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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동네는 오늘 삼겹살이 싸요

위미경(예술96)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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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뭘 써야 하지?’ 학보사 기자의 문자를 받고 아득해졌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선배들의 글을 싣는다는 이 코너는 주제의 제한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기자는 이제까지 실렸던 글 몇 편을 제게 보내줬습니다, ’08학번, 09학번, 11학번, 07학번….’ 세상에나, 제게는 까마득한 후배들이 자신의 대학 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는 코너더군요. 네, 저는 96학번입니다. 새내기인 17학번의 대부분이 태어나지 않았을 1996년에 대학 생활을 시작했지요. 그리고 21년이 지난 지금, “어떤 주제든지 좋아요.”라는 기자의 말에 ‘그럼 집 앞 마트의 삼겹살 할인 소식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주부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 대학 입학연도보다 현재 초등학생인 아들의 대학 입학연도가 더 가까울 나이네요(아들이 대학을 간다면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대학 시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합니다. 어땠더라 하고 떠올리면 캠퍼스의 공기며 냄새, 작은 추억들이 머릿속에 그려지긴 하지만 주부에겐 그럴 여유가 별로 없어요. 그래야 할 이유도 딱히 없죠. 어쩌다가 스스로 옛 이야기를 하게 되면 무지하게 민망합니다. 옛 영화를 곱씹는 그저 그런 어른이 된 것 같거든요. 하아…, 그러니까 대학 시절이 영화로운 때였다는 거군요, 제게. 이렇게 글을 쓰면서야 새삼 깨닫습니다. 그런데 그땐 어서 내 일에 안착한 30대가 되고 싶었고, 거기다가 결혼과 육아를 얹어 정신없이 30대를 지나고 보니 지금이 되었습니다. 제 정신세계를 반은 가정에, 반은 일에 할애하고 나니 나 자신은 어디로 갔나 싶어 요즘엔 일주일 중 하루는 카페에서 이런저런 작업을 하곤 합니다. 이 글도 이 시간 덕분에 쓸 수 있는 거죠.

  이 시간, 이 카페에서 늘 보는 다른 손님이 있습니다. 사주를 보는 분인지 매번 다른 사람에게 인생 상담을 해주시더군요. 진로, 결혼, 자녀 문제. 저도 예전엔 알 수 없는 미래가 궁금해서 타로며 사주를 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섭도록 정확한 점괘에 섬뜩해져 궁금증을 접었습니다. 점괘가 맞거나 설사 틀린다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살아가는 것뿐이더라고요. 점쟁이가 “이러이러한 일이 있을 텐데,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미리 경고해도 나란 인간은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하니까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 그랬구나.’ 하는 게 인생인가 봅니다. 그래도 저리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는 것은 마음의 위로가 되겠지요. 내 걱정은 남이 해주는 게 유용하더라고요. 내 걱정의 답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고, 내 걱정은 남이, 남 걱정은 내가 하며 서로 힘 얻어 사는 것 같아요.

  원고지도 채워가니 내 걱정도 남 걱정도 이만 줄일게요. 역시 저녁은 삼겹살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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