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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더 인상적인 감각, 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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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는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쓰여 있는 냄새의 정의는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기운’, ‘어떤 사물이나 분위기 따위에서 느껴지는 특이한 성질이나 낌새’다. 두 가지 사전적 정의만 봐도 알 수 있듯 냄새는 미묘하게 공기를 바꾸는 힘이 있다. 그래서 종종 우리는 단 꽃향기를 맡고 사랑을 시작하기도, 축축한 비 냄새에 돌연 향수에 젖기도 한다. 어쩌면 시각이나 미각, 청각보다 더 섬세하고도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것이 후각이다. 그럼 우리는 냄새를 어떻게 인식하는 걸까? 이번 기획을 통해 후각의 원리와 그 중요성에 대해 알아보고, 후각을 더욱 똑똑하게 활용해보자. 

 

▲사람의 후각 수용기 /출처: 두피디아 백과사전 후세포[olfactory cell,嗅細胞]
▲사람의 후각 수용기 /출처: 두피디아 백과사전 후세포[olfactory cell,嗅細胞]

냄새를 인지하는 생리학적 원리

사람은 후각상피라는 후각수용체를 통해 냄새를 인식한다. 후각상피는 점막의 상피세포로 신경세포와 비신경세포로 구성되는데, 후각을 통해 인식되는 휘발성의 냄새 분자가 기체 상태로 돌아다니다가 점막에 녹아 후각 신경을 자극한다. 그럼 후각세포가 화학 신호를 전기 신호로 바꾸고 그 전기 신호를 대뇌에 전달해 우리는 냄새를 인지할 수 있다. 우리 뇌에는 어떤 물질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기능을 하는 장벽이 있고, 다른 감각들은 보통 여러 단계를 거쳐 대뇌에 도달하는데, 후각은 특이하게도 바로 대뇌에 전달된다. 이 덕에 냄새나 향기는 우리 머릿속에 더 오래 기억된다.

후각은 기억과 감정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다. 냄새를 인지하는 신경 구조는 변연계에서 처리되는데, 이 변연계가 바로 우리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변연계에 속하는 편도체는 우리가 어떤 향을 맡았을 때 과거에 같은 향을 맡았던 기억을 불러일으켜 그 향에 대한 호불호를 다시금 느끼게 만든다. 편안하고 좋았던 기억과 관련된 향을 맡으면 그때의 감정이 불려와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완화되는 반면, 나쁜 기억과 관련된 향을 맡았을 때 우리는 불쾌함을 느낀다. 이는 생존본능과도 관련이 있는데, 생명에 위협적인 대상의 냄새는 유전적으로 싫어하도록 설계된 경우가 있다. 과거에 먹고 탈이 난 적이 있는 음식은 향만 맡아도 거부 반응이 나오는 경우 역시 그렇다. 또, 우리는 냄새를 학습하기도 한다. 마라와 같은 향신료, 홍어 등 검증되지 않은 냄새는 처음에 별로라고 느꼈다가도 여러 번 반복하고 익숙해지면 좋은 냄새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렇게 후각은 우리 몸을 지키는 생존 면에서도, 기억과 감정 인식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후각 장애의 원인

최근 다시 재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표적인 감염 증상 중 하나는 후각 및 미각상실이다. 시각, 청각과 같은 다른 감각의 부재에 비해 후각 장애는 미디어상에서도 자주 다뤄지지 않은 증상이었으나, 코로나19 확진으로 후각, 미각상실 증세를 보인 사람들이 호소한 불편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후각 장애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 그럼 후각 장애를 유발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후각 장애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부비동 질병이다. 환절기, 감기에 걸려 코가 꽉 차거나 비염, 부비동염, 축농증 때문에 코가 부어 냄새 분자가 점막의 후각신경세포까지 정상적으로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 냄새를 맡지 못할 수 있다. 이를 호흡성 후각 장애라고 한다. 냄새 분자와 후각 신경세포 사이 접촉이 막혀 생기는 것이다. 이와 달리, 후각을 감지하는 신경세포 자체에 문제가 생겨 후각 장애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말초신경성 또는 후각 상피성 장애라고 칭한다. 냄새 분자가 후각 세포에 접촉했는데도 이를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뇌에 문제가 생겨 후각을 처리하지 못하는 중추성 후각 장애도 있다. 덧붙여 화학물질, 약물,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후각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아로마 테라피에 많이 사용되는 라벤더 에센셜 오일 /출처: dreamstime.com
▲아로마 테라피에 많이 사용되는 라벤더 에센셜 오일 /출처: dreamstime.com

향기로운 치료, 아로마 테라피

우리는 과도한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연으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 자연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심신을 맑게 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좋은 향기를 내는 식물이 지닌 약효는 사람의 건강에 도움을 주곤 하는데, 그런 식물들로부터 추출한 에센셜 오일을 신체적, 정신적 건강 개선을 위해 사용하는 치료법이 바로 아로마 테라피이다. 진정 효과가 있는 천연 오일을 상처 부위나 아토피 피부에 발라 진정시키기도 하고, 유칼립투스나 허브와 같은 화한 향을 비염 환자로 하여금 코로 흡입하도록 하여 코 막힘과 점막이 붓는 증상을 개선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또, 디퓨저나 향초 등의 형태로 에센셜 오일의 향이 공간에 퍼지도록 하여 몸의 긴장을 풀고, 우울함이나 불안감을 진정시키기도 한다.

 

생활 속 향이 가지는 의미

음식을 만드는 데 활용되는 합성 착향료부터 샴푸, 바디워시, 향수, 핸드크림, 디퓨져, 방향제 등 조금만 돌아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많은 제품에 향이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념일 선물 단골 카테고리엔 향수, 디퓨저 같은 향 제품이 늘 빠지지 않고, 몇천 원부터 몇백만 원까지 브랜드와 제품 종류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덕분에 향 제품은 남녀노소 특정 없이 다양한 연령층에서 소비되고 있다. 

▲교보문고 시그니처 향 ‘The Scent of Page’ 향초 /출처: 교보문고 공식 홈페이지
▲교보문고 시그니처 향 ‘The Scent of Page’ 향초 /출처: 교보문고 공식 홈페이지

코로나19의 여파로 집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향으로 기분을 전환하는 사람들도 증가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야 하는 대신 향으로 자신을 표현하려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그에 따라 직접 취향에 맞는 향을 제조하는 조향 체험이 더욱 성행하기 시작했고, 연인끼리 향수를 만들러 가는 것이 하나의 데이트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자연스럽게, 소수의 성향에 맞춰 만든 프리미엄 향수를 말하는 ‘니치 향수’ 시장 역시 성장세를 보였다. ‘니치(Nicchia)’는 이탈리아어로 틈새를 뜻하는데, 거기서 파생된 니치 향수는 가격이 더 높아지더라도 본인만의 차별화된 향을 찾는 소수의 소비자들을 즉, 말 그대로 틈새를 공략한 고급 향수인 셈이다. 대표적인 니치 향수 브랜드 중 하나인 딥디크(Diptyque)는 니치 향수 브랜드 확보에 집중하고 있던 신세계 인터내셔널에 의해 국내 판권이 인수되었고, 지난 5년 동안 계속해서 매출성장률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 

 

▲딥디크 향수 /출처: 딥디크 공식 인스타그램
▲딥디크 향수 /출처: 딥디크 공식 인스타그램

매장의 시그니처 향을 정해 고객들에게 일명 향기마케팅을 시행하는 기업들도 있다. 교보문고는 2015년에 기업의 시그니처 향인 ‘더 센트 오브 페이지(The Scent of PAGE)’를 개발했다. 이는 피톤치드 계열의 향으로, 교보문고의 분위기에 맞는 책 향이 연상된다. 개발할 당시엔 판매 계획이 없었지만, 향을 구매하고 싶다는 고객의 요구를 반영하여 2017년부터 해당 향을 담은 상품을 매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교보문고는 향기마케팅을 통해 고객들이 더욱 시원하고 고급스러운 공간을 경험하게 한 것이다. 이처럼 향은 그 공간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해주기도 하고, 정체성을 표현해주기도 하며 결국 우리 기억 속에 더욱 진한 각인을 남긴다. 

 

▲장범준,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출처: FLO
▲장범준,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출처: FLO

후각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작품

후각을 활용한 작품도 적지 않다. ‘새벽 공기 내음’, ‘당신의 향기’, ‘소나기 냄새’. 후각은 보다 풍부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러한 강점 덕에 후각은 다양한 작품과 노래 가사의 단골 소재다. 장범준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 양희은 원곡의 <가을 아침> 중 ‘상큼하고 깨끗한 아침의 향기와’,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 중 ‘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 등 노래 가사에 ‘향기’는 자주 활용되는 단어다. 

김동환 시인의 <산 너머 남촌에는> (1927)의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라는 구절에선 후각적 심상을 활용하여 화자가 그리는 ‘남촌’의 모습을 향토적 정서를 담아 표현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은 ‘냄새’라는 소재를 통해 빈부의 차이를 묘사하여 묘한 계급의 경계를 완성도 있게 표현해내기도 했다.

  

사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 후각이다. 후각은 잊었던 추억을 다시 불러주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고, 소중했던 감정을 다시 일깨워주는 타임머신이 될 수도 있다. 저마다의 인상적인 향, 사람마다 가진 기억과 경험, 순간순간마다 느낀 감정 역시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에 후각으로 기억되는 순간들은 더욱 특별하고 고유하다. 남기고 싶은 나만의 순간을 향기를 통해 기록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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