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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다가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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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글을 써달라고 했다. 필자는 무슨 글이냐며 물었다. 친구가 부탁한 글은 칼럼이었다. 필자는 칼럼을 들어만 봤을 뿐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제일 먼저 인터넷에 칼럼을 검색했다. 사전적 정의와 몇 개의 칼럼을 읽어봤다. 형식이나 주제가 뭐라고 단정 지을 수 없이 다양했다. 시작부터 막막했다. 어떤 형식으로 쓸 것이며, 무슨 주제로 써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친구가 참고하라고 보내준 칼럼을 봤다. 앞서 봤던 칼럼과는 조금 달랐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쓴 듯했다.

필자는 먼저 두 가지 유형의 칼럼을 써보기로 했다. 필자가 찾아본 칼럼들처럼 지식을 전달하듯 이야기하는 칼럼과 친구가 보내준 칼럼같이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글. 첫 칼럼의 주제는 심리였다. 심리학책에서 ‘성격’에 관한 글을 찾았다. 빠르게 글을 써 내려갔다. ‘토머스 부차드(Thomas Bouchard Jr, 1937~)박사의 쌍둥이 실험’,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방어기제’, ‘조작적 조건형성과 고전적 조건형성’, ‘매슬로(Abraham Harold Maslow, 1908~1970)의 욕구 위계’ 등 많은 이론과 실험을 썼다. 글을 쓰던 도중에 필자는 그만두었다. 필자가 최대한 풀어서 쓴 것보다 책에 쓰여 있는 설명이 더 쉽게 이해가 갔다. 필자는 쓰나 마나라고 생각했다. 이런 건 그냥 책이나 인터넷에서 더욱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필자는 새 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다시 글을 썼다. 이번에는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글이었다. 주제는 ‘글을 통한 감정 조절’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감정을 제어하기 위해서 썼던 폭력적인 방법들이 글을 쓰면서 사라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글을 통해 감정을 조절했다는 글이다. 그 뒤에는 효과적으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글을 쓰는 법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다 쓰고 나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미도 없었고 길었다.

또 새 페이지를 열었다. 이번에는 ‘무뎌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무뎌지는 상태를 표현하고, 과거, 현재와 미래를 보면서 자신을 찾고, 사랑을 되찾으며 다시 심장이 뛰는 과정을 썼다. 이전 글보다는 괜찮았다. ‘무뎌지지 않는 법’도 쓰고, 나름대로 결론도 간단하게 잘 나왔다. 하지만 문제는 이익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있었지만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쓸 만하지도 않은 내용이었다. 같은 주제로 세 번을 다시 써봤지만 나아지는 게 없었다. 필자는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는 제대로 된 글이 나오지 않을 게 뻔했다. 그때부터 필자는 ‘칼럼 잘 쓰는 법’, ‘좋은 칼럼’, ‘글 잘 쓰는 법’ 등 칼럼에 관한 영상과 이런저런 글을 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보고 나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빈 페이지를 열었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써왔던 글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가 뭐지?” 답은 ‘사랑’이었다. 하지만 사랑만을 쓰기에는 뭔가가 부족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필자가 좋아하는 ‘음악’을 섞어서 쓰기로 했다. 제목은 ‘사랑과 음악’. 처음에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다음에는 음악에 관해 이야기했다. 마지막에는 지식 제공 차원으로 권태를 극복하는 법 두 가지를 소개했다. 꽤 성공적이었다. 일화도 넣고, 명언도 넣고, 지식도 넣었더니 확실히 이전보다 재미는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무얼 전하고 싶은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글에는 ‘사랑’과 ‘음악’에 대한 필자의 정의만이 가득해 무언가를 주장하고 전하고자 하는 것보다는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 놓은 느낌이 강했다. 그래도 필자의 칼럼과 비슷하게 가벼운 칼럼도 있었기에 그냥 글을 갈무리했다. 필자는 이 외에도 나흘 동안 많은 글을 썼다. ‘칼럼 쓰기’에 아주 깊게 빠져 있었다. 매 순간을 고민과 걱정을 하며, 약간은 예민해졌다.

이런 상황 덕분에 필자는 소생했다.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무심해지는 시기를 보내던 필자는 글을 써달라는 친구의 부탁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돌아보고, 책을 읽고, 사전을 찾아보고, 예민함을 느꼈다. 흥미를 잃은 영화와 음악이 필자를 자극했다. ‘매슬로의 욕구 위계’대로 차례차례 욕구가 깨어났다. 글을 쓰며 감정들을 하나씩 느끼기 시작했다. 무뎌진 일상이 색을 띠게 되었다. 향기를 잃은 사랑은 공기처럼 가득 찼다. 비록 필자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것은 필자의 삶이 생기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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