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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즐거움을, 모두의 즐거움을 좇아

방송작가 신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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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출연자들보다 프로그램의 제작자가 궁금해지는 작품들이 있다. 방송작가와 피디 및 제작진들은 겉으로는 안 보이지만 방송을 빛내기 위해 묵묵히 노력한다. 신여진 작가는 현재 방영 중인 〈청춘스타〉(2022), 〈슈퍼DNA 피는 못 속여〉(2022) 외에 많은 인기 작품들을 집필했다. 27년 차 방송작가가 이야기하는 방송작가의 삶과 업무는 어떤지 살펴보자.


Q. △〈청춘불패〉(2009) △〈한끼줍쇼〉(2016) △〈하트시그널〉(2017) △〈슈가맨〉(2019) 등 다양한 히트작을 집필했다. 이때까지 참여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과 이유가 궁금하다.
A.
 가장 많이들 하는 질문인데, 이 중에 어떤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드냐고 물으면 명확하게 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방송이라는 게 다른 장르랑은 조금 달라서 현재 진행 중인 작품에 가장 애정이 많이 가게 돼 있다. 내가 만들었던 작품들은 다 좋아하는 작품들이긴 하지만, 지금은 현재 방송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가장 크다. 현재 방영 중인 <슈퍼 DNA 피는 못 속여>(2022)라는 ‘레전드’ 운동선수 자녀들의 피땀 눈물을 담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가장 높고, 19일(목)부터 방송되는 케이팝 오디션 <청춘스타>(2022)가 가장 신경 쓰이고 애정이 가는 프로그램이다.

▲<청춘스타> 촬영 현장/ 출처: 신여진 작가
▲<청춘스타> 촬영 현장/ 출처: 신여진 작가


Q. 방송작가를 꿈꾸게 된 계기와 방송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A.
 어렸을 때부터 이문세가 진행하는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1969)를 즐겨 들었다. 그때부터 방송작가를 꿈꿨던 것 같고 그중에서도 라디오 작가나 코미디 프로그램 작가가 되고 싶었다. 친구 친척분 중에 방송작가 협회 회장을 하셨던 분이 계셨는데 그분을 통해 방송작가라는 분야가 따로 있다는 것을 일찍이 알게 됐고, 고등학교 때부터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대학교 졸업반일 때 방송작가 아카데미를 다니고 예능 작가를 하게 됐다. 아카데미에 가면 취업의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 현업 방송작가들이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후배들을 아카데미에서 발굴해가기도 하고 면접 기회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Q. 저서 『부러우면 지는거다』(2010)에서 방송작가를 ‘잡가’라고 표현했는데, 방송작가가 글 쓰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는지 궁금하다.
A.
 작가의 영역은 넓다. 보통 작가가 기획부터 △섭외 △인터뷰 △구성 △대본 △촬영 △편집 △자막까지 전 분야를 섭렵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다양한 일을 소화해야 하기도 하고, 프로그램에 따라 특정 분야에 특화되기도 한다. 기획만 전문적으로 하는 작가들도 있고 섭외에 강화된 작가들도 있고 촬영 대본에 특화된 작가들도 있다. 또한 작가들은 *프리뷰도 하는데 옛날에는 막내 작가가 했지만, 요즘은 아르바이트생을 뽑는 경우가 많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나중에 막내 작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신여진 작가의 저서 <부러우면 지는거다>(2010)/ 출처: 네이버책
▲신여진 작가의 저서 <부러우면 지는거다>(2010)/ 출처: 네이버책


Q. 예능 프로그램의 작가로 활동 중이신데, 예능 대본과 드라마 대본에는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 대본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는지 궁금하다.
A.
 예능도 대본이 있는 프로그램이 있고, 촬영 대본이 있는 프로그램이 있고, 또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예능 대본은 설계 도면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집 짓는 것에 비유하자면, 작가가 어떤 식으로 집을 지을지 설계하고, 집의 양식을 결정하고, 그다음에 설계 도면까지 그린다. 그리고 그 안에 인테리어를 하거나 세공을 직접 하는 사람들은 피디나 출연자다. 그래서 예능 작가들의 대본은 글보다 프로그램의 규칙과 기획 의도가 더 중요하다.
예능 대본은 드라마 대본처럼 분량이 많지 않아 책으로 제본할 필요가 없다. 스튜디오에서 녹화할 때 프롬프트에 대본을 써주는 경우가 더 많아서 대본화 시킬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긴 글보다는 대본을 위한 자료들을 준비해야 한다.  

Q. 〈하트시그널〉이나  〈한끼줍쇼〉와 같은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돌발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클 것 같다.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서 돌발상황이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하다.
A.
 사실은 사고만 아니면 늘 돌발이 있기를 바라면서 만드는 게 예능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런 돌발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지를 예측해서 예능 대본을 만든다. 대부분 오프닝이나 클로징, 진행 멘트를 빼고 나머지들은 일어나기를 바라는 예측 상황들을 써둔다. 그렇게 일상생활 중에 *부비트랩을 설치해 최악의 상황 혹은 극한의 상황에서 출연자들의 대처 방법을 보는 것이 예능이다.
평범한 가정의 저녁 식사에 함께 참여하며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프로그램인 <한끼줍쇼>의 경우는 대본을 쓸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오프닝과 그 동네를 지나가면서 해야 할 얘기들, 출연자에 대한 인터뷰, 근황, 이야기의 흐름 같은 것들만 준비해놓는다. 걸어가면서 발생하는 일들, 집에 들어가서 생기는 일들은 늘 새롭게 생겨나는 일들이기 때문에 제작진이 준비할 수 있는 대본은 ‘벨을 서로 한 번씩 돌아가면서 누른다’, ‘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너무 구걸하지 않는다’ 등의 규칙과 기본 질문들뿐이다.
일반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하트시그널> 같은 경우도 대본이랄 것이 없는 게, 일정표와 시간표를 제외하고는 현장에서 대본을 쓸 수 없다. 하트시그널 대본설이 있었지만, “만약 대본이 있었다면 내가 0표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가만히 있었겠느냐”라는 출연자의 말처럼 대본은 없고 부비트랩을 설치해 놓는 정도만 한다.

▲방송 하트시그널/출처: 채널A 뉴스
▲방송 하트시그널/출처: 채널A 뉴스


Q.  〈하트시그널〉은 〈짝〉(2011) 이후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흥행에 첫발을 뗀 프로그램으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트시그널〉을 기획하게 된 계기와 기획하면서 어떤 점을 고려했는지 궁금하다.
A.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의도를 한 줄로 얘기한다면 “썸 타는 집을 만들어 한 달 동안 한 집에서 남녀가 함께 산다면 과연 사랑에 빠지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한 달 동안 합숙을 한다는 점이 새로운 요소였고, 누가 사랑에 빠졌는지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포인트여서 이 두 요소 때문에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겠다고 예측했다. 우려되는 점도 있었는데, 일반인이 각자의 일상생활을 하면서 한 달 동안 살 수 있을지, 서로 편한 모습들을 보게 되면서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 초반에 커플이 되면 중간에 마음이 바뀔 수 있을지에 대한 점들이 우려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갈등을 만드는 요인들을 추가했다. 사람이 들고 나는 타이밍, 사람의 숫자 등에 변화를 주고 *메기효과를 만들었다.
촬영할 때는 최대한 출연자들의 심리적인 부분을 고려해 무인 카메라를 설치하거나 벽을 설치해 촬영하는 제작진이 출연자들 눈에 자주 띄지 않게 했다.
출연진 섭외는 작가와 피디가 함께 했는데, 첫 번째 시즌에는 출연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직접 SNS에서 찾아보거나, 지인 중에서 찾아보거나 회사 홍보팀을 찾아보기도 했다.

Q. 올해로 방송작가 경력이 27년차인데, 한 분야에서 오래 있으며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A.
 비결이 있다기보다는 내가 관심 두는 것, 남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이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내가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어서 고민이다. 너무 다양한 아이템들이 있다 보니 선택에 어려움이 생겼다. 예전에는 시대가 요구하는 유행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요구사항 자체도 없는 것 같다. 코로나19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살고, 이전에 비해 시청자가 세분화 되어 누구에게 초점을 맞춰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비결을 잊어버린 느낌이라, 어떻게 하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Q.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이 정말 많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방송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항상 프로그램을 하나 끝내고 나면 내가 몰랐던 것을 배움으로써 전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때까지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나 새로운 분야에 대해 또 하나를 배웠다는 느낌이 즐거운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사람들에게 하나의 메시지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들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방송작가에게 많은 자질이 필요하겠지만 ‘결핍’이라는 게 필요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부족한 점이 있어야 열심히 할 것 같은데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너무 높으면 작가를 하기 쉽지 않다. 또한, 작가라는 것을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가끔은 주말이나 휴일도 없이 일해야 하고 밤늦게까지도 일을 해야 하는데 내 인생의 행복을 포기해 가면서까지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을 한다면 작가를 하더라도 즐겁지 않을 수 있다. 이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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