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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인디밴드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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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방송사에서 만들어내는 경연 프로그램은 아이돌, 트로트, 힙합, 댄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유행해왔다. JTBC <싱어게인>, Mnet <스트리트 우먼 파이트> 등 다양한 장르의 방송이 소위 ‘대박’을 터뜨리면서, 경연 프로그램은 다시금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방송가가 주목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장르가 있다. 바로 ‘밴드 음악’이다. 저마다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모여 하나의 밴드를 결성하는 JTBC <슈퍼밴드>에 이어, 하반기 Mnet에서는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을 통해 ‘글로벌 밴드 육성’이라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밴드, 그중에서도 ‘인디밴드’에 대해 알아보자. 

 

【 역사를 잊은 인디에게 미래란 없다 】 

▲밴드 맥거핀이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밴드 맥거핀이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세계 음악 시장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주류 음악’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에 반감을 가지고 주류에서 벗어나 비주류를 자처하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그 반감은 그전에 없던 새로움을 만들어내고 곧 혁명이 된다. 미국 가수 엘비스 프래슬리(Elvis Presley, 1935~1977)가 그러했고, 록 밴드 너바나(Nirvana)가 그러했다. 이렇게 대기업 자본에 벗어나 독립적(Independent)으로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나 창작물을 ‘인디 음악’이라고 한다. 그럼 대한민국의 인디밴드 문화는 어떻게 탄생했고 누가 이끌어왔을까. 

그 시작은 1990년대 중반 홍대의 한 클럽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음악계는 ‘서태지와 아이들’, ‘신해철’, ‘신승훈’ 등 댄스와 발라드 아티스트로 양분됐고, 인디 음악가들은 자신들이 설 무대를 찾아야 했다. 그들이 찾은 곳은 임대료가 싸고 주변에 유명 미술대학이 있어 예술가들이 모이던 홍대거리의 라이브클럽이었다. 인디 음악가들의 결집에 홍대거리에는 라이브클럽이 하나둘씩 생기게 됐으며, 이후 홍대거리는 ‘젊음의 상징’, ‘인디 음악의 성지’로 거듭났다. 인디밴드는 이에 힘입어 서서히 주요 방송프로그램에 나오며 주류 음악으로 떠오르는 조짐을 보였다. 이러한 인디 음악의 탄생과 발전을 이끌었던 1세대 인디밴드로는 노브레인(NO BRAIN), 크라잉넛(Crying Nut), 델리스파이스(Deli Spice), 자우림 등이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홍대 인디 신을 크게 뒤흔든 사건들이 일어났다. 첫째는 젊은이들의 중심지로 성장한 홍대거리의 임대료가 증가해 생긴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게 홍대 라이브클럽들의 위기로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흔히 ‘카우치 사건’이라 불리는 사건으로 인디 신 자체가 크게 흔들렸다. 카우치 사건이란 밴드 ‘카우치(Couch)’가 의도적으로 생방송 중 알몸을 노출 시킨 사건이다. 이후 홍대 라이브클럽에 대한 경찰 단속이 대대적으로 실시됐고, 2005년부터 약 4년 간 인디밴드들의 지상파 출연이 금지됐다. 결과적으로 인디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크게 하락했으며 대중음악계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부드러운 멜로디와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키는 가사를 강점으로 내세운 ‘옥상달빛’,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 너마저’ 등의 밴드들이 등장하며 대중들의 관심을 다시 모았다. 인디밴드에 대한 안 좋은 인식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활동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인디 신을 생명력 있게 이끌어준 이들은 2세대 인디밴드로 불린다. 

이후 스마트폰의 보급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등장으로 인디 문화에는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흔히 3세대 인디밴드라 불리는 이들은 SNS를 적극 활용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매력을 드러내 젊은 층을 공략했다. 이러한 변화로 팬층의 유입은 더욱 원활해졌고 밴드의 정체성도 드러내기 쉬워졌다. 또한 직접 만든 음악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다운받을 수 있는 서비스인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를 기반으로 탄생한 아티스트들도 나오며 인디밴드의 다양성이 증가했다. 여러 밴드가 대중성을 확보했고 방송 출연도 적극적으로 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3세대 인디밴드의 대표주자로는 ‘잔나비’, ‘새소년’ 등이 있다. 이처럼 인디밴드는 변해가는 세상과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해가며 성장해왔다. 이제 유명 인디밴드의 새 음원이 공개되면 주요 음원사이트 상위권에 오르고 여러 페스티벌의 **헤드 라이너가 됐다. 인디밴드의 부흥기에도 지금도 세상은 변하고 있고 인디는 이에 반응해야 한다.

 

【 인디 신의 메카, 홍대 롤링홀에 가다 】

▲홍대 롤링홀의 외부
▲홍대 롤링홀의 외부

더욱 생생한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홍대 ‘롤링홀’에 방문했다. 기자는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이루어진 4인조 록 밴드 ‘맥거핀(MGFF)’의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관객들은 자리에 앉아 일행과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나누거나 무대를 구경하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공연장 한편에서는 밴드 맥거핀의 MD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공연장은 금세 강렬한 밴드 사운드와 이에 열광한 관객들의 환호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리듬을 타는 관객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인디밴드 공연이라 하여 단순히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만이 끝이 아니었다. 보컬과 세션들을 비추는 조명, 노래의 분위기에 따라 변하는 무대 뒤 배경, 곡과 곡 사이의 공백을 채우는 보컬의 센스 있는 멘트들 그리고 관객의 호응까지. 공연은 하나의 종합 예술과도 같았다. 특히, 관객들의 호응에 반응하여 곡의 후렴 부분만을 반복해서 연주하거나, 앙코르 곡을 그날 분위기에 맞추어 마음대로 정하는 등 라이브 밴드만이 가지는 강점들이 돋보였다. 또한, 공연장에서 밴드 음악을 접한다는 것은 컴퓨터나 휴대폰 같은 매체를 통해 듣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현장감을 선사해 주었다.

기자가 방문한 홍대 롤링홀은 1995년에 만들어진 공연장으로 오랜 시간 동안 밴드 YB, 볼빨간사춘기 등 많은 뮤지션들이 거쳐 간 공간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롤링홀의 공연기획자 정연식 팀장을 만날 수 있었다. 

 

Q. 롤링홀이 어떤 공간인지 소개 부탁드린다.

A. 롤링홀은 1995년 신촌에서 ‘롤링스톤즈’라는 이름으로 개관했고, 2004년에 공간 이전을 하게 되면서 롤링홀이란 명칭으로 바뀌게 됐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자유롭게 공연하고 추억을 쌓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

 

Q. 공연장을 운영하는 동안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A. 딱 하나를 뽑지 못할 정도로 정말 많다. 지금 생각나는 건 4월에 있었던 일이다. 코로나19 이후에 스탠딩 공연을 2년 동안 한 번도 못했다. 그러다 정부 지침이 풀리던 날, 드디어 스탠딩 공연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바로 주변에 있는 팀들에게 연락해서 해리빅버튼, 전자양, 크라잉넛 이렇게 세 팀이 공연을 진행한 적 있다. 정말 빠르게 (공연을) 준비했었는데 그때가 기억에 남는다.

 

Q. 대한민국의 인디 신 발전에 있어서, 홍대의 라이브클럽들은 뮤지션들의 ‘등용문’이라는 큰 역할을 해왔다. 롤링홀에 종사하시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시는지 궁금하다.

A. 마음가짐이라 하기에는 그렇지만, 사실 기조는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이 신이 좋아. 음악이 좋아. 공연이 너무 좋아’, 또 앨범 내고 사람들이랑 만나는 그런 걸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이 신의 분위기 자체가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지키자’라는 분위기이다. 개인적으로는 항상 관객분들이 이곳에 왔을 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많은 공연을 볼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Q. 인디밴드를 꾸준히 사랑해 주시는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우리나 관객분들이나 같은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상생이나 공생의 느낌인 것 같다. 무대가 있어야 아티스트가 올라올 수 있는 거고, 아티스트가 (무대에) 올라오려면 팬들이 와줘야한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는 관객분들 아무나 데려놓고 얘기하라고 하면 밤새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동질감 속에서 살아갈 것 같은 느낌이다.

 

【 인디 문화의 미래, ‘4세대’ 인디밴드 】

▲공연장 사진/ 출처:홍대 롤링홀 홈페이지
▲공연장 사진/ 출처:홍대 롤링홀 홈페이지

시대마다 그 내용과 모습을 달리하며 성장해 온 인디밴드. 그렇다면 미래의 인디 문화, 그리고 인디밴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3세대부터 이어져 온 인디밴드의 브랜드화는 점점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팬데믹 이후 데뷔한 인디밴드들은 라이브클럽에서의 공연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저들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제는 ‘4세대’ 인디밴드가 등장할 차례가 됐다. 롤링홀 정연식 팀장은 “인디 문화는 이미 많이 변했다. (인디가 처음 태동할 당시)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본인이 주체가 되어 직접 작사·작곡을 하거나 앨범까지 만들고는 했다. 방송에 나가는 것을 꺼리며, 라이브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회사가 있는 아티스트들이 많아졌다. 앨범을 내는 것도 자체 제작보다는 외부 인력과 협업을 하는 등, 우리가 옛날에 생각했던 인디 문화는 많이 없어진 것이 사실이다”라며 변화한 인디 문화에 대한 말을 전했다. 이처럼 공연 이외의 요소도 밴드의 중요한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요즘, ‘인디’의 기준이 불분명해진 것 또한 사실이다. 아이돌, 기성 가수들처럼 데뷔 시점부터 매니지먼트사를 거느리고 있는 밴드들은 물론이거니와 인디밴드들의 음반 유통을 전담하는 ‘인디 전문 매니지먼트사’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앨범 발매보다는 라이브클럽에서 공연을 하며 입지를 키워나가던 과거 모습과는 달리 ‘요즘’ 밴드들은 앨범이 발매될 때마다 팬 사인회를 진행하고, 굿즈를 제작하는 등 공연 수익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실례로 2022년 데뷔한 밴드 ‘PATZ(파츠)’가 있다. 밴드 세션 4인과 비주얼 디렉터 2인으로 구성된 PATZ는 그들 스스로를 밴드가 아닌 하나의 ‘브랜드’라 규정짓는다. 그들은 데뷔 이전부터 이어져 온 왕성한 SNS 활동으로 인해 이미 상당한 규모의 팬덤을 구축해놓은 상태로 데뷔했다. 파츠라는 브랜드를 시각적으로, 또 음악으로 표현해 내는 그들은 “누군가가 롤 모델로 삼을 정도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싶다”라고 말한다.

▲4세대 인디밴드의 굿즈들

그 이름처럼 ‘인디펜던트’, 즉 아마추어 리그 이미지가 강했던 인디밴드들은 점차 프로페셔널 리그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완고한 줄만 알았던 인디와 주류의 관계가 불분명해진 지금, 인디밴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정연식 팀장은 파츠를 비롯한 ‘4세대’ 인디밴드들의 행보를 놓고 “모든 밴드들이 그런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체적인 홍보는 물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부터 연주나 그 외적인 것까지, 인디밴드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 등의 프로그램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차세대 스타 밴드를 배출해내고 있다. 음악 외적인 요소 또한 중요해진 인디 생태계에서 각자만의 생존방식을 터득할 ‘4세대’ 밴드들의 전망이 기대되는 요즘이다.

김한세 기자(C231066@g.hongik.ac.kr)
김민규 기자(alomio1224@g.hongik.ac.kr)
이지원 기자(easyone001@g.hongik.ac.kr)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골목상권에 대형 프랜차이즈를 기반으로 한 상업시설이 증가하고 임대료가 급상승하면서 지역 정체성을 상실하고 영세상인이 기존 상권에서 내몰리는 현상

 

 

**헤드라이너(Headlaner): 공연 따위에서 가장 기대되거나 주목받는 출연자나 그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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