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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함, 그 너머의 짙은 공허함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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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문화트렌드 2022』에 따르면 올해 떠오르는 문화 콘텐츠들은 대중의 내면적 감정 표출을 위해 ‘사적 응징’에 집중하고 있다. 죄를 짓고도 전혀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범죄자들과,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며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공권력을 향해 분노한 사람들은 어느샌가 법의 울타리를 벗어난 사적 응징의 힘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는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미디어 속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현실에선 이루어지기 힘든 사적 응징으로 관객에게 사랑받은 <데스 위시(Death Wish)>(2018), <프라미싱 영 우먼(Promising Young Woman)>(2020), <복수는 나의 것> (2002)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이다 탄산도 100%】

<데스 위시>의 주인공 ‘폴 커시’는 존경받는 외과 의사로 사랑하는 딸, 아내와 함께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폴이 집을 비운 어느 날 밤, 그의 아내는 연쇄 강도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됐고, 딸은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러나 범죄의 도시로 통하는 시카고에서 범인은 쉽게 잡힐 리가 없고, 무의미한 경찰 수사에 폴은 괴로워한다. 호신용 총기도 보유하지 않을 정도로 법을 준수하며 살아온 폴이었지만, 우연히 얻게 된 총으로 직접 복수하겠다 마음먹는다. 강도에게 위협당하는 한 여성을 구해준 것을 계기로 각종 매체에서 유명해진 폴은 ‘사신’이라는 별명까지 붙으며 많은 이들에게 응원받는다. 폴은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강도들을 차례로 처단한다. 폴의 자경단 활동이 경찰에게 발각될 뻔한 적도 있었지만, 그는 뜻대로 복수를 마무리한다. 기적적으로 딸의 의식이 돌아오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단조로운 삶이 어쩌면 가장 행복할지도 모른다. 이를 뼈저리게 느끼는 건 비단 폴뿐만은 아닐 것이다. 무능한 공권력 앞에 일명 ‘사이다 액션’을 보여주는 폴의 복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영화 내에서 폴의 행동은 응원받는 만큼 비판도 많이 받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옳음’을 생각하게 하기보다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사이다 탄산도 50%】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그만큼 여자의 한이 무섭다는 뜻으로 여기 누구보다 깊은 한을 품은 여자가 있다. <프라미싱 영 우먼>의 주인공 ‘카산드라’는 바에서 술에 취한 여성들에게 몹쓸 짓을 하려는 남자들을 응징한다. 그녀가 이런 일을 하게 된 시작점에는 그녀의 절친한 친구 ‘니나’의 죽음이 있었다. 장래가 유망했던 의대생 니나는 대학교 파티에서 술에 취한 채로 남학생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고,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니나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카산드라는 평생 꿈이었던 의사의 길을 포기하며 학교를 중퇴했고, 매일을 괴로움 속에 살아간다. 우연히 의대 시절 동기였던 ‘라이언’을 만난 카산드라는 그를 통해 사건 가해자들의 근황을 알게 된다. 가해자들은 장래가 유망한 자신의, 혹은 젊은 남성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며 해당 사건을 학교와 묻었던 것이다. 이에 카산드라는 가해자들과 학교를 향해 복수를 다짐한다. 하나하나 복수를 하던 끝에 사건의 주동자인 ‘알’의 총각파티에 찾아간 카산드라는 알을 결박하고 공격하려 하지만, 상황이 역전돼 알에게 교살당한다. 알은 카산드라의 시신을 처리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신의 결혼식을 진행한다. 순조롭게 결혼식이 진행되던 그때, 경찰이 출동하고 그 자리에서 알은 살인범으로 체포된다. 때맞춰 라이언의 핸드폰으로 “이게 끝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이제 시작이야. 즐거운 결혼식이 되길! 사랑을 담아, 캐시와 니나가 ;)”라는 예약 문자가 전송된다. 경찰은 어떻게 알고 알의 결혼식에 찾아왔을까? 죽은 줄 알았던 그녀의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카산드라는 결국 평생 한으로 남았던 복수를 해냈고, 가해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 자신은 살해당했고, 이에 대한 찜찜함을 감출 수 없다. 복수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하지만 그녀가 치른 대가는 그 무엇보다 가치 있었음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사이다 탄산도 0%】

청각장애인 ‘류’는 공장 노동자로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누나와 함께 허름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누나에게 이식할 콩팥을 얻기 위해 장기매매단을 찾아간 류는 그간 모은 수술비 천만 원을 사기당하고, 자신의 신장마저 빼앗긴다. 이후 극적으로 누나에게 신장 기증자가 나타났지만, 수술비를 모두 잃은 류는 낙담한다. 돈을 구하기 위해 류는 애인인 ‘영미’와 자신을 해고한 중소기업 사장의 동료인 ‘동진’의 어린 딸을 유괴한다. 류와 영미는 동진에게서 돈만 받는 대로 딸을 돌려보낼 이른바 ‘착한 유괴’를 계획했다. 류가 돈을 받으러 나간 사이, 류의 납치 사건을 알아버린 누나는 그 충격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설상가상으로 누나를 고향 강가에 묻는 도중 동진의 딸이 강에 빠져 죽고 만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동진과 류는 각각 납치범과 장기매매단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류가 장기매매단의 본부를 습격해 그들을 살해하던 그때, 영미의 집을 찾아낸 동진은 영미에게 전기 고문을 가하며 류의 행방을 묻는다. 끝까지 입을 열지 않은 영미는 집요한 고문에 끝내 사망한다. 영미의 죽음을 알아버린 류는 동진에게 복수하기 위해 동진의 집 앞에 찾아가고, 그 시각 동진 또한 류의 집에서 류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기다리다 못해 집으로 돌아온 류는 방심한 탓에 자신의 집에서 동진에게 기습당한다. 자신의 딸이 빠져 죽은 강가로 류를 데리고 간 동진은 류를 결박하고 강의 중심으로 데려간다. 그렇게 두려움에 떠는 류를 가차 없이 죽인 동진의 복수는 끝을 맺는다. 그러나 시신을 처리하던 동진의 앞에 한 차가 멈춰 서고 차에서 내린 수상한 남자들은 동진을 공격한다. 동진의 심장 부근에 꽂힌 판결문은 이 또한 결국 누군가의 복수라는 것을 알려준다. 영화가 막을 내릴 때까지 들리는 건 동진의 신음뿐이다. 복수가 꼬리에 꼬리를 물다 결국 완전한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은 세 인물의 작은 사회가 충격적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갖은 시련과 꼬여버린 상황에 이들은 분노하지만 이내 감각은 무뎌져 가고, 남아있는 감정 없이 맹목적으로 ‘복수’라는 행위를 한다. 흔히 복수극에서 기대하는 통쾌함 따위는 온데간데없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편함과 건조함만 남는다. 착실한, 선한, 그래서 원한 살 만한 일은 없어 보이는 인물로 그려졌지만 류와 동진의 복수는 무척 잔인하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목적에 눈이 먼 류와 동진은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간다.

기자는 마지막 작품을 끝으로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사적 응징이 누군가에게는 속 시원한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언제나,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한 번 시작된 복수에 대한 열망은 결국 목적을 잃고 더 큰 자극만을 원할 것이다. 우리의 힘이 향해야 하는 곳이 과연 어디일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카타르시스(catharsis) : 비극을 봄으로써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고 마음이 정화되는 일

*신부전증(腎不全症) : 신장(腎臟)의 기능이 불완전한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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