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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궁한 그림으로 독자를 마주하는 만화가

심윤수(애니메이션01) 동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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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수(애니메이션01) 동문
▲심윤수(애니메이션01) 동문

유리 공예 중 *블로잉(blowing) 기법을 할 때는 무조건 한 명 이상의 팀원이 필요하다. 긴 파이프 끝에 유리를 붙이고 한쪽에선 공기 주입을, 반대편에선 코르크, 신문, 쇠 가위 등을 이용해 유리의 모양을 만들기 때문이다. 협업은 까다롭다. 상대가 원하는 크기에 맞춰 공기를 주입해야 하며, 상대방의 작업물을 망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 협업에 도가 튼 그림쟁이가 있다. 웹툰작가 심윤수(애니메이션01) 동문을 만나보았다. 

 

Q. 동문은 홍익대학교 애니메이션 학과를 졸업한 뒤 2005년 <골방환상곡>이란 네이버 웹툰의 그림 작가로 데뷔했다. 어릴 적부터 만화가를 꿈꿨는지 궁금하다.

A. 중학교 때만 해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잡지 시장이 죽으면서 꿈이 희미해졌다. 직업으로 삼기에는 힘든 시기였다. 많은 주간지가 폐간되면서 만화 잡지 시장은 작아지고 교육 만화 시장이 우세가 됐다. 이후 전혀 다른 분야를 희망하다, 다시 미술을 시작해 본교 세종캠퍼스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했다. 애니메이션과에 진학했지만, 처음부터 ‘만화가’를 꿈꾼 건 아니었다. 음악에 ‘인디밴드 음악’이 있고 영화에 ‘(독립)인디 영화’가 있듯 만화에도 인디 문화가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잡지에 연재를 할 수 없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이었다. 강풀 형(강풀 웹툰작가), 풍 형(김풍 웹툰작가), 호민이 형(주호민 웹툰작가) 등이다. 이들은 잡지가 아닌, 인터넷 갤러리나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만화를 연재했다. 이후 다음이나 네이버와 같은 포털이 등장했다. 포털이 만화를 흡수했고 ‘웹툰’이 등장했다. 그래서 당시엔 포털 연재를 생각하고 만화를 시작한 웹툰 작가는 없었다. 나 또한 초등학교 동창의 부탁으로 <골방환상곡>을 시작했지, 이것이 만화이고 스스로를 만화가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Q. <골방환상곡> 이후 <다욤이의 다이어트 다이어리>(2011), <찌질의 역사> (2013) 등의 작품에서 그림 작가를 맡았다. 혼자 할 때보다 까다로운 작업이 될 것 같다.

A.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지라 작품이나 결과물을 보면 실력이 쉽게 보인다. 하지만 글은 아니었다. 이것이 좋은 글인지, 나중에 좋은 결과물이 될 글인지 한눈에 알아보기 어렵다. 또 제작하는 기간 자체가 길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바뀔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일단 작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작품이 잘 될지, 망할지 알 수 없단 점이 힘든 것 같다. 작가의 요구는 대부분 맞춰주는 편이다. 일단 협업이 틀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내 생각에 완전한 확신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밀고 나가지 않는다. 협업을 많이 해왔고 18년 차 만화가다 보니, 현재 연재 중인 <싱글브로> 작가님이랑은 어느 정도 협의된 룰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다.

 

▲<찌질의 역사> 1화 / 출처: 네이버 웹툰. 김풍, 심윤수. <찌질의 역사>
▲<찌질의 역사> 1화 / 출처: 네이버 웹툰. 김풍, 심윤수. <찌질의 역사>

Q.  특히 <찌질의 역사>를 연재할 때 김풍 작가와 본교 선후배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연재하는 데 많이 힘들었다고 밝힌 적 있다. 

A. 풍 형은 작업할 때 수시로 전화를 한다. 전화 내용은 대부분 ‘이거 수정하자’다. 한번 <찌질의 역사> 시즌 2가 끝나고 휴가를 갔는데 그때도 전화가 왔다. 물론 나도 그걸 또 예상하고 휴가에 컴퓨터를 들고 갔다. 풍 형은 모든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가야 하는 타입이다. 너무 꼼꼼하고 디테일이 강해 장단점이 있다. 같은 장면만 10번 넘게 수정이 들어온 적도 있었다. 원래는 **이능력자물을 같이 그려보자고 했었다. 내가 다른 작가와 협업하는 이유에는 내가 그리지 못하는 이야기를 써낼 수 있는 사람과 작업하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 그런데 갑자기 연애하는 이야기를 하자는 거다. <찌질의 역사>가 (대중적으로) 잘되긴 했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안 할 것이다. 

 

Q. 2008년 네이버 웹툰 <일편단심화>를 연재했다. 글·그림 작가로서는 데뷔 이후 처음이었다. 그림 작가만 할 때와는 느낌이 매우 달랐을 것 같다. 

A. <일편단심화>는 컨셉 자체가 까다로웠다. 매번 스토리와 그림체를 바꿔야 했기에 장단점이 확실했다. 앞서 말했듯 나는 만화를 하고 있지 않았다. 이 작품 또한 만화가 아니란 생각이었다. 어떤 화는 만화 같은데 다른 화는 동화 같았다. 동양화 기법도 써보고 <골방환상곡> 느낌도 다시 살려보고 4컷 만화도 그리면서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겐 포트폴리오 같은 느낌이었다. 

 

▲각 화마다 그림체가 달라지는 <겨울동화> / 출처: 네이버 웹툰. 심윤수. <겨울동화>
▲각 화마다 그림체가 달라지는 <겨울동화> / 출처: 네이버 웹툰. 심윤수. <겨울동화>

Q. 마찬가지로 글·그림 작가로 연재한 네이버 단편 웹툰 <겨울동화>(2010)에선 12개의 단편 동화와 각기 다른 그림체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A. 이러한 작업 방식은 직업의식이 없어야 한다. 초기엔 만화가라는 의식 자체도 희미했기 때문에 필명도 자주 바꿨다. 나는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욕망이 거의 없다. 내 그림이 예쁜 것과 내가 보기에 작업물이 좋은 것이 훨씬 중요하다. <일편단심화>가 포트폴리오 같은 느낌이었다면 <겨울동화>는 이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이전 작에서 반응이 좋았던 동화 작업을 더 강화한 것이 <겨울동화>였다.

 

▲<싱글브로> 1화 / 출처: 네이버 웹툰. 아린, 심윤수. <싱글브로>
▲<싱글브로> 1화 / 출처: 네이버 웹툰. 아린, 심윤수. <싱글브로>

Q. 현재는 네이버 웹툰 <싱글브로>를 연재 중이다. <찌질의 역사>의 연재가 끝난 2017년 이후 약 5년 만의 작품이다. 

A. 사실 <찌질의 역사>가 끝나자마자 거의 바로 준비했던 작품이었다. 내가 야구를 잘 몰라서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다짐은 없고 그냥 잘 됐으면 좋겠다. 또 이제는 예전과 다르게 (만화가를) 직업으로 생각해서 그림체를 더 각인시켜야겠다란 생각도 있다. 두려움 같은 것도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올드하지 않냐?’란 질문을 많이 한다. ‘내 그림이 올드하지 않아요?’, ‘내 색상이 올드하지 않아요?’ 내 그림이 낡은 건지 아닌지만 확인하고 싶다. 물론 피드백이 와도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근데도 두렵다. 진짜 올드하다는 얘기를 들을까 봐. 

 

Q. 본교에는 미대를 다니는 학우가 많고, 실제로 웹툰 작가를 희망하고 진학한 학우들도 많다. 이 학우들에게 네이버 웹툰 1세대 작가로서 조언 부탁드린다.

A. 일단 (웹툰작가가) 직업이 된 것이 신기하다. 그전에는 두루뭉실한 그림쟁이 정도로 인식했다. 이젠 (세상에서도) 직업이 됐고, 나에게도 직업이 됐다. 해주고 싶은 조언은 딱히 없다. 한가지 말해주고 싶은 건 간혹 성공한 사람 중에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운이 좋았다’는 말은 굉장히 복합적이다. 나만 해도 직업을 선택할 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삽화가가 될 건지 혹은 만화가가 될 건지. 결국 만화가를 선택했는데 현재는 삽화 시장이 (만화 시장보다) 작아졌다. 하필 내가 선택했던 것이 운이 좋아서 시장이 커진 것이다. 운이 좋았다는 건 이런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좋아하는 걸 잘한다기보단 잘하는 걸 좋아하게 된다. ‘좋아한다’의 근원을 따져보면 내가 어떠한 취향이 있기 전에 잘해서, 칭찬 몇 마디 힘에 이끌려서 온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중에 고민에 빠지고 짝사랑을 하기도 한다. 만화를 사랑하지만 만화는 나를 선택해주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가 굉장히 슬프다. 이런 사랑 때문에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서 얘기했듯 운이 좋고, 시장이 커져서 같은 재능이어도 사랑받거나 사랑받지 못할 수 있다. 이걸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얘기한다. 사실 운이 좋고, 좋은 시대를 만나기 위해선 든든한 가정 배경도 필요하다. 내가 하는 작업이 잘 될 때까지 (벌이가 없어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20대는 모두 피가 난다. 그 상처가 잘 아물었으면 한다.

 

*블로잉: 1600도의 온도에서 유리를 녹인 뒤, 유리 안에 공기를 불어 넣어 원하는 모양으로 형태를 만드는 유리 공예 작업.

**이능력자물: 다른말로는 능력자 배틀물이라고 하며,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싸우는 이야기 다루는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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