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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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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聖(혜성). ‘은혜로운 성인이 되어라’라는 뜻에서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신 기자의 이름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기자는 한글로 써도, 한자로 써도 획이 많은 이 이름을 싫어했다. 예쁘게 쓰기 어려웠고 늘 마지막 출석번호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외워서 쓰는 시험을 볼 때는 ‘황혜성(黃惠聖)’이라는 석 자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단순히 ‘좋은 어른이 돼라’는 뜻이겠거니 하고 별다른 애정이 없었다. 하지만 이 어리고 얕은 생각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 때가 있다. ‘聖(성)’의 뜻을 이해하면서부터다. 그저 다 큰 ‘어른’이 아닌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현명’하고 ‘총명’한 사람이라는 깊은 뜻을 지닌 글자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렇게 이름에 대한 애정이 생긴 뒤부터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민했다. 은혜롭고, 현명하고, 총명해지기 위해 말이다.

최근 신문사 활동을 하며 늦은 귀가와 밤샘이 잦아졌다. 그럼에도 늘 반겨주는 존재 덕분에 이 고민의 답을 찾게 됐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과 현명, 총명이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랑이 있을 때 비로소 현명하고 총명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자는 부모님을 보며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5살 때부터 함께 자란 반려견 ‘흰둥이’ 덕분에 사랑을 나누는 법을, 반려견 ‘별이’, ‘달이’ 덕분에 사랑을 주는 법을 배웠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후다닥 뛰어나와 꼬리를 흔들며 안기고, 밤새 깨어있는 동안에는 졸린 눈으로 잘 있나 확인해주는 이들 덕분에 기자의 취미는 만화책도 영화도 아닌 사랑이 됐다. 그렇게 집에서는 습관처럼 “예뻐”, “잘했어”를 말하고 우연히 본 거울 속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게 됐다. 혹여나 잘 때 그 작은 아이들이 불편할까 걱정돼 몸을 웅크려 침대의 반만 쓰고, 방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수시로 확인하게 됐다. 강아지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궁금해 할 때는 냄새를 맡게 해주고, 귀가 축 처지고 턱을 괴고 있을 때는 쿠키를 준다. 산책할 때는 모든 가로등과 나무 앞에 멈춰 서서 아이들의 영역 표시를 기다린다. 그리고 눈만 마주쳐도 꼬리를 흔들며 뛰어오는 이들 덕분에 누구보다 활기차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기자의 인생 영화 3위 안에 드는 것 중 하나는 <뷰티 인사이드>(2015)이다. 자고 일어나면 모습이 바뀌는 ‘김우진’과 늘 같은 모습인 ‘홍이수’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남자, 여자, 아이, 노인 심지어 외국인으로까지 매일 모습이 바뀌는 탓에 이수는 우진을 먼저 알아볼 수 없다. 우진이 다가와 ‘손’을 잡아야만 그를 알아볼 수 있다. 영화에서는 아무리 자고 일어나도 변하지 않는 우진의 내면을 손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기자는 눈 또한 내면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수가 우진의 손을 잡고 나서야 비로소 알아보는 것처럼, 우리는 상대방의 눈을 보며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 눈에는 편안함, 불안함, 기쁨, 슬픔 등 감정이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눈길이 향하는 끝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사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리고 망각은 신이 준 선물이라고 할 만큼 상처를 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고마운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존재에 한해서 이 본능에 예외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망각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라면 그 예외인 사랑하는 존재들은 걸어갈 수 있는 땅을 일구어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 땅을 망각하는 순간 나아갈 수 없다. 감히 대신 아프겠다고 말할 수 있고, 날씨가 좋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들 덕분에 오늘도 앞으로 걸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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