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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오늘은 어땠나요? <최악의 하루>(2016)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입니다. 주인공은 행복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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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하루 메인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최악의 하루 포스터
▲최악의 하루 메인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최악의 하루 포스터

기자가 이 코너를 위해 처음 선택한 작품은 이 작품이 아니었음을 고한다. 기자는 본래 평창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다루려 했다. 그러나 3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한 평창에서 촬영지로 향하는 버스는 하루에 단 두 번밖에 운행하지 않았고, 택시는 잡히지도 않았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집에 가야 했고, 계획했던 모든 일이 꼬인 그날은 정말 ‘최악의 하루’였다. 다시 평창을 가기에는 시간이 없었던 터라 급하게 새로운 작품을 선택해야 했던 기자는 서촌과 익선동을 비롯한 종로 일대와 남산에서 촬영된 이 작품을 알게 됐다. 기자는 이 작품을 오로지 접근성만 보고 선택했지만, 이 영화를 감상하고 그 흔적을 따라가며 삶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는 꿈을 많이 꾸는 편이다. 꿈 덕분에 이야기를 하나 생각했다. 곤경에 처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서촌 골목
▲서촌 골목

영화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의 독백과 서촌 골목 곳곳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료헤이는 약속 장소인 ‘류가헌’을 찾아 길을 헤매다가 은희를 만난다. 기자가 처음 향한 곳은 료헤이가 류가헌에 가기 위해 헤맨 서촌 골목이었다. 지도를 보면서 걸어도 길을 잃을 정도로 길치인 기자는 그곳에서 료헤이의 감정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처음 거닐어 보는 서촌 골목은 매우 낯설었고 목적지를 찾아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것은 답답하고 지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길을 찾아 정신없이 움직이는 료헤이나 기자와는 다르게 한옥 풍의 건물과 조용한 서촌 골목은 마치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길이 눈에 익고 주변을 살필 여유가 생길 때쯤에는 기자가 굳이 서두르며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음을 느꼈고 그제야 꽃과 화분으로 예쁘게 꾸며진 건물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서촌 골목은 마치 무언가를 촬영하기 위해 만든 공간처럼 느껴졌다.

은희는 남자친구인 현오를 만나러 남산으로 향한다. 현오는 남산에서 아침 드라마를 촬영 중이었다. 현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선글라스, 마스크,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은희가 팔짱을 끼는 것도 거부한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놀다가 현오가 실수로 은희를 전 여자친구 이름으로 부르고 은희는 화가 나서 남산에서 내려간다. 한편, 운철은 은희와 현오가 만나기 전 남산에서 은희가 올린 트위터 게시글을 보고 남산을 찾아오고 은희와 만난다.

 

▲카페 '커피한잔'
▲카페 '커피한잔'

이곳 ‘커피한잔’은 은희와 운철이 남산에서 내려와 함께 간 카페다. 운철은 은희가 현오와 사귀던 중 만난 이혼남이다. 운철은 카페에서 은희에게 아내와 재결합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하지만, 여전히 은희에 대한 마음이 남아 있으니 계속 만나자고 돌려 말한다. 은희는 운철의 재결합 소식을 듣고 오열하는데, 기자는 이런 은희가 이해되지 않았다. 당당하게 바람을 피우려는 운철이나, 자신도 다른 남자가 있으면서 솔직한 척하며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나려는 은희를 기자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고, 은희의 하루가 최악으로 흘러간 이유도 은희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은희는 현오와 운철에게 서로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현오를 만날 때는 머리를 묶지 않고, 운철을 만날 때는 머리를 묶고 있는 모습이다. 은희가 의도해서 한 행동은 아니지만, 두 사람에게 은희가 다른 이미지를 보이고 있음을 관객에게 명확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은희가 두 사람 앞에서 ‘연극’을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한편 카페 '커피한잔'은 은희가 운철이 재결합하겠다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들은 곳이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는 카페의 문을 열지 않아 외관만 찍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굳이 은희와의 공통점을 찾자면 이곳에서 약간의 절망을 느꼈다는 점일 것이다.

 

▲카페 '식물'
▲카페 '식물'

다음으로 향한 곳은 은희가 료헤이에게 소개해준 카페, ‘식물’이다. 식당이 많은 골목에 있는 이곳은 기자가 느끼기에 찾아가는 길도 복잡하고 주변에 사람도 매우 많았다. 그러나 카페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는 고요하고 편안했다. 기자는 오픈 시간 전 카페에 도착했고, 오픈 시간이 되고도 문을 열지 않길래 료헤이가 앉았던 자리를 외부에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기자는 이 영화에서 은희보다 료헤이의 하루가 더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 주목하는 ‘최악의 하루’를 보낸 사람은 은희가 맞지만, 료헤이도 은희만큼이나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 오히려 은희는 과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하루였다면, 료헤이는 자신이 대처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출판사의 실수로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도착한 것부터, 출판 기념회에 찾아온 사람은 지나가다 궁금해서 와 본 두 명이 전부이고, 출판사도 문을 닫을 것이라는 사실까지. 낯선 곳에서 헤매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료헤이의 하루는 절망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료헤이의 팬이자 기자인 현경과의 만남은 료헤이가 구축해온 소설 속 세계관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 관한 고민을 남겼다. 

 

“긴긴 하루였어요. 하나님이 내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안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어요?

(중략)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거든요. 당신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남산 산책로 / 출처: 네이버 최악의 하루 스틸컷
▲남산 산책로 / 출처: 네이버 최악의 하루 스틸컷

현오의 재촉으로 은희는 다시 남산으로 향하고, 운철도 은희를 다시 만나기 위해 남산으로 간다. 결국 은희는 남산에서 두 남자와 동시에 만나게 되고, 은희가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났다는 진실을 알게 된 현오와 운철은 은희를 두고 산책로를 내려간다. 위 대사는, 영화 초반에 은희가 연기 연습을 할 때와 두 사람이 내려가고 혼자 남았을 때 총 두 번 나오는, 은희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대사다. 한편, 료헤이는 현경과의 대화 이후 자신이 그린 인물에 대해 고민하다가 은희가 남산에 간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남산으로 향한다. 나름 최악의 하루를 보내고 만난 두 사람은 함께 산책로를 걷는다.

 

은희: 그런데 요즘 살고 있는 게 연극이에요. 오늘도... 오늘... 지금까지.

료헤이: 거짓말이요?

은희: 네, 거짓말. 근데 연극이란 게 할 때는 진짜예요. 끝나면 가짜고...

료헤이: 좋네요. 그럼 저랑도 연극 하는 건가요?

 

낮에 카페 ‘식물’에서 대화를 나눌 때, 료헤이는 자신의 직업이 거짓말을 만드는 직업이라고 소개하고, 은희는 자신의 직업인 배우도 거짓말을 하는 업종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료헤이를 다시 만났을 때, 자신의 삶은 거짓이었지만 영어로 거짓말하는 것은 어렵다며 료헤이를 진심으로 대했음을 전한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은희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몸으로 말을 하는 것이라며 춤을 추는 은희의 표정은 어딘가 편해 보인다. 기자는 이 장면을 보며 은희가 두 남자 사이에서 거짓말을 하며 거짓이 주는 압박에 눌려 있다가 모든 것을 들키고 오히려 한결 편해진 마음을 춤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은희의 하루는 두 남자와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는 최악의 날이었지만, 거짓에서 자유로워지며 오히려 해피엔딩을 맞게 된 것이다. 료헤이는 새로운 이야기의 엔딩이 떠올랐고 이는 해피엔딩이라고 밝힌다.

 

“지금이랑 계절이 달라요. 이 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예요. 저 길에 눈이 내리고 한 여자가 걸어옵니다. 무표정하게 내리는 눈 사이를 걸어오다가 뒤를 돌아봐요. 어두워진 저 산책로 너머로. 하지만 안심하세요.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입니다. 주인공은 행복해질 거예요.”

 

누구나 나름대로 최악의 하루를 겪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그날의 끔찍한 기억만이 떠오르기보다는 조금은 아름답게 포장된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기자의 최악의 하루도 이럴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날 먹었던 아이스크림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노래는 예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만약 기자의 하루가 특별하지 않았다면 그날의 아이스크림과 노래는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갔을 것이다. 은희의 하루는 료헤이에 의해 ‘해피엔딩’으로 정의됐고, 료헤이의 하루는 ‘해피엔딩’을 찾은 것으로 끝났으니 두 사람과 이 영화의 끝은 해피엔딩이다. 어쩌면 ‘최악’이 있기에 평범한 것들이 소중해지고, 행복한 하루가 더욱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 ‘최악의 하루’도 결국에는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결국 우리의 끝은 ‘해피엔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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