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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프리다>와 여성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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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de Rivera, 1907~1954)를 아는가? 아마 우연히라도 한번은 그녀의 자화상을 봤을 것이다. 정면을 주시하는 검은 눈과 이어진 짙은 눈썹이 매력적인 칼로의 모습이다. 지난 3월 초부터 5월 말까지 창작뮤지컬 <프리다>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되고 있다. 칼로에 대해 어렴풋하게 아는 사람들이라면 관심을 가져도 좋을 작품이다. 필자는 이 작품을 며칠 전에 접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칼로라는 사람을 잘 분석하여 보여줬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녀의 우울증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작품 안에서는 세 번의 사이렌이 등장한다. 칼로는 자신의 사이렌에 대해 말한다. “아주 큰 시련이 찾아올 때마다 사이렌이 울렸어요.” 세 번의 사이렌을 다 극복하고 <The night show> 자리에 앉은 칼로는 자신 앞에 있는 인터뷰어와 관객들을 향해 감사의 눈빛을 보낸다.
열여덟 무렵 칼로에게 첫 번째 사이렌이 울린다. 그녀는 스쿨버스에서 사고를 당했을 당시 커다란 쇳조각이 자신의 몸을 관통했던 기억을 전한다. 십 대에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린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한꺼번에 닥쳐오면 사람은 자신을 놓기 마련이다. 어쩌면 그녀는 그녀 자신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그림을 그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회복을 도와준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침대 위에 거울을 달고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항상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녀는 매일 자신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고, 가족이란 버팀목은 그녀를 빠르게 회복시켜 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 사이렌, 그녀가 열렬히 사랑했던 남편 디에고가 떠나고 나서이다. 섹스는 사랑이 아니라 본능이라고 말하는 디에고. 칼로는 어린 시절의 침대에서처럼 자주 혼자였고, 고독과 상실감에 빠져 살아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디에고의 아이를 갖고 있었고 뱃속의 아이를 잃는 일은 그녀에게 또 다른 크기의 상실감을 주었다. “모성을 가진 여자의 삶을 살 수가 없었어요” 무대 천장에 비춰지는 그녀의 아기 그림. 관객들은 그녀의 슬픔에 조용히 눈물 흘린다. 거듭되는 유산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칼로의 모습과 그 위로 쏟아지는 창백한 핀 조명이 안타까웠다. 그녀의 상실을 채워줄 누군가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디에고를 증오하지만 결코 놓을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는 디에고 밖에 없었으며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고백한다.
‘여자들은 혼자 남겨지는 것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스스로를 지키거나 관계를 유지하는 것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 종종 관계를 택하곤 했다. 나를 바꿔야만 그가 내게 머문다면 기꺼이 나를 바꾼다. 욕망을 숨기고 분노를 누르고 고통을 견딘다.’ 소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이 보여주듯이, 연애에서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관계에서 동아줄을 찾으려는 심리는 여성의 우울증이 발현되는 방식 중 하나이다. 칼로가 외도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순간들에,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을 떠나가는 아이들을 마주하는 순간들에는, 혼자 남겨질까 무서운 마음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세 번째 사이렌이다. 그녀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야 한다. 척추 수술은 계속 실패로 끝나고 그녀는 자신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고통스럽지만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하기로 마음먹는다. 무대 위로 붉은색 꽃잎이 떨어지고 그녀는 열정을 다해 아름다운 춤을 춘다.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춤이다. 그녀는 남편을 용서했으며 평생 혼자 두었던 자신을 진심으로 위로해준다. 그리고 남은 생까지 혁명가로서 화가로서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무대 위 소복이 쌓인 꽃잎을 팔로 쓸고 공중에 흩뿌리며 춤추는 칼로의 모습이 마치 그녀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더 이상 사이렌이 두렵지 않다. 이제는 자신을 돌볼 줄 알기에 “VIVA LA VIDA!(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여 만세!)”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담은 사이렌들이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회복의 길로 들어선 사람의 말이 아닐까. 화려한 조명과 밴드 선율에 맞춰 칼로가 노래하고 공연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간다. 관객들은 2시간 동안 무대를 채운 프리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필자는 프리다 칼로의 생이, 지금 이 순간에도 홀로 깜깜한 터널을 걷는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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