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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성장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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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게 이번 여름은 유난히도 길었다. 기후 위기라고 매년 더워지고 있는 날씨로 고생한 탓은 아닐 것이다. 이번 여름 동안 기자를 둘러싼 세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습기자로 고작 한 학기 활동한 신문사에서 부편집국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며 챙겨야 할 일은 곱절로 늘었다. 선배들이 보도하지 않았던 주제를 찾으려 매일 온 인터넷을 뒤졌고, 동기들이 아침에 제출하는 기획서를 모아 자료를 만드느라 만원 지하철에 낀 채 노트북을 켠 적도 몇 번 있었다. 오랜만에 얻은 아르바이트 자리는 사고를 치지 않는 날이 드물었다. 지탱해주던 가족의 급작스러운 변화는 현실적인 고뇌를 하도록 했고, SNS를 통해 엿본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여름은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이 되었다. 지금 찬찬히 생각해 보면 변화라는 파도 속에 갇혀 몸부림치느라 여름을 길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 그때는 그 몸부림이 어떻게든 해야 하는 발악이라고 여겼다. 여름의 작열하던 태양이 힘을 잃어가는 지금, 그때를 돌아보니 스스로 성장하려 용쓰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성장’이란 참으로 찬란하고도 고통스러운 단어다. 아마 인간이 소통이라는 걸 시작한 시점부터, ‘성장’은 자신의 한계를 직면하고 고난을 겪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말이 유명한 데에는 성장은 한계를 만나 아파야 한다는 모두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성장의 단계에 놓여있을 때 분노하고, 우울감에 빠지고, 자책하고, 열등감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이러한 감정들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커먼 파도가 되어 우리를 휩쓸어버린다. 그 거센 물의 흐름 속에서 숨을 쉬려 입을 벌리면, 오히려 감정의 파도는 우리의 안으로 소용돌이쳐 더욱더 밑바닥으로 가라앉게 만들어버린다. 그 안에서 무작정 헤엄쳐봐도 파도는 더 거세져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한다. 영원할 것 같은 감정의 파도 속에서 빠져나와 뭍으로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는 더 열심히 헤엄치면 된다고 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파도를 따라 몸을 맡기라고 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한계라는 바닷속 밑바닥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장은 그 파도 안에서 누가 먼저 빠져나오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계를 맞이함으로써 만들어낸 검은 파도를 끌어안은 채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성장이다. 기자도 여름 내내 스스로 만들어낸 파도 속에 갇혀 있었다. 여름의 햇빛조차 들지 않는 그 안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온갖 생각과 고민을 해봤다. 하지만 이제는 깨닫는다. 한없이 타오를 것만 같은 태양도, 이 세상에서 가장 푸를 것 같은 녹음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한계라는 바다의 밑바닥도 모두 스스로 만들어 낸 것임을 알게 됐다. 그렇기에 기자는 담담히 말하고 싶다. “나 여름 동안 나의 한계를 만나서 좀 우울했는데, 그걸 내가 만들어냈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이젠 괜찮아”라고 말이다.

기자가 여름마다 재생 버튼을 누르는 애니메이션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時をかける少女)>(2006)의 감독 호소다 마모루(細田守, 1967~)는 왜 필모그래피 속 계절적 배경이 모두 ‘여름’이냐는 질문에 “여름은 나에게 성장의 계절이기 때문이다”라는 답을 했다. 기자의 스무 번째 여름은 감독의 대답에 동의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고 말한다. 영원할 것 같았던 더위는 이제 마지막 힘을 짜내어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의 팔에 눅진하게 붙어 있고, 푸르렀던 녹음은 이제 울긋불긋하게 물들 준비를 한다. 기자는 여름에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품에 안은 채 가을로 향하는 한 발짝을 지금 떼려고 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여름은 어땠는가? 기자처럼 한계라는 시커먼 바닷속 파도의 밑바닥을 보고 왔는가, 아니면 뜨겁다 못해 투명했던 햇빛 아래에 있었는가? 어느 쪽이 되었든, 우리가 맞이했고 추억할 2022년의 여름이 모두에게 성장의 계절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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