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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에 담긴 수많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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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중략)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정일근, 『어머니의 그륵』 中

위 시에서 시인은 자신과 어머니가 사용하는 어휘인 ‘그릇’과 ‘그륵’을 대비한다. 사실, 시인이 학교에서 배운 그릇과 어머니가 인생에서 배운 그릇은 사전적으로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릇의 사전적 의미는 ‘음식이나 물건 따위를 담는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시에서는 시인과 어머니의 그릇의 속뜻이 다르기에, 시인은 ‘그릇’이라는 소재를 통해 본인을 성찰하기에 이른다. 위 시처럼, 예부터 인간과 부대껴 산 그릇은 그 뜻이 사전적 의미를 초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릇의 역사와 활용, 사전적 의미를 뛰어넘는 그릇에 대해 알아보자.

 

【그릇의 유래 및 역사】

 

▲빗살무늬토기/출처:국립중앙박물관
▲빗살무늬토기/출처:국립중앙박물관

최초의 체계적 그릇 형태는 토기라고 전해진다. 이동하면서 먹을 것을 구하던 구석기를 지나, 정착 생활이 기본인 신석기에는 농경의 시작으로 잉여 재산이 생겼고 이를 담을 그릇이 필요했다. 그렇게 흙을 이용해 그릇을 제조한다는 관념이 없던 시절을 지나, 당대인이 흙을 이용해 토기를 제작하게 된 것에는 세 가지 가설이 있다.

첫 번째는 빵 만들기에서 힌트를 얻어 토기가 만들어졌다는 가설이다. 빵을 만드는 작업공정의 과정이 토기 제작 과정과 일치한다. 두 번째는 이라크의 간지다레 유적에서 유래됐다. 토기 발명 이전, 주거지 바닥 일부를 파고 그 안에 점토로 만든 벽에 열을 가한 형상이 토기와 유사해, 이를 통해 토기가 발명되었다는 가설이다. 마지막으로 앞선 가설과 달리 기후변동 및 생업경제의 변화로 인해 토기가 발명됐다는 가설이 있다. 한편, 토기를 통해 시대별 구분이 가능하다. 신석기시대 때 토기로 빗살무늬토기가 유명하다. 빗살무늬토기라 하면 밑이 뾰족한 첨저형 토기를 떠올리는데, 이와 달리 뭉툭한 평저형 토기도 존재했다. 또한 청동기시대에는 모래가 섞인 진흙을 구워서 민무늬토기를 새롭게 제조했다. 즉, 위와 같은 그릇의 출현은 과일, 생선 등의 음식물을 보관 및 저장하는 형태에서 발전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서양·한국의 그릇의 발전】

▲포슬린아트를 활용한 도자기/출처:당진신문
▲포슬린아트를 활용한 도자기/출처:당진신문

서양의 도자기

도자기는 토기와 마찬가지로 발전 양식을 띄었다. 서양 도자기는 B.C 3000년경인 고대 이집트 때 최초로 발견됐다. 이는 점토를 빚은 흙에 청록색을 띠는 세계 최초의 소다 유약을 바른 도자기였다. 이집트는 이를 통해 저온유(800도 전후의 온도에서 구움) 도자기를 제작했다. 이러한 기술은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등에 영향을 미쳤다. 한편,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은 산화납 등 매용제(잿물을 빨리 녹이는 재료)를 이용한 기술을 터득하여 납유 도기를 제작했다. 이후 로마 시대에 연유 도기가 크게 발전했으며, 파르티아(현 이란의 전신)와 로마의 전투 중 파르티아는 로마의 도기 기술을 받아들였고, 이를 개량해 8세기 중에 다양한 색을 붓으로 그려 넣는 이른바 ‘페르시아 도자기’를 개발했다.

한편,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마졸리카(혹은 마욜리카) 도기가 개발됐다. 마졸리카 도기는 스페인으로부터 유입된 주석 유약(Tin-Glazed) 기법을 바탕으로 제작됐으며, 당시 유럽에서 시도하고자 했던 고급 중국 자기의 모습을 비슷하게 구현했다. 마졸리카 도기는 흰 도자기의 바탕에 여러 가지 색의 그림물감을 사용해 무늬를 넣는 특징이 있다. 이후 마졸리카 도기는 유럽 전역으로 퍼졌는데, 프랑스로 이주해간 도공에 의해 프랑스풍의 파이앙스 도기가 개발됐고, 이것이 포슬린아트로 발전한다. 포슬린아트란 ‘자기’를 뜻하는 ‘포슬린’과 ‘아트’의 합성어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뜻한다. 즉, 무늬 등이 없는 하얀 도자기에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그리는 활동이 ‘포슬린아트’라 볼 수 있다.

 

▲백자 청화칠보난초문 병/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백자 청화칠보난초문 병/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의 도자기

우리나라의 도자기는 고령토를 사용하고 중국 못지않은 평가를 과거 고려시대부터 받고 있었다. 고려청자는 워낙 유명하지만, 그중 백미는 상감청자다. 상감청자에서는 붓으로 그린듯한 정교한 그림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는 붓이 아니라 원하는 모양으로 무늬를 판 뒤, 그곳을 다른 색 흙으로 메우는 상감기법을 이용한 것이다. 이는 고려의 도공들이 처음 고안해냈으며, 도자기의 선진국이었던 송나라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조선 시기 등장한 조선백자는 고려청자보다 좋은 재료가 필요했다. 불순물이 거의 없는 질료로 흙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백자는 화려하지 않으면서 담백하다. 이런 백자의 특징은 주변국들에게 주목받았고 그 예로 당시 일본이 조선 도공들을 탐내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많은 수의 조선 도공들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에 일본으로 잡혀갔고 잡혀간 신분임에도 일본에게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이에 도공 중 조선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음에도 돌아가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뛰어난 우리 도자기는 현재까지도 그 예술혼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 10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우리나라 장인들이 도자기를 시연하며 그 장인정신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서양·한국의 그릇의 발전】

 

▲장 시메옹 샤르댕(Jean Simeon Chardin,1699~1779)의 가오리/출처:어린이조선일보
▲장 시메옹 샤르댕(Jean Simeon Chardin,1699~1779)의 가오리/출처:어린이조선일보

그릇의 예술적 측면

그릇은 제조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그릇을 활용할 때도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그 예로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그릇이나 접시 따위에 담는 일을 뜻하는 ‘플레이팅’과 그릇을 소재로 사용한 그림이 있다. 우선, 그릇은 플레이팅의 틀을 제공하는 중요한 도구다. 즉, 플레이팅은 단순히 노동 낭비가 아닌 엄연한 요리 과정의 일부며, 예술성을 지닌다. 한편, 서양미술사에서는 그릇을 예술로 활용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정물화가인 장 시메옹 샤르댕(Jean Simeon Chardin, 1699 ~ 1779)과 조르조 모단디(Giorgio Morandi, 1890 ~ 1964)는 그릇을 활용해 예술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14세기 이전 미술사에서 정물화는 초상화에 비해 인기가 없었으나, 16세기 이후 귀족들은 초상화뿐만 아니라 정물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정물화 의뢰 또한 늘어났다. 이때 정물화의 소재로 그릇이 자주 선정됨을 당시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특히, 샤르댕은 그릇이라는 소박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이용해 강렬한 색채와 미묘한 구성의 작품을 만들어 프랑스 귀족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속담 ‘그릇도 차면 넘친다’/출처:중도일보
▲속담 ‘그릇도 차면 넘친다’/출처:중도일보

그릇과 어휘

우리나라에서 그릇은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있다. 생활에서 떼놓을 수 없는 그릇은 식탁 위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말과 글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담아낸다. 즉, 우리나라는 단순히 그릇을 음식을 담는 용도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릇’이 가진 뜻을 이용해 수많은 어휘와 문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릇이 가진 뜻 중 하나로 ‘어떤 일을 해 나갈 만한 능력이나 도량 또는 그런 능력이나 도량을 가진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있다. 위와 같은 그릇의 여러 뜻을 활용한 어휘·속담이 다양히 존재한다.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는 뜻으로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성공한다’의 대기만성(大器晩成)은 단순히 해석했을 때 큰 그릇에 대해 보여주나, 속뜻은 큰 능력을 갖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릇도 어느 한계에 이르게 되면 넘치듯이 모든 일에는 한도가 있어서 이를 초과하면 하강하게 된다는 뜻의 ‘그릇도 차면 넘친다’라는 속담이 있고, ‘항상 곁에 두고 보는 그릇이라는 뜻으로, 마음을 가지런히 하기 위한 스스로의 기준을 이르는 말’인 유좌지기(宥坐之器)가 있다. 또한, 그릇의 부사적 의미를 이용한 고사성어로 ‘어질고 너그러운 도량과 재능은 하늘이 주는 것이라는 뜻으로, 대단한 인품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덕기천성(德器天成) 등이 있다.   

 

앞서 소개했듯이 그릇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한다. 그릇에는 인류의 역사가 담기기도 하고, 예술성과 미학 그리고 전통문화가 담기며, 다양한 뜻을 지니기도 한다. 그릇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특별한 관계는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친밀하게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그릇은 우리 곁을 지킬 것이다. 그대의 그릇에는 무엇이 담겨있는가?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토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9162, 202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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