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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과 생각은 기록이 된다

여행작가 겸 출판인 여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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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미현 작가
▲여미현 작가

우리는 여행이라는 무형의 존재를 현실에 실재하는 형태로 붙잡으려 글, 사진, 그림, 영상 등다양한 방법으로 기록해 남긴다. 머릿속에서 하는 생각 또한 여행과 마찬가지다. 여행과 생각이라는 두 무형의 존재를 글로 기록해, 현실로 만드는 여미현 여행작가 겸 출판인을 만나 여행과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Q.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과학 교재 편집자로 일했는데, 퇴사를 선택하고 여행작가 겸 출판인으로 직업을 바꾼 계기가 궁금하다.
A.
 대학에서는 대기과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책에 내 이름을 넣고 싶다는 생각으로 초‧ 중‧고 교재를 만드는 출판사에 입사해 23여 년 동안 편집자로 살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출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원에 입학해 출판을 공부했다. 동시에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러다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이로 인한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한 활동을 찾던 중 2014년 여행작가협회에서 주관하는 여행작가양성 과정을 수료하게 됐다. 수업을 듣고 글을 쓰면서 여행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직업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경제적인 기반도 마련하느라 2019년이 돼서야 오랜 꿈을 현실로 실현할 수 있었다.

Q. 작가님께서는 여행작가, 에세이 작가라는 직업뿐만 아니라 1인 출판사인 ‘여가’의 발행인이다. 작가에만 머무르지 않고 출판사까지 운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A. 
편집자로 일할 때는 책에 내 이름을 넣을 수 있는 것만으로 좋았다. 하지만 일하면서 작가 자신만이 원하는 책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책이라는 것에 작가는 물론 편집자, 발행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들어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발행인이 되면 만들고 싶은 책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출판사까지 운영하게 됐다.

Q. 여행작가로서 집필하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는지 궁금하다.
A. 
우선 여행을 떠나기 전,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와 다른 사람의 기록을 보면서 사전 정보를 수집한다. 이때 원고의 일부를 미리 작성하거나 수집해둔 정보를 출력해 들고 가기도 한다. 여기에 여행지의 분위기를 기록하고, 잘못된 정보를 수정한다. 따로 출력하지 않고 핸드폰 메모를 이용해 짧은 기록을 하는 경우도 많다. 여행하는 동안 ‘나’의 감정과 생각이 어땠는지를 떠오르는 순간 바로 기록해놓고 여행이 끝난 이후 차분하게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여행에서 느꼈던 것과 객관적인 정보의 균형을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집필한다. 또한 여행을 매개로 한 글쓰기인 만큼 ‘나의 여행’이라는 큰 주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가지를 쳐내는 퇴고도 집필에 꼭 필요한 마지막 과정이다.
 

▲취재차 떠난 여행에서 작성한 메모들/출처: 여미현 작가
▲취재차 떠난 여행에서 작성한 메모들/출처: 여미현 작가

Q. 여행 관련 도서를 집필하기 위해선 여러 지역을 직접 여행하는 것이 필수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와 그 이유가 궁금하다.
A. 
정확히 한 곳을 꼽을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고 배울 게 많은 곳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누구와 갔는지도 여행의 인상을 결정한다. 또 여행하면서 나 자신도 몰랐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아무래도 부산이 고향이다 보니 7번 국도로 연결되는 부산, 포항, 영덕 지방을 여행한 것이 인상 깊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Q. 저서 집필뿐만 아니라 소셜 미디어인 인스타그램(Instargram)과 브런치(Brunch) 플랫폼을 통해서도 독후감, 수필, 여행지 소개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 또한 2017년부터 2018년까지 『국제뉴스』 ‘여행작가 연재 시리즈’에 글과 사진을 기고한 적도 있다. 이러한 인터넷 플랫폼에 글을 쓰는 방식과 책을 쓰는 방식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또 이러한 활동들이 책 집필에도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다.
A.
 책은 소셜 미디어나 플랫폼 등에 비해 긴 호흡을 가지고 집필해야 한다. 온라인 매체 중에서도 블로그(Blog)는 검색을 통한 정보 제공이 목적인 것에 반해, 책은 정보뿐만 아니라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내야 한다. 온라인 매체를 통한 기고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경력을 쌓는데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내가 온라인 기고를 시작한 이유도 여행작가로서의 경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온라인의 다양한 매체에서 찾은 글감을 바탕으로 집필을 연습하고 각자에게 맞는 글쓰기 방식을 찾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Q. 요즘은 블로그, 유튜브(YouTube),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여행을 기록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미디어가 존재하는 시대에 책을 집필하는 작가가 가지는 차별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책은 정보와 감정을 집대성해 농축시킨 기록이다. 또한 과거 사람들의 노하우와 경험을 모아놓은 자료이며, 글쓴이 각자만의 짜깁기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하다. 여행작가는 여행이라는 소재를 통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글을 엮는 사람이다. 작가로서 집필한다는 건 어떤 내용을 쓰느냐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어떤 방식으로 연결할지 생각한다는 점에서 다른 미디어를 만드는 것과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Q.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엔데믹에 다다른 지금, 여행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오랜만의 여행을 즐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A. 
오랜만에 가능해진 여행이라 다들 멀리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너무 멀지 않은 곳부터 차근차근 즐겼으면 좋겠다. 가까운 곳들도 잘 보면 즐길 수 있는 곳들이 많다. 또한 많이 알려진 관광지보다는 조용하게 사색할 수 있는 곳을 추천한다. 그동안의 여행을 다른 사람들과 즐겼다면 이번엔 혼자 떠나는 것도 색다르고 인상 깊게 남을 듯하다. 여행을 떠남으로써 팬데믹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자신을 찾기를 바란다. 안전 수칙과 방역 기준을 지키며 여행해도 보고 즐길 수 있는 곳은 많다.

 

▲저서 『회사에서는 아웃싸이더 되기』의 표지/출처: 알라딘
▲저서 『회사에서는 아웃싸이더 되기』의 표지/출처: 알라딘

Q. 저서인 『회사에서는 아웃싸이더 되기』(2020)에서 직장생활에 지칠 때마다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본인에게 ‘여행’과 ‘글쓰기’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을 듣고 싶다.
A.
 ‘여행’은 나 자신에게 주는 격려이자 힐링 그 자체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으로 인해 꽉 졸라매야 했던 자신의 끈을 느슨하게 풀어내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는 수고를 인정하고 나에게 주는 보상 같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텁텁한 곳에 서 있던 나에게 불어오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 같은 느낌이다. 물론 이 시원한 바람을 마음껏 느끼기 위해선 다른 사람의 글을 많이 읽고, 스스로 많이 써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Q. 여행작가로 일하면서 겪는 고충도 궁금하다.
A. 
모든 것들이 그렇겠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하고 뛰어들어야 한다. 내가 여행작가와 출판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실천에 옮기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도 이러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여행작가로서 많은 경제적 수익을 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애초에 집필을 위한 여행 취재비가 지급되는 일도 드물다. 책의 인세 또한 대부분 10% 안팎이라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오르지 않는 이상 여행작가로서만으로는 많은 돈을 벌기가 힘들다. 여행작가의 여행은 취재에 가깝고, 따라서 자료를 축적하는 것은 필수다. 밝은 면만 보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채 도전했다간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집필이 언제나 즐거운 과정은 아니다.

 

▲인터넷 서점에 등록되어있는 여미현 작가의 소개/출처: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 등록되어있는 여미현 작가의 소개/출처: 알라딘


Q. 작가로서, 출판인으로서 앞으로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 궁금하다.
A. 
여행 분야뿐만 아니라 과학, 인문 분야 등 다양한 책을 쓰고 만들고 싶다. 전공이 과학인 만큼 과학 분야는 번역서를 출판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다. 인문 분야에서는 이전에 집필과 출판을 한 에세이 『회사에서는 아웃싸이더 되기』처럼 누구나 편하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에세이를 쓰고 만들고 싶다. 여성학 분야 도서도 만들 생각이다. 여행작가로서는 교과서 내용과 연관된 체험학습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

Q. 여행작가를 꿈꾸는 독자들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부탁한다.
A. 
여행작가로 사는 삶은 많은 사람이 동경하지만 고된 직업이고, 고되지만 즐거운 일이다. 대다수 사람은 여행작가라는 직책을 달고 글을 쓰려면 뭔가 대단하고 멋진 여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행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집의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되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은 지되, 일단 해보길 바란다. 후회에 대한 걱정과 망설임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 세상에 나와 다양한 것을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 세상에 뛰어드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내가 움직여야 발전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세상이 움직여 더 나은 곳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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