다. 디지털 가상세계를 현실에 가장 먼저 적용하는 분야는 메타버스나 클라우드 사업과 같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기업일 것이다. 그 후에 정치나 사회, 문화 예술분야에서도 그 뒤를 이어 적용하기 시작하고, 맨 나중에 보수적인 교육 분야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교육 분야에서도 가상으로까지 그 교육 범위가 확대되면서 개념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대학도 학제 간의 융복합과 관련하여 새로운 편집과 배치가 되어야 가상이라는 새로운 지형도에서 생존에 유리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몸담고 있는 판화과의 경우에는 판(版. Plate)에 현실세계를 담아 복수로 이미지화하던 것에서 벗어나, 디지털 가상까지도 표현해야 하는 것으로 그 개념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가상의 클라우드(Cloud)에서 최적화된 정보(Data)가 현실세계와 순환하기 위해서는 컴퓨터프린트, 레이저프린트, CNC 방식의 컷팅기 뿐만 아니라 3D 프린터, UV 프린터 등의 기기를 이용해야만 한다. 이렇게 확대된 개념에서는 프린트 기기에 판(版)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인 판화(版畵, Printmaking)라는 명칭에 얽매이면 새롭게 등장한 가상세계에서의 활동을 포기하게 되고, 그 영역이 축소되고 만다. 그래서 최근에는 서구의 대학에서 판화과에서 ‘프린트(Print)과’나 ‘프린트 미디어(Print Media)과’로 과명을 변경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도 ‘판화(Printmaking)과’에서 ‘프린트 아트(Print Arts)과’로 과명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가상세계가 현실세계와 순환하면서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 그것은 원본와 복수, 복제의 개념과 소유와 유통 방법이 획기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원본은 양에 있어서 한정적이었지만 디지털에서는 무한적이다. 그리고 소유와 유통방식에 있어도 작품이 물질이 아닌 정보(Data)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인터넷 망에서 유통되고 존재하게 된다. 최근에 등장한 ‘대체 불가능한 토큰’인 NFT(Non-Fungible Token), 혹은 크립토 아트(Crypto Art)라고 불리는 예술작품은 인터넷 상에서 암호화 된 고유식별번호로 소유권을 증명한다. 그런데 이러한 디지털 저작물인 예술작품은 서버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같이 사라진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NFT로 민팅 된 원본 파일은 무한 ‘복붙’이 가능하다는 것과, 원작자의 허락이 없이, 즉 저작권을 침범해서 가짜가 활동하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해킹에 취약하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이런 시기에 가상을 현실로 물성화하고, 전통적으로 진짜를 구별하는 방법으로서 ‘복수원본’이라는 개념을 성립해왔던 판화매체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가상세계로까지 확대된 예술작품들의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몸을 가지지 못한 디지털 가상에 촉각이 주도하는 공감각적인 물성을 입혀 현실과 순환하게 하는 ‘판화(Print Arts)’는 없어서는 안 될 매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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