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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위해 살아가야 할 당신에게, '소공녀'(2018)

내 행복에 당신이 충고할 자격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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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메인 포스터/출처: 네이버 소공녀 포스터
▲소공녀 메인 포스터/출처: 네이버 소공녀 포스터

수많은 현대인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을 가지고 산다. 한강 뷰 아파트에 초고층 주상복합.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통창의 주거 공간. 편하게 쉴 수 있는 나만의 집을 갖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곤 한다. 그런 공간을 소유함으로써 얻는 안정감을 위해서다. 하지만 여기, 담배와 위스키 살 돈이 부족해서 집을 포기한 청춘이 있다. 바로 영화 <소공녀>의 ‘미소’다. 미소는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만 있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의 집을 청소해주며 생활비를 버는 미소는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는 작은 쪽방에서 산다. 빠듯한 생활을 하던 미소는 담뱃값이 인상되자 집세로 인한 지출을 없애기로 결정한다. 가계부를 작성하다가 위스키나 담배가 아닌 집세 항목을 지워버리는 미소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다. 미소의 안정감은 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기에, 미소에게 집을 포기하는데 깊은 고민은 필요하지 않았다. 

 

▲미소의 집 앞
▲미소의 집 앞

미소가 사는 집 외관의 실제 촬영지는 서울 중구의 한 골목이었다. 기자는 미소의 집에 찾아가기 위해 시청역에 내려 조금 걸어갔다. 담배꽁초가 많이 떨어져 있는 좁은 골목에 익숙한 계단이 보였다. 미소가 집 앞 난간에 기대 담배를 피던 철계단은 영화 <소공녀>만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조금은 어둡지만, 눈에 익은 그 골목에서 미소가 지었던 표정을 떠올려보았다. 미소는 이곳을 뒤로 하고 캐리어를 끌고 나와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기 시작한다. 미소가 찾아간 친구들은 과거에 미소와 함께 밴드 생활을 했던 멤버들이다. 지금은 다들 저마다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미소는 달걀 한 판을 사 들고 찾아가 잠깐만 머물러도 되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친구들 집은 하나같이 오래 있을 수 없는 곳이었다. 미소가 그곳에서 오래 지내기에는 그들의 세상이 조금 좁다. 큰 대출을 받아 아내와 함께 살 집을 샀지만 이혼한 동생, 남편 눈치 보며 시댁에서 준 저택에 사는 언니, 넌 들어와 살기만 하면 된다며 본인과 결혼하자는 오빠. 다들 어딘가 결핍되어 괴로운 구석이 있다. 미소는 그런 친구들을 본인의 방식으로 대하고 위로한다. 어질러진 집을 정리해주거나 맛있는 음식을 해둔 다음, 그 친구와 찍었던 사진 뒤에 메모를 남겨두고 짐을 챙겨 나온다. 슬쩍 보면 가장 가난하고 불행할 것 같은 미소가, 가장 어른스럽고 평온해 보인다. 미소는 본인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미소가 만화를 그만두고 돈을 벌러 외국에 가겠다는 남자친구 한솔과 다툰 길
▲미소가 만화를 그만두고 돈을 벌러 외국에 가겠다는 남자친구 한솔과 다툰 길

담배와 위스키 외 미소의 행복인 남자친구 한솔은 웹툰 작가 지망생이다. 미소는 한솔과 헌혈해서 받은 영화표로 데이트하고, 추운 집에서 꼭 붙어 손장난하며 논다. 또한 미소는 한솔이 하고 싶어 하는 만화 일을 진심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한솔은 그런 미소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 몇 년째 잘 풀리지 않아 돈벌이가 변변치 못한 자신 때문에 미소가 갈 곳 없이 고생한다고 생각한다. 이 둘이 데이트하며 걷던 길을 찾아 경복궁에서 옥인동 인왕산 근처 주택가까지 하염없이 올라갔다. 해가 질 무렵의 오르막길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미소와 한솔은 손잡고 이 길을 오르며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을까. 올라가는 길목 중간중간 내부가 보이지 않는 작은 카페, 뜬금없이 위치한 단층의 하얀 옷 가게, 간판도 제대로 달아 두지 않은 식당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사람들도 많지 않은 이곳에서 ‘과연 장사가 잘 되려나’라는 생각이 든 찰나, 절묘하게 가게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는 기자의 오지랖에 “우리 그냥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 괜히 뜨끔했다. 그 가게들은 미소와 닮아 보였다. 큰 욕심 없이 그저 평온해 보였다. 사회적 잣대와 기준에 어긋난 미소의 선택을 따라온 기자인데 그 사회적 잣대가 되어버린 기분을 잠시 느끼며 계속해서 발걸음을 위로 옮겼다. 달 모양이 슬쩍 진해질 즈음, 미소와 한솔이 함께 꼬치를 먹으며 길을 걷던 장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한솔은 미소에게 만화는 그만두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돈을 벌러 갈 거라고 통보한다.  그 말을 들은 미소는 한솔에게 배신자라고 한다. 여유롭던 미소의 얼굴에  처음으로 진지한 위기감이 드러난 장면이다.

 

미소: 사람답게 사는 게 뭔데?

한솔: 알잖아, 그렇고 그런 것들. 남들 다 하고 사는 것들 우리도 해보고 싶어서.

미소: 나는 담배, 위스키 그리고 한솔이 너. 그게 내 유일한 안식처야. 너도 알잖아. 근데 네가 없으면 어떡하라고.

 

외국에 가서 돈을 벌면 몇 년 뒤에 돈이 모일 거라고 말하는 한솔에게 미소는 먹던 꼬치를 바닥에 던지며 화를 낸다. 미소는 지금이 충분히 좋다고 말한다. 무엇을 하든, 돈이 있든 없든 미소는 그저 더 바라는 것 없이 한솔과 함께 있는 시간이 삶의 원동력이자 행복이었던 것뿐이다. 

 

▲미소의 단골 위스키 바, 코블러
▲미소의 단골 위스키 바, 코블러

왔던 길을 따라 다시 언덕을 내려간 기자는 미소의 단골집인 위스키바로 향했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지나 바에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 영화에서 미소가 시키던 위스키, 글렌피딕을 주문했다. 위스키가 나오고, 기자는 아무 말 없이 위스키 잔을 바라보며 한 시간을 앉아있었다. 친절한 바텐더의 설명과 잔잔한 사람들의 말소리, 서로의 취향이 섞인 음료가 만들어지는 소리, 조용한 노란빛 조명 모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따뜻하게 내버려 두었다. 혼자라고, 아무 말 하지 않는다고 눈치받지 않았다. 개인적인 고민 역시 잠시 잊어버릴 수 있었다. 쉬러 오는 단골손님 역시 많은 것 같았고, 미소도 위스키를 마시며 그렇게 나름의 위로를 받았을 것만 같았다. 

 

미소: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타인을 존중하며 본인의 행복을 위해 사는 미소의 표정/ 출처: 네이버 소공녀 스틸컷
▲타인을 존중하며 본인의 행복을 위해 사는 미소의 표정/ 출처: 네이버 소공녀 스틸컷

미소의 발자국을 따라 서울 종로구 일대를 돌아 다니면서, 어쩌면 미소에게는 자유로움이 가장 큰 삶의 목적인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삶의 방식을 가지고 우린 살아가고 오늘도 그렇게 다들 떠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온전히 우리가 원하는 삶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걸까? 20대를 갓 시작한 기자가 느끼기에 여유는 돈에서 비롯된다. 스스로 돈을 버는 상태에 도달한다면 딱히 뭔가에 매달려야 할 필요도, 끊임없이 갈망할 필요도 없이, 베풀 여유가 생길 것만 같다. 그래서 좋은 성적, 좋은 경험치와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일 거다. 그런데 미소의 여유는 그렇진 않았다. 본인의 상황이 여유로운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 행복한 길을 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본인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것 역시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숨기지 않는다. 미소가 찾아간 친구들은 미소에게 집 살 돈이 없는데 담배랑 술 안 끊는 거 이상하지 않냐고, 이렇게 굴면 염치없는 거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미소의 삶은 사회적 잣대 안에선 행복한 삶이 아니니 말이다. 우리는 대학으로 줄을 세워 평가하고, 직업으로 서열을 나눠 왈가왈부하며, 집 평수와 시세로 그 사람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가늠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끊임없는 평가의 굴레 속에서 끊임없이 세상의 눈치를 봐가며 맞춰 살아야 하는 그런 사회에 살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기준의 행복은 미소가 생각하는 행복과 다르다. 미소는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크게 왈가왈부하지도 않는다. 

 

미소: 난 민지씨가 좋아하는 일 하니까 기뻐요. 우리 밥 먹을래요? 땡기는 거 없어요?

 

그저 이해하고 칭찬하며, 놔두고 바라본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고 서로에게 뭐라고 할 자격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각자의 행복에 그저 미소를 보내면 되는 것이다. 사회적인 평가 기준에 맞춰 미소는 불행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도, 열등감에 괜히 충고를 하는 것도, 안쓰러워 보인다며 이기적인 도움을 보내는 것도 사실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저 동등하게 그 사람의 행복을 꼬임 없이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 어떻든 괜찮다는 듯이. 

미소는 최선을 다해서 자기 자신이 가장 행복할 선택을 내렸다. 그런 미소의 모습은 본인과 사회의 괴리 사이에 낀 채 고통받는, 괴롭고 우울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준다. 주변의 기준에 쉽게 흔들리고 있던 기자 역시 미소를 보며 큰 위로와 해답을 얻었다. 미소가 친구들에게 남긴 메모처럼,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도 지금도 당당히 살아가고 있을 미소를 통해 본인의 삶을 잘 되돌아보길 바란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합격 도장을 받으려는 욕심은 버리고, 본인의 안정감은 어디에서 오는지 깊이 살펴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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