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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리, 알고 보면 재미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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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웨이퍼를 들고 있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반도체 시장에 개입할 것임을 선포한 상징적인 사진이다./ 출처: NBC News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웨이퍼를 들고 있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반도체 시장에 개입할 것임을 선포한 상징적인 사진이다./ 출처: NBC News

한 나라의 국력을 판단하는 다양한 기준 중에 ‘경제력’을 배제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가파른 경제성장을 통해 어느덧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됐고, 그 성장의 중심엔 반도체 산업이라는 큰 기둥이 있었다. 반도체 산업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고 반도체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최근 몇 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해왔다. 우리나라가 2021년, 11년 만에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것에는 반도체 산업의 역할이 컸다. 그리고 현재, 반도체 산업은 기술의 발전으로 각종 전자제품뿐 아니라 자율주행, 군사 등 다양한 활용성을 보여 세계가 주목하는 신성장 동력으로 떠올랐다. “반도체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상을 지배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도체의 중요성과 국가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제 반도체 산업은 한국의 ‘혜자’ 산업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반도체 강국으로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반도체, 그게 뭔데.】
반도체 산업 중 본 기사에선 시스템반도체, 그중에서도 파운드리 시장에 집중하고자 한다. 반도체는 외부 조건에 따라 전기가 통하거나 안 통하게 변환할 수 있는 물질로, 이 특성으로 디지털 신호 0과 1을 나타내 정보를 저장하고 연산을 수행한다. 정보를 저장할 때 쓰이는 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라 불린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들이 주력 생산하는 D램, 낸드플래시 등이 대표적인 메모리반도체다. 반대로 주어진 정보를 처리하는 반도체를 ‘시스템반도체’라 한다. 시스템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와 다르게 주로 반도체의 설계와 생산이 따로 진행되는 분업 체계를 가진다.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Fabless) 기업과 제조 전문의 파운드리(Foundry) 기업으로 나뉜다. 팹리스 기업은 반도체 제작에 필요한 *팹(fab)이 없어, 좋은 성능을 내기 위한 최고의 설계도를 만드는 데에 집중한다. 그리고 완성된 설계도를 바탕으로 제작하는 파운드리 업체에 맡긴다. 애플(Apple), 구글(Google)과 같은 빅테크 기업과 엔비디아(NVIDIA), 퀄컴(Qualcomm) 등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이 대표적인 팹리스 기업이고, 파운드리 기업으로는 TSMC와 삼성전자, 인텔(Intel) 등이 있다.

삼성전자,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대만 기업 TSMC 뒤에는 파운드리 업계 시장점유율 1위,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1위, 아시아 기업 시가총액 1위 등의 엄청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10나노미터(nm) 이하의 미세공정을 수행할 수 있는 기업은 TSMC, 삼성전자, 인텔 단 세 곳뿐이다. 따라서 가장 많은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고 기술력까지 가장 뛰어난 TSMC는 현재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앞서고 있다.
한편,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이 공급자가 한정적이라는 기회를 포착하고 적극적으로 투자해 시장을 파고든 기업이 있다. 바로 삼성전자다. 메모리반도체의 강자인 삼성전자는 2005년 업계의 후발주자로서 시장에 진출했다. 2017년에는 업계 최초로 10nm 공정을 성공시키며 미세공정화 기술에서 TSMC에 앞서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지난 6월 30일(목) 세계 최초로 3nm 공정 양산에 성공하며 TSMC와의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를 반쪽짜리 성공이라 평가한다. 박한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반도체의 낮은 수율이다. 수율이란 쉽게 말해 ***‘양품의 비율’이다. 높은 수율은 제품의 수익성을 높여주고 나아가 이 지표는 반도체 공정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공정의 정확한 수율은 기밀이기에 알 수 없지만, 전문가들은 대형 팹리스 기업들이 삼성전자에 외주를 맡기지 않는 현 상황을 미루어 보아 반도체 수율이 낮을 것으로 추측한다. 두 번째는 낮은 성능이다. 삼성전자가 올해 선보인 3nm 반도체 성능은 TSMC가 2020년에 양산한 반도체 성능과 비슷하다고 알려졌다. 이렇듯 경쟁력을 잃고 있는 삼성전자는 많은 투자를 하며 파운드리 산업에 사운을 걸 것을 약속했지만 삼성의 주요 고객이었던 엔비디아, 퀄컴 등이 TSMC로 옮겨가며 사업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TSMC,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TSMC가 이렇게 압도적인 1위를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파운드리 산업의 특성에 있다. 파운드리 산업은 천문학적인 자본이 필요하다. 투자를 통해 공장을 짓고 그 공장에서 최고의 반도체를 생산해내야 한다. 질 좋은 반도체를 만들어 높은 수익을 내고 이 수익을 바탕으로 최신 공정개발과 공장 건설에 재투자한다. 만약 팹리스 기업이 발주하지 않아 자본이 모이지 않는다면 뒤처지는 게 보통이다. 파운드리라는 개념을 만든 최초의 파운드리 기업인 TSMC는 초반 고객 유치에 유리해 이러한 구조의 수혜를 톡톡히 봤다. 또한 핵심고객사 중 하나인 애플의 칩 생산을 맡게 된 사건도 영향이 컸다. TSMC에게 있어 전체 매출에 4분의 1을 책임져주는 애플은 다른 고객보다도 훨씬 중요하다. TSMC가 이런 애플을 고객으로 삼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TSMC의 최신 반도체 성능이 삼성의 것을 앞섰기 때문도 있지만 애플이 자신의 경쟁기업인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반도체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운영 중인 삼성과 달리 TSMC는 파운드리에 집중하고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는 것을 수십 년간 기업의 모토로 삼아 고객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한편, 삼성전자는 2021년 11월 미국 텍사스 주에 20조 원 규모의 공장을 건설하기로 합의함으로써 국외 투자를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인건비가 높은 미국에 새로운 공장을 지은 이유는 미국 정부가 반도체 시장에 개입하기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던 2020년,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품귀현상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미국은 자국의 반도체 기업에 많은 투자를 시작했다. 동아시아에 집중된 현재의 반도체 공급망 체재에서 벗어나 전량 자국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자국·타국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세금을 감면해주고 인프라를 지원해주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미국의 지원책으로 가장 큰 혜택을 받고 있는 기업은 미국의 인텔이다. 세계 최고의 설계 능력과 파운드리 사업 역시 운영 중인 인텔은 미 정부의 움직임에 반응해 400조원 이상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특히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파운드리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미디어텍(MediaTek), 퀄컴 등 고객사를 끌어 모으며 2025년까지 반도체 미세 공정 선두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세계 최상급의 반도체 설계 능력과 아직 충분한 파운드리 경쟁력, 미국 정부의 지원 약속까지 받아낸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의 한자리를 꿰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CHIP4에 들어갔다고 수출국가와 교역하기를 중단합니까?
자유경제 시장을 표방하는 미국이 인텔의 사례처럼 이토록 적극적인 지원을 하는 이유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약진 때문이다.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 등 과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자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가 다른 국가의 도전으로 흔들리면 그 싹을 잘라버리는 행보를 취해왔다. 여러 차례 중국의 성장을 막아온 미국이지만 어느새 중국 반도체는 세계시장에 통할 경쟁력을 갖췄다. 세계 5위 파운드리 기업인 SMIC가 대표적이다. 
신냉전이 도래한 지금 반도체 패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미국은 2022년 대한민국, 대만, 일본에 CHIP4 동맹을 제안했다. 협력의 목표는 국가 간의 안정적인 반도체 생산·공급이지만, 이면에는 중국을 배척함으로써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의도도 있다고 평가받는다.
한국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국가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고 있고,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국내기업 시가총액 1, 2위를 다툰다. 거기에 홍콩을 포함한 대중국 반도체 수출 비율이 60%가량인 우리나라가 CHIP4 동맹에 참여하면 대중국 반도체 수출길이 막힌다. 만약 참여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보유한 수많은 반도체 원천기술을 이용할 수 없어 한국 반도체 산업이 한 번에 사장될 수 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한국이 CHIP4 동맹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국은 대만, 일본과 다르게 미국의 적극적인 요구 내지 협박에도 확답을 피하고 있다. 이는 결국 낸시 펠로시 의장 패싱 사건 등 미국과의 외교 갈등 발생으로 이어졌다. 과연 미래 반도체 시장은 어떻게 변화할까? 


마침내 반도체는 예측됐어요.
현재 반도체 시장의 규모를 보면 메모리반도체가 약 27%, 시스템반도체가 73%가량을 차지한다. 각 분야의 성장률을 살펴보자면 메모리반도체는 성장이 둔화한 데에 비해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매년 10% 정도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문가들은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침체기가 오고 시스템반도체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으로 예측한다. 반면, 파운드리가 더 유망하다는 주장은 동의하지만,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둔해진 성장세와 떨어져가는 메모리반도체 판매가는 일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반도체 사이클’이라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특성을 그 근거로 댈 수 있는데, 주문 후 생산이라는 특성을 가진 파운드리의 시스템과 달리 메모리반도체는 수요를 예측해서 생산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공급과잉과 공급부족 사태가 번갈아 가며 발생하게 된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한 폭발적인 수요 증가 시기가 끝나고 세계 경기 둔화, 소비 심리 악화로 공급의 과잉이 일어난 상태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머지않아 본격적으로 개화할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차갑기만 한 현재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봄바람을 불러올 것이다. PC의 보급, 스마트폰의 등장 등 메모리반도체의 성장은 언제나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과 함께했다. 과거에 그랬듯이 다가올 VR, AR, XR 시대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성장이 동반될 것이다.
시스템반도체 역시 자율자동차의 보급 등 기술의 발전에 발맞춰 성장할 예정이다. TSMC, 삼성전자, 인텔 세 기업이 공정 미세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지금 각 기업의 로드맵에 따르면 TSMC는 2022년 하반기 3nm 공정을 통한 반도체 양산이 예상되고, 삼성은 올해 상반기 3nm 반도체 양산 성공했으며 인텔은 내년까지 4nm 공정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모든 조건을 종합했을 때 TSMC가 1위를 유지할 확률이 가장 높지만 모든 생산 물량을 TSMC 한 기업이 감당할 수는 없기에 삼성전자에 낙수효과로 생산 물량이 꾸준히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돼가는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제시했던 공약을 다시 살펴보자. △반도체 미래도시 건설(영남, 호남지역) △반도체기금으로 팹리스, 파운드리 집중 육성 △경기도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 반도체 산업 육성을 중요시했다. 당선 후에도 반도체 산업 육성을 국가 최우선과제로 설정하고 반도체 기업에 규제 완화, 세제 지원 등의 혜택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이 자국 반도체 기업에 천문학적인 지원금을 주는 것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평가다. 현 윤석열 정부는 CHIP4 동맹 가입 여부를 두고, 깊은 논의를 하는 중이다. 모든 상황을 종합하여 가장 좋은 판단을 내려주길 기대한다.

* 팹(fab) : fabrication facility의 준말. 실리콘 웨이퍼 제조 공장을 의미한다.

** 나노미터(nm) : 미터의 십억 분의 일에 해당하는 길이의 단위다. 1나노미터는 10⁻⁹m. 파운드리 공정에서 나노미터는 반도체의 집적도를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길이가 짧아질수록 성능이 좋은 반도체로 평가받는다.

*** 양품 : 불량품의 반대어. 질이 좋은 물품을 의미한다.

**** 플라자 합의 : 1985년 9월 미국이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기로 한 합의. 이후 신흥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던 일본은 경제가 침체되고 잃어버린 30년을 겪게 된다.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 : 토머스 쿤(Thomas Kuhn, 1922~1996)이 발표한 이론. 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세상이 변화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본 기사의 소제목은 영화 <헤어질 결심>(2022)의 대사에서 착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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