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장벽을 넘어, 고립의 시대를 넘어

양희도(예술 15) 동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앙리 마티스, <춤>, 1910, 캔버스에 유화
▲앙리 마티스, <춤>, 1910, 캔버스에 유화

얼마 전 태풍 힌남노가 지나갔습니다. 서울에는 큰 피해가 없었습니다. SNS에는 화창하게 갠 날씨 사진이 올라왔고, 어떤 학우는 우리 학교 익명 커뮤니티에 태풍에 대한 우려가 '설레발'이었다는 글을 적기도 했습니다. 같은 시각 포항과 경주, 울산에서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장례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포항제철의 노동자들은 49년 만에 가동이 중단된 공장에서 밤낮없는 복구작업에 투입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두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특히 서울권 대학생인 나와 삶의 궤적이 다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내 삶을 챙기기도 바쁩니다. 우리가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을 거쳐서 대학에 왔고,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학점 경쟁을 하며, 졸업하고도 취업하기 위해 경쟁합니다. 우리 사회의 유일한 규칙은 각자도생으로 보입니다. 경쟁에서 승리한 소수에게는 큰 보상을 주고, 패배한 나머지 다수에게는 처벌을 내리는 시스템입니다. 어떻게든 이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개인적 성장에만 집중하게 되니, 인식의 지평이 협소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고립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각자를 감싸고 있는 담장을 넘어 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까, 질문을 해 봅니다. 제가 입학하기 십수 년 전부터 선배들이 했던 고민이었고, 선배들은 우리의 생활 공간인 대학 안에서부터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습니다. 체육대회에서의 선의의 경쟁, 함께 준비하고 함께 즐기는 축제 주점, 그리고 동기·선배와 함께 떠나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는 기행 일정, 이러한 공동체 문화들이 그들의 답이었습니다. 선배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학생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내기도 했습니다. 하나 된 목소리는 열악한 대학의 환경을 조금씩 개선해 냈습니다. 15학번 신입생이었던 저에게도 이러한 과정들은 너무나 매력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과제와 알바 등으로 바쁜 학생들이 시간을 내어 운동장에서 집회를 하고, 여러 창의적인 방식으로 학생들의 요구안을 알렸습니다. 우리는 미술대학관의 천장이 언제 다시 무너질까 걱정하면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기만 한 게 아니라, 리모델링을 요구해 모두의 안전을 확보했습니다. 전공수업이 부족해 동기들과 수강 신청 경쟁을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분반 증설을 요구했습니다. 모두 각자도생이라는 장벽을 넘어선 실천들입니다.

코로나19의 쓰나미 속에서도 우리는 관계를 만들고 목소리를 모았습니다. 코로나19 첫해였던 2020년에는 새내기새로배움터, 대동제, 체육대회 등 모든 공동체 행사가 멈추었습니다. 신입생들은 선후배 관계는 물론, 동기의 얼굴조차 몰랐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한 해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1 미술대학 학생회 [함:성]은 학우분들께 대학 공동체를 다시 작동시켜보자는 제안을 드렸습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하나의 함성으로 모이는 학생 공동체를 그렸습니다. 한 해 동안 미술대학 학생들은 온라인 체육대회, 군인권강연, 졸업 선배 토크콘서트 등 40개의 사업을 매개로 어두웠던 학생 사회를 조금씩 밝혀갔습니다. 700명의 학생이 모여 미술대학 학생총회를 개회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에 개회에 실패한 이래로 3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 올해 미술대학 어도비 지원이 시작되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하나 된 목소리는 많은 것들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열악했던 시각디자인과의 변화가 가장 최근의 사례입니다. 시디과는 학교 정책으로 인해 단과대 수준으로 학생 수가 늘어났지만, 실기실은 비좁고 분반은 부족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그랬던 시디과가 매해 조금씩 달라지며 변화가 누적되었습니다. 리모델링 된 실기실, 대부분의 학생이 원하는 전공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분반, 각계에서 이름을 알린 뛰어난 교수진이 만족스럽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수년간 시디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미술대학 학생들이 하나로 모여 목소리를 낸 결과입니다.

제 경험이나 선배들이 남긴 역사가 언제나 통하는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 생활을 보낸 미술대학과 다른 단과대학은 서로 다른 조건에 놓여 있습니다. 또 제가 입학하고 졸업하기까지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고, 여러 사건을 거치며 대학 문화도, 우리 삶의 조건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여러분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을 고민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이루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해가고, 서로에게 배우고, 때로는 목소리를 모아 부당함에 저항도 하는 작은 실천들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홍익대학교의 교육이념은 홍익인간입니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일이 멀리에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타인과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되 공통점에서부터 관계 맺음을 시작하며 작은 연대의 끈을 만드는 게 그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보다 넓은 세계에서 만나기를 기원합니다. 풍부한 가능성을 가진 후배님들의 미래를 응원하겠습니다.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