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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할 수 있는 사람

이종혁(시각디자인 16)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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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학우 여러분. 저는 시각디자인과 16학번 이종혁입니다. 이번 여름에 학부를 졸업했어요. 지금은 시각 예술가로 활동하며, 내년에 계획하고 있는 전시를 준비 중입니다. 학교를 다니며 얻게 된 많은 것들 중, 현재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부분에 대해 쓰고자 해요. 제목에 쓴 것처럼 ‘연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학부에 입학한 2016년도는 문화 예술계 미투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기 시작한 해였어요. 돌이켜보면 2016년을 고등학교나 입시 학원에서가 아니라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서, 문화 예술계의 일원으로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선배 작업자들이 노력하여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개인적으로 재사회화되는 기회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사회가 아주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학교 안팎에서 동료 여성 작업자들이 비슷한 이유로 괴로움을 겪는 상황을 목격하거나 듣게 되는 일들이 있었어요. 가해자들은 미술계 여기저기에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초록 불에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처럼,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예기치 않게 닥쳤습니다. 초록 불에는 길을 건너도 안전해야 합니다.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사회적 약속이니까요. 하지만 그냥 자기 가고 싶을 때 풀 악셀 밟는 인간들이 계속해서 있어왔습니다. 사람을 쳐도 크게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남들도 그렇게 사니까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차량과 보행자의 힘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미술계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대부분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힘의 차이가 명확했습니다. 사회적인 약속 혹은 시스템 속에서 보호받지 못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맞서야 할 때, 이러한 힘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개인과 개인이 모여 연대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미술계라는 횡단보도를 초록불에 건너는 보행자들이 더 이상 아무도 다치지 않게끔 사회적 약속을 강화하는 법도 연대를 통해 이뤄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연대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를 서로 나누는 것이에요. 미술계의 구조상 이미 먼저 사회에 진출해 힘을 얻은 사람을 공공연하게 적으로 돌리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아직 사회에 진출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알게 된 몇몇 힘 있는 사람들의 존재는 더욱 거대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조금만 더 나아가다 보면, 그 사람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면 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보다 일찍 사회에 진출해 있는 이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많은 동료들, 친구들이 그들이 어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픕니다. 여러분과, 우리의 후배들은 보다 안전한 사회에서 작업 활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그래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는 연대해야 합니다. 도움을 청하는 요청이 왔을 때, 용기를 내어 그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홍익대학교를 다니면서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겐 가장 가치 있는 일 중 하나였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손 내밀고, 주저하지 않고 손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조금의 이득을 포기하지 못해, 혹은 본인은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를 망가뜨리는 사람들 곁에 남지 마세요. 우리 모두 보다 건강한 사회에서, 건강한 구성원으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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