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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안미로(Joan Miró, 1893-1983), , 1974, Lithograph, 76x57cm

박물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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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안미로(Joan Mir&#243;, 1893-1983), <Mont-roig>, 1974, Lithograph, 76x57cm
▲ 호안미로(Joan Mir&#243;, 1893-1983), <Mont-roig>, 1974, Lithograph, 76x57cm

“내 모든 작품은 몬트로이그(Mont-roig)에서 잉태된다.”

추상과 초현실주의적 환상으로 자연을 탐닉하고 시적인 예술세계를 펼쳐 보인 스페인의 미술가 호안 미로는 화폭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기호와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조형미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머물렀던 마요르카, 파리(1920년대), 뉴욕(1940년대), 일본(1960년대) 모두 그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우리 박물관 소장품의 제목이기도 한 ‘몬트로이그’는 그에게 충격을 던지는 근원적인 땅으로, 그가 평생 작품과 삶 속에서 회귀하고 힘을 얻는 자기 존재의 심연에 내린 거대한 닻이었다.
‘붉은 산’이라는 뜻을 가진 몬트로이그는 바르셀로나 남쪽의 작은 마을이다. 청년 시기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미로는 부모님의 심한 반대로 크게 병을 앓았다. 그는 온전한 치료를 위해 1911년 가족이 소유한 몬트로이그의 농장에 여러 달을 머물며 요양했고, 이를 계기로 지중해와 인접한 이 붉은 땅의 대자연 풍경에 뿌리 깊은 애착을 갖게 되었다.
몬트로이그가 속한 스페인 북동부의 카탈루냐는 이베리아반도와 유럽의 국가들을 잇는 관문이다. 이런 지리적 요건으로, 이 지역은 다양한 문명의 교차점으로서 오랫동안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다양성을 누림과 동시에 독자성을 확보해왔다. 비옥한 문화적 토양 안에서 특히 스페인 미술의 개화를 상징하는 로마네스크 시대의 카탈루냐 미술은 미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프레스코 성화(聖畫)의 평면성에 천착했고, ‘눈’을 작품의 시각적 언어로 가져와 근본적이고 정신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모티브로 사용했다.
미로는 예술가로서 스페인 내전과 세계대전을 오롯이 겪으며 원근법, 음영, 부피가 주는 환영을 버리고 본질에 침잠하여 1940년대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다. 윤곽이 뚜렷했던 형태들은 응축된 형상으로 변모하고 축약과 강화된 자연의 개념들이 작품에 나타난다. 화면에 도드라지는 검은색은 모호한 인물의 모습에 물질성을 부여하며 구도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위의 작품에도 눈, 사람 혹은 물고기나 동물을 닮은 듯 단순화된 자연의 모티브, 선을 겹쳐 표현한 별과 같은 기호 등 미로 작품의 특징들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평면을 강력하게 지배하는 검정과 원색들이 만들어내는 리듬은 단순하고 강력한 조형미와 결합해 섬광 같은 매력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붙든다.
미로의 작품에서 이토록 선명하게 감지되는 풍성하고 감각적인 매혹은 가장 근원적인 것이 배태하고 있는 폭발적인 창조력을 증명한다. 속도와 너비의 포섭이 미덕인 이 시대에 근원적인 영감을 통해 최소한의 수단으로 최대한의 강렬함에 도달하고자 했던 그의 집념과 열정이 새삼 깊이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벼락처럼 보는 이의 심상에 새겨지는 시각적 은유, 자신의 본연에서 길어 올려 정신의 예술에 호소하는 설득력,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며 스스로에 도전하는 실험정신이 우러난 작품은 진정성 있는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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