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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안의 사람들 : 뮤지컬 <데스노트>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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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가 중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늘 오바타 타케시(おばたたけし, 1969~ )선생님과 토가시 요시히로(とがしよしひろ, 1966~ )선생님을 언급하곤 했다. 그 이유로는 옛날 만화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그들이 쓰는 색감이나 그림체가 내게는 유난히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사실 오바타 타케시 선생님의 만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히카루의 바둑>(2001)이다. 점점 발전해가는 오바타 선생님의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점이나, 작품 안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메시지가 묵직하다는 점 등 무엇 하나 싫은 점이 없다. 그러나 그는 <히카루의 바둑>보다는 차기작 <데스노트>(2022)로 더 유명하다. 나는 작품을 보지 않았지만, 그를 설명하기 위해 <데스노트>를 언급하곤 했다. <데스노트>는 내게 딱 그 정도 위치였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중 하나. 그런 <데스노트>를 본격적으로 사랑하게 된 이유에는 뮤지컬의 지대한 영향이 있었다. 지금부터는 작품에 관한 설명과 무대 디자인에 관한 분석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뮤지컬의 원작이 되는 만화 <데스노트>의 간단한 소개는 안세영 에디터의 말을 빌리고 싶다. “<데스노트>는 이름을 적기만 하면 원하는 대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신의 노트가 인간 세상에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우연히 사신의 노트를 주워 범죄자를 처단하는 우등생 ‘라이토’와 그를 뒤쫓는 명탐정 ‘엘’의 대결을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주요 인물은 야가미 라이토와 엘, 미사, 사신인 류크와 렘이다. 이 만화를 떠올릴 때면 늘 검은색 노트에 흰색 글씨로 ‘DEATH NOTE’가 쓰여 있는 모습이 생각난다. 뮤지컬 <데스노트>(2022)는 우리의 마음을 꿰뚫고 있기라도 한 듯 이러한 이미지를 잘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테니스를 치는 부분이다. 아마 <놈의 마음속으로>라는 넘버를 할 때가 아닌가 싶은데, 2막 중에서 엘과 라이토가 테니스로 시합하며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는 장면이다. 만약 테니스를 치는 장면이 있다고 하면 보통은 중심인물들끼리 마주 보고 테니스를 치고 관객들은 그들의 옆모습을 바라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데스노트>에서는 다르다. 무대 뒤쪽에 관객석을 마련해놓고 앙상블을 양쪽으로 갈라 배치한다. 가운데에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코트는 조명 두 개로 나타낸다. 왼쪽과 오른쪽이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테니스 치는 연기를 하면서 중심인물 둘이 넘버를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넘버가 점차 고조됨에 따라 왼쪽을 맡고 있던 코트 조명은 오른쪽으로 90°, 오른쪽을 맡고 있던 조명은 왼쪽으로 90°를 돌리고 가운데에 붉은색 선 조명을 비추면서 무대를 반으로 나눈다. 배우들은 코트가 변화하는 모습에 따라 똑같이 90°를 돌게 되고, 마침내 객석을 바라본다. 관객이 마치 중심인물 서로의 상대가 된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는 상대방의 시선을 공유하게 만든다. 일종의 전율까지 느껴졌던 연출이다. 이에 <데스노트>의 △무대 세트 △조명 △영상 △소품 총괄 디자인 디렉터를 맡은 오필영 디자이너는 이렇게 언급한다. “테니스는 본래 두 명이 서로 마주 보고 하는 경기지만, 무대에서 그렇게 하면 관객이 배우의 표정 연기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중략) 바닥의 테니스 코트를 시시각각 이동시키며 경기를 주도하는 쪽이 객석으로 얼굴을 향하고, 끌려가는 쪽이 등을 보이도록 만들었다. 감정이 최고조로 달하는 부분에서는 코트를 둘로 나눠 두 인물 모두 객석을 바라보게 했다.”

오필영 디자이너는 이런 식으로 전반적인 연출에 쓰인 선의 의미도 언급했다. “신이 그은 선이 인간 세계를 좌우하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장면마다 다양한 형태의 선으로 공간을 구성했어요. 연출가와 협의해 배우들이 선을 벗어나지 않도록 동선을 짜서 통제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했죠” 내심 이 인터뷰를 보고 나서는 궁금한 점이 생겼다. 어떤 장면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라이토와 엘이 선으로 그어진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빗겨나가며 걸었고 경계선에서 교차했다. 그러곤 당당하게 라이토는 엘의 자리에, 엘은 라이토의 자리에 앉아 넘버를 불렀는데 이것은 어떻게 해석하면 좋은가. 단순한 퍼포먼스 행위일까? 어쩌면 이는 서로의 공간 침입해서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해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들은 흰 선으로 그어진 경계선을 온전히 탈출하지 못한다. 부두에서 엘은 라이토에게 살해당하고, 라이토는 신이 되지 못하고 인간의 한계를 맞이하며 죽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신이 되지 못한다. 작품 <데스노트>는 인간은 인간일 뿐이라고 선을 그어준 작품이 아니었을까. 무대에서도 배우들이 그 선을 넘나들 수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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