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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색 밧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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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S동 211호를 작성하기 전, 평소 기자 활동을 하면서 들었던 고민을 펼쳐봤다. 그중 하나를 골라 미뤄놨던 고민의 답을 내리겠다고 결심했다. 심사숙고 끝에 첫 오피니언에 기자 생활의 마지막을 써보는 건 어떨까 싶어 주제를 골랐다. 단서를 찾기 위해, 현재 모든 열정을 쏟고 있는 기자의 마지막이 어떨지 생각해봤다. 더 이상 즐겁지 않고 힘들기만 한 학보사 일을 쌓아두고 징징대는 모습, 식어버린 열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신문사를 나갈 날만 기다리며 대충 쓰기 시작한 기사… 정말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머리가 아파졌다.

병아리색 코트를 맞춰 입은 다섯 남자가 경쾌한 음악에 몸을 맡겨 막춤을 춘다. 10년가량 활동한 미국의 인디 록밴드가 낸 마지막 앨범, 마지막 곡의 뮤직비디오 내용이다. 4분 동안 이게 뭔가 싶은 춤을 추는 게 전부인 영상이지만 처음 접했을 때의 감흥을 잊지 못한다. 마지막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모습이 너무 순수하고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밴드의 약력은 이러하다. 음악을 사랑하는 청년들이 모여 시작한 밴드는 차고에서 녹음한 첫 앨범이 예기치 않게 성공하고 이후 음악사에 족적을 남긴 음악들을 꾸준히 발매한다. 그들의 음악은 인정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멤버들 간의 불화가 생겼고 결국 해체한다. 해체를 앞둔 그들은 디스코그래피의 마침표에 아쉬움 대신 음악에 대한 사랑을 담았고, 이를 가사가 아닌 멜로디와 뮤직비디오로 표현했다. 주관적 감상이 들어간 해석이지만 기자는 이들의 이야기에서 작은 해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위 상황을 기자에게 대입해보겠다. 우연히 학교에서 발견한 신문사 포스터가 예쁘다고 생각해 지원한 게 덜컥 붙어 입사했다. 좋은 신문사 동료들을 만났고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볼 때마다 약간의 보람도 느꼈다. 그러나 결과와 과정은 엄연히 다른 법이다. 간단한 인터뷰 질문지 하나를 작성하는 데에도 2시간씩 걸리고 기사 작성은 더더욱 오래 걸린다. 게다가 장인이 아닌 초보자의 손길로 열심히 빚은 기사는 기자 스스로 봐도 모나고 지저분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기사 쓰기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다행히 적성에는 맞았다. “역사에 남을 기사를 써봅시다!” 저번 하계 방학 중 훈련 기간에 선배 기자가 기자의 시사파수꾼 기획서를 피드백한 후 한 말씀이다. 선배 기자는 단순히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일 수 있지만, 이 한마디는 기자의 반년을 책임질 동력이 됐다. 다음 학기 개편을 목표하는 새로운 코너를 기획하고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의 연합기사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한 번 크게 타오른 불꽃은 금방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일이 즐겁긴 했지만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평소 어리바리한 성격으로 자주 하는 실수들에 최근 기자는 지치기 시작했다. 계속 즐겁게 기사를 쓸 수 있을까? 원숙한 기사를 쓰기 위한 노력과 열정이 남아 있을까? 언젠가 활동의 마무리를 결심할 시기가 올까? 떠다니는 고민과 질문 밑에서 밴드의 마지막 곡을 틀어본다.

 

폭풍우처럼,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말해야 해.

흔들고, 싸우고, 느끼는 건 모두 괜찮아 .

네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 설명하는 데에 네 소중한 숨결을 낭비하지 마.

인내심을 가져, 네게 내 당근색 밧줄을 보여줄게, 내 황홀감을 충족시켜줘.

 

전술한 밴드와 노래는 페이브먼트(Pavement)의 *<Carrot Rope>다. 그들의 1집에는 미완, 날 것의 느낌이 가득하다. 뒤죽박죽된 구성과 믹싱, 그럼에도 듣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멜로디. 하지만 5집으로 갈수록 음악은 정돈돼갔다. 기자는 마감 기한에 쫓기며 쓴 첫 기사를 기억한다. 페이브먼트의 첫 곡에는 매력적인 멜로디가 있었지만 기자의 첫 곡에는 뒤죽박죽된 구성만 있었을 뿐이다. 음악과 기사는 목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어렵긴 하다. 하지만 기자 역시 그들처럼 정제된 무언가를 쓰기 위해 고민하고 지금 기사를 대하는 즐거운 마음을 잃지 않겠다. 글을 쓰는 것이 즐겁다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기자의 5집도 제법 아름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Carrot Rope 공식 뮤직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G53DW71Bl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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