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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이라는 스스로 채우는 족쇄, 랄프 왈도 에머슨의 『자기 신뢰』(2021)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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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떤 가치에 따라 행동하는가?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신뢰받기를 원한다. 신뢰는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효과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식당 주인은 요리 실력과 매장의 위생, 음식의 맛과 질 등을 증명하며 얻은 신뢰로 손님을 유치할 수 있으며, 직장인은 역할에 맞는 바람직한 태도나 자질을 보여주며 얻은 신뢰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상승시킬 수 있다. 이는 가족과 친구같이 상대적으로 가까운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속임 없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신뢰를 확보하여 애정이나 안정감 등의 정신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공급받는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들어왔을 것이다. 다시 말해 ‘언행일치(言行一致)’하면서 지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새로운 환경과 조건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끊임없이 세상을 경험하며 과거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을 우리는 ‘발전’이라 부른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신뢰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며, 과거의 발언과 지금의 행위가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생각을 덮어버린 채 행동하기도 한다. 타인에게 신뢰받기 위해서는 나의 과거와 지금의 행위가 일관돼야 한다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사회가 언행일치라는 덕목을 중시하는 만큼 이를 의심 없이 따르는 이들의 영향도 크다. 이들은 타인의 발언과 행위가 일관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변덕스럽다’라거나 ‘미성숙하다’라는 단정적 평가를 내린다. 우리의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는 관심 없이 오직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우리의 가치를 재단하려는 시도다. 사실 이들의 비난은 자기 신뢰의 측면에서 훈장과 같다. ‘변덕스럽다’라는 말은 나의 가치관이 고정되어있지 않고 주변의 조건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발전적인 특징을 이야기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미성숙하다’라는 표현은 ‘어린아이 같다’라는 말과 같다.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의 표현에 따르면 어린아이는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위해 사회에 영합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어린아이의 경우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비교적 쉽게 드러내면서도 주변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생계를 책임질 필요가 없는 어린아이이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른 또한 자신의 진리를 타인에게 드러냄으로써 신뢰를 얻을 수 있으며, 심지어 언행일치로 얻을 수 있었던 물질적 이익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한 인터넷 강의 강사가 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잠이나 식사 시간, 인간관계에서의 즐거움도 포기한 채 성과를 내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는 주장을 자신의 성공을 통해 증명함으로써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자신의 방식대로 오랜 시간 달려온 결과 완치가 어려운 병에 걸렸고, 건강하지 않고선 목표 달성이 아무 의미 없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험을 통해 자신의 오랜 가치관이 뒤집힌 것이다. 하지만 일명 ‘쓴소리’로 인기를 끌던 강사가 쉬어가면서 공부하라는 조언을 수험생들에게 한다는 것은 일관성을 포기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강사는 본인의 생각 변화 궤적을 솔직하게 수험생들에게 이야기하여 변함없는 지지와 응원을 받았다. 강사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가치관으로 발전하는 동시에, 이를 공유함으로써 타인의 시행착오를 줄여줬고,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에게는 공감을 받았다. 또한 자신의 서사를 들려주며 기존의 ‘독한 사람’이라는 단편적 인물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하는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사람들은 더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면 일관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과거라는 사슬에 옭아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오직 나의 진실, 나를 납득시키는 충분한 진실을 통해 생명력 잃은 상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해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 이전에 자신에게 신뢰받을 수 없다면 스스로 성장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진정한 나를 드러냄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타인의 신뢰, 그리고 진심 어린 고려로 나를 바라봐 주는 사람들과의 교류의 기회 또한 놓치게 될 것이다.

“오늘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단호하게 말하라. 그리고 내일은 또 내일 생각하는 것을 단호하게 말하라. 오늘 말하는 것이 어제 말한 것과 모든 면에서 모순된다고 해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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