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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물을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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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된 지 약 반년 차. 아직 이름 뒤에 적히는 ‘기자’라는 칭호는 무겁게만 느껴진다. S동 211호 문을 두드린 것은 순전히 글을 써야 할 것 같아서였다.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기자는 사실 영화도, 독서도, 글 쓰는 것도 모두 꺼리는 ‘가짜 국문과’였다.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냐는 선배의 말에 말문이 막힌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는 위기감을 느꼈다. 어쩌면 졸업할 때까지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든 것이다. 그러던 와중 신입생 카페에 국문과 선배 기자가 올린 홍대신문 수습기자 모집 글을 읽게 됐다. 없던 취미를 강제로 만들 순 없으니 쓰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작정 기자실에 입성하게 됐고, 현재 갓 수습 타이틀을 뗀 준기자가 됐다.

위기감을 해소해보고자 입성한 기자실은 또 다른 형태의 불안감을 선사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기획서와 기사들은 생전 써본 적 없던 스케줄러를 작성하도록 만들었고, 생각보다 협조적이지 않은 인터뷰이들은 독촉 문자를 보낼지 말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메시지 창을 들여다보게 했다. 그중에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어리바리한 기자 본인의 모습이었다. 시험까지 봤던 표기법을 잊어서 10번씩 다시 찾아보고, 빨간 줄로 가득 찬 피드백을 마주할 때마다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버틸 수 있는 것은 동료가 있기 때문이다. 기자실에서 밤새우던 날들을 추억으로 만들어준 데에는 그들의 힘이 크다. 냉담한 인터뷰 거절을 함께 겪어주고, 밤을 새워야 할 때 잠들지 않도록 전화해주는 동료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수습기자에서 기자 생활이 마무리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는 비단 기자로서의 삶이 아닌 지난 20여 년의 삶 전체에서 그러하다. 세상에 궁금한 점이 많아 이리저리 일을 벌이며 살아왔던 기자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다. 기자의 호기심이 비단 호기심에서 그치지 않고, 성취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곁을 지켜주던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습기자 지원서를 작성할 때, 무수한 빈칸을 채워준 것도 지난 시절 호기심에서 비롯한 기자의 크고 작은 일화들이다. 보수적인 *미션 스쿨에서 인권 동아리를 만들었던 것도, 학생회라는 이름으로 부당한 학칙에 반기를 들었던 것도 모두 함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혼자였다면 닿지 않았을 목소리가 집단 속에서 서로를 숨겨가며 비로소 힘을 얻은 것이다. 그렇기에 홍대신문은 기자에게 특별하다. 중고등학교 때의 일화들이 뭉쳐 기자 생활로 이어졌듯이, 기자로서 겪는 일들이 후에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의 기자 곁에는 또 소중한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물고기는 물을 보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누군가는 당연한 소리라고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는 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이 물속에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물고기처럼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과제와 써야 할 기사, 애써 모른 척하고 덮어놓았던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날이면 지금 어딜 향하고 있는 건지, 잘 하고 있는 건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물에 몸을 맡긴 채 어디론가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설령 방향을 모르더라도 계속 헤엄칠 수 있는 것은, 곁에 다른 물고기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있기에 오늘도 깜깜한 캠퍼스를 뒤로 한 채 함께 S동 211호에서 헤엄치고 있다.

어느덧 새내기 7개월 차, 곧 새내기 직을 사임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 몇 달 후면, 새내기라는 명목하에 용인되던 서투름을 갈무리해야 하는 것이다. 역시나 무섭고 두렵지만, 그래도 곁에 있어 줄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힘을 내본다. 앞으로 들어올 물고기들에게 조금은 멋진 물고기가 될 수 있도록.

 

*미션 스쿨 :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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