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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른 ‘시’, 아시아의 노래

《춤추는 낱말》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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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낱말>전시회 입구
▲<춤추는 낱말>전시회 입구

‘춤추는 낱말’, 이곳에는 그저 하나의 ‘시’만이 존재한다. 시(詩)란 독자의 감정이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학 작품, 동시에 언어의 울림이자 음악이기도 하다. 이 전시에서 예술가들은 시가 마음껏 춤출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한다. 결국, 시는 예술가의 작품과 하나가 되어 공간을 날아다닌다. 작품으로서 날아오른 시는 공간 속을 유영하고 시어가 품은 미묘한 정서와 다양한 사유는 우리 생각을 확장한다. 나아가 집단적인 (무)의식과 감각, 생동하는 힘을 만든다. 이번 전시 <춤추는 낱말>展은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 의제인 ‘시(Poetry)’를 성찰한다. 전시를 한 편의 시로서, 또한 여러 창작자의 실천(활동)은 공동의 심상을 자아내는 시어로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이에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은 시의 속성을 아시아에 기반을 둔 군중의 노래이자 저항의 언어로 표현했다. 

 

▲<Prayers No.1~39>(2017)
▲<Prayers No.1~39>(2017)

전시는 2층 복도부터 홍영인(1972 ~) 작가의 <Prayers No.1~39>(2017)으로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선들로 이루어진 자수 작품이다. 얼핏 봐서는 의미를 찾기 어렵지만, 작가는 자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선들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기록한 과거 사진에서 가져왔다. 일반적으로 과거의 사진은 역사적 유명 인물 개인과 사건 각각을 주목하게 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 뒤에 가려진 수많은 군중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운동가, 정부의 폭력에 반대해 시위에 나선 수천 명의 사람들. 작가는 근현대사에서 지워진 이름 없는 군중들의 사진에서 실루엣을 따, 자수로 담아낸다. 이 과정에서 사건을 담은 구체적인 이미지는 ‘사진이자 악보’로 재기술된다. 작품에 놓은 수는 하나의 음표가 되고, 교차하는 실은 악보가 되어 사건을 연주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기록에서 제외된 역사는 무엇인지 질문한다. 악보의 음표처럼 검은 선의 자수 작업은 잊힌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잊힌 역사를 새로 쓰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천국에서, 그들>(2018)
▲<천국에서, 그들>(2018)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샹들리에와 드럼, 가면 등을 이용해 마치 의식을 진행하는 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샹들리에의 은은한 빛, 가부좌 자세를 하고 샹들리에 주위를 둘러싼 구조물,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노래가 합쳐져 경건한 느낌을 부여한다. 이는 좀펫 쿠스위다난토(Jompet Kuswidananto, 1976 ~)의 <천국에서, 그들>(2018)이란 작품으로 1888년 서부 자바에 있었던 반식민지 반란과 2002년 발리 폭탄 테러까지, 인도네시아 역사 전반에 걸쳐 발생한 저항 사건들에서 영감을 받았다. 여러 사건 속에서 작가는 ‘믿음’에 대하여 고찰한다. 믿음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버틸 힘과, 우리를 괴롭히는 존재에 맞서 싸울 용기를 준다. 한편, 어떤 믿음은 타인을 지배하게 만들고, 분노와 폭력에 사로잡히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믿음은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을까? 무한한 믿음만 있다면 모든 것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므로 하염없이 실수와 후회를 반복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믿을 때, 믿음은 우리를 천국과 같은 평화로 데려가기도 한다. 때론,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절망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믿음’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검은 유랑>연작(2011~2016, 2018)
▲<검은 유랑>연작(2011~2016, 2018)

3층에 들어서면 강서경(1977 ~)의 <검은 유량>(2011~2016, 2018) 연작을 볼 수 있다. 전시장 곳곳에는 서로 다른 제목을 가진 조형물들이 놓여있다. 비슷하면서 달라 보이는 사물은 전시장 안을 유랑하는 느낌을 준다. 곳곳에 배치된 작품들은 따로 떨어져 있지만 한데 뭉쳐 있는 것 같고, 비슷한 모양과 구조가 서로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든다. 이는 마치 개인이 모여 집단이 되고, 집단이 모여 사회가 되는 인간 사회를 표방하는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과거란 무엇인가”, “현상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수히 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또 무수히 많은 ‘시’가 쓰인다. 시가 쓰이고, 읽히고, 확산하고 노래가 되어 춤춘다. 이곳에서는 상호 동시적인 경험과 성찰로써 공동체를 경험하게 된다. 공연장에 울려 퍼지는 노래가 우리에게 공통된 감각을 선사하듯이 이 전시는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을 느끼게 한다. 사진이나 글로는 이해할 수 없다. 청각, 촉각 등 다른 감각도 동원해야 진정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직접 전시를 경험하자. 직접 ‘춤추는 낱말’을 마주하고, 여러 작가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고심하고 의미를 찾아보기를 기대한다.

전시기간: 2022년 09월 01일(목) ~ 2022년 11월 20일(일)
전시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 3층 전시실
관람시간: 화~금요일 10:00 ~ 20:00 (월요일 휴관)
토, 일, 공휴일 하절기(3~10월) 10:00 ~ 18:00
동 절기(11~2월) 10:00 ~ 19:00
관람요금: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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