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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들리는 속삭임을 좇아

욕망에 매혹당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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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사전적 의미는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이다.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자 욕망이라는 마음 가장 깊은 곳의 속삭임에 매혹당해 자신을, 그리고 주변을 파멸로 몰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은교>(2012), <블랙스완(Black Swan)>(2010), 그리고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The Favourite)>(2018)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나간 젊음은 돌아오지 않기에】

영화 <은교>는 지나가 버린 젊음을 원했던 ‘적요’와 재능을 원했던 ‘지우’, 그리고 외로움에서 도망치고자 했던 ‘은교’의 욕망을 담았다. 영화는 존경받는 문학가이지만 이젠 그늘의 늙은이가 된 적요가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를 챙겨주는 건 아들 노릇을 하는 제자 지우뿐이다. 그런 지우와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적요는 사다리를 타고 담을 넘어온 이웃 소녀 은교가 마당 의자에서 자는 걸 보게 된다. 적요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젊음의 싱그러움 그 자체인 은교에게 눈이 가기 시작한다. 소설 『심장』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바빠진 지우 대신 은교가 아르바이트 삼아 적요의 집안일을 돕게 된다. 둘의 거리가 가까워지던 어느 날 밤, 비에 흠뻑 젖은 은교는 엄마의 가정폭력을 피해 적요의 집을 찾아온다. 며칠 후 은교가 비 오던 날 재워준 보답이라며 적요의 가슴팍에 자신의 것과 똑같은 헤나를 그려주는 사이 잠이 든 적요는 꿈속에서 젊어진 모습으로 은교를 안게 된다. 이후 그 꿈을 바탕으로 소설 『은교』를 쓰기 시작한다. 적요의 재능에 집착을 품고 있던 지우는 적요를 변화시키는 은교가 거슬린다. 그런 지우는 은교와 신경전을 벌이다 은교가 절벽으로 거울을 떨어뜨리게 만들기도 한다. 어느 날 지우는 적요가 상자에 묻어둔 『은교』의 원고를 발견하고, 그걸 자신의 이름으로 몰래 발표한다. 그걸 알게 된 적요는 지우에게 분노를 쏟아내고, 세 사람의 관계는 각자의 욕망으로 인해 한 번도 겪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화 중반에서 “내가 이젠 뭔지 모르겠어요. 서지우인지, 아니면 이적요 껍데기인지 구분이 안간다고요”라는 지우의 대사는 욕망으로 자신을 잃어가는 세 사람을 상징하는 듯하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젊음을, 재능을, 신뢰와 사랑을 욕망했던 세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욕망 또한 보이는 듯하다.

 

【완벽함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영화 <블랙스완>은 발레 <백조의 여왕> 속 우아하고 순수한 백조와 달리 도발적인 흑조를 나타낸다. 뉴욕 발레단 소속 무용수인 주인공 ‘니나’는 <백조의 여왕>이 백조와 흑조를 모두 연기할 새로운 주연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완벽한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새로운 발레 단장 ‘토마스’ 앞에서 오디션을 보고 있던 그때, 흑조의 독무에서 실수를 하고 자신은 주인공이 되지 못할 것임을 예감한다. 다음 날 니나는 토마스를 찾아가 “완벽해지고 싶다”라고 말하며 오디션을 한 번 더 보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런 니나의 말에 “가끔은 그냥 자연스레 보내야 할 때도 있다”라고 거절의 답을 하며 느닷없이 입을 맞춘다. 다음날 토마스의 거절과 달리 니나는 주연으로 선발되고, 연습을 거듭한다. 니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토마스는 그녀를 흑조로서 모자란다고 평가한다. 완벽한 백조의 여왕이 되고자 하는 니나의 욕망은 손톱으로 계속 자신을 긁어 피를 내고, 환각을 일으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어느 날 연습에 늦은 자신 대신 흑조의 역을 완벽히 소화하는 동료 ‘릴리’를 보게 된다. 이후 니나는 위기감과 릴리를 향한 열등감, 그리고 주연을 향한 집착이 더 심각해져 환각과 자해가 더욱 심해진다. 공연 당일, 니나는 공연 도중 떨어지는 실수를 범한다. 완벽함을 향한 욕망과 주인공을 향한 집착, 위기감이 최고조에 다다른 니나는 쉬는 시간에 대기실에서 백조 역을 준비하고 있는 릴리를 마주하고, 몸싸움 끝에 깨진 거울로 릴리를 찔러 죽인다. 하지만 그건 니나의 환각이 보여준 환상이었고, 자신을 스스로 찌른 것이었다. 환각이었음을 깨달은 니나는 피날레를 완벽하게 연기하며 “나는 완벽했어요”라고 말한다. 발레리나로서의 순수함과 성실을 바라는 엄마, 백조와 흑조를 모두 소화하길 원하는 토마스 사이에서 니나는 완벽을 향한 욕망에 자신을 환각과 자해로 몰고 간다. 누가 감히 스스로에게 “나는 완벽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완벽을 욕망하던 니나가 어떻게 자신을 잃어가는 지는 등을 손톱으로 긁은 상처와 영화의 막바지로 향할수록 더 심해지는 환각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이것을 지켜보는 우리에게 의문을 던진다. “완벽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나요?”

 

【권력은 독이 든 성배와 같다】

영화 <더 페이버릿>은 19세기 절대군주 앤 여왕의 통치 시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여왕의 가장 가까운 심복이자 시녀인 ‘사라 제닝스’는 여왕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최고 권력자이기도 하다. 어느 날 사라의 사촌이자 몰락 귀족인 ‘애비게일 힐’이 일자리를 달라며 사라를 찾아온다. 애비게일이 왕궁 하녀로 일하던 어느 날, 그는 여왕의 통풍이 심함을 알고 약초를 캐와 여왕의 통증을 낫게 한다. 그것을 알게 된 사라는 애비게일을 자신의 시녀로 삼고, 이에 따라 애비게일은 궁 안의 새로운 권력자로서 대위 ‘마샴’과 토리당 총수 ‘할리’와도 가까워진다. 갈수록 애비게일을 총애하는 여왕의 태도에 위기감을 느낀 사라는 애비게일을 시녀 자리에서 내쫒아 버리고, 여왕에게 질투를 유발하기 위해 애비게일을 이용하지 말라는 경고도 던진다. 한편 애비게일은 권력을 되찾기 위해 마샴 대위와 결혼하고, 사라의 납치를 사주하기도 한다. 여왕의 사랑을 원했던 사라와 여왕의 권력을 원했던 애비게일, 그리고 둘 사이에서 유약해 보이지만 여왕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앤 여왕의 이야기는 과연 어디로 흘러갈지 예상하기 어렵다. 이들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에 좌지우지되는 영국의 정치 상황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이성적이라고 여겼던 정치가 사실 궁내 수많은 스캔들과 권력다툼으로 결정되는 것은 실소를 짓게 한다. 우리는 권력을 가지면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은 지워진다. 영화 <더 페이버릿>은 권력을 향한 욕망과 집착은 결국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더 밀어 넣는 꼴이 된다는 걸 보여준다.

 

욕망이 무조건 나쁘고 잘못된 감정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영화 세 편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욕망에 집착해 결국 자신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파멸로 몰고 갔다. 자신의 부족함이 느껴져 더 큰 무언가를 원하게 되는 순간이 우리에게 온다면, 이들의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겨보는 것은 어떤가. 마음속 가장 깊고 달콤한 속삭임이 항상 옳지는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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