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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즐거움을, 시를 쓰기 전, 대상에게 말을 건다

시인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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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
▲안도현 시인

시를 써보라고 하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막막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안도현 시인은 자신이 시의 주제로 삼고 싶은 대상을 찾은 후 자신이 그 대상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그 대상으로부터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대상의 감정과 생각을 시로 전달하며 보람을 느낀다는 안도현 시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작가님의 시를 보면, 작가님의 경험과 시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A. 대부분 시인이나 소설가들은 자기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게 된다. 자신이 겪은 일은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그렇다. 경험한 사실에 경험하지 못했던 상상의 세계를 결합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시를 쓰는 데 나의 경험을 관련짓게 되었다.

 

Q. 지금까지 쓰신 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A.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이미 썼다면,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즉, 진짜 마음에 드는 시는 앞으로 써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쓴 시 중에서는 <겨울 강가>, <간격>과 같은 시에 애착이 간다.

 

Q. 시를 언제부터 쓰시기 시작했고, 어떤 이유로 시인이 되셨는지 궁금하다. 

A.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글 쓰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미술반 활동을 했고, 1년에 한 번씩 나오는 교지에 삽화 그리는 일을 맡았다. 하루는 국어 선생님이 미술반만 불러 그림 그리는 속도가 늦다는 이유로 때리며 혼을 내셨다. 오로지 그 이유로 맞은 게 억울하고 화가 났던 나는 시를 써서 혼을 내신 국어 선생님의 눈에 듦으로써, 미술반도 시를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처음으로 마음먹고 시를 쓴 것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처음 마음먹고 시를 쓰려고 했을 땐 생각보다 잘 써지지 않았다. 고민을 많이 한 후 교지에 투고한 글은 교지에 실리지 않았다. 이때 나의 시를 꼭 교지에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고등학교에 가서는 문예반에 들어가 시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그때부터 여러 시집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시가 주는 즐거움을 경험하며 시인을 꿈꿨던 것 같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훨씬 좋아 마치 문학이라는 우물에 풍덩 빠진 것 같았다. 

 

Q. 작가님은 언제 시인으로써 보람을 느끼시는지,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시’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A. 보통 사람들은 ‘시’라는 것을 시인의 느낌이나 감정을 종이에 쓴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것도 ‘시’에 포함되지만, 시골의 할머니처럼 오래 산 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분들은 많은 말을 하고 싶은데 문자를 쓸 줄 몰라서 “내가 살아온 삶은 책으로 쓰면 소설책 몇 권을 쓸 거야”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지 못한다. 가슴에 있는 무언가를 말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 써주는 것도 시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길가의 나무들과 저수지에 있는 새들, 또 여기 앞에 켜있는 촛불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아닌 것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려 노력하고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사람의 말로 써서 시를 통해 전할 때 보람을 느낀다.

▲안도현 시인의 연구실
▲안도현 시인의 연구실

Q. 시를 쓰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A. 사람이나 나무, 풀과 같이 어떤 자리에 있을 때 그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 있다. 사람 입장에서 보았을 때 ‘컵’은 물을 따라 먹는 도구의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더 정확하고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서는 오래 사유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오래 바라보게 되는 것처럼 시를 쓸 대상을 오래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교수로 일하며 학생들에게 집에 있는 북어나 멸치를 흰 A4용지에 올려놓고 다음 주 수업 때까지 일주일 동안 3시간을 바라보라는 과제를 내주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오래 본 만큼 그 대상을 알 수 있고 또 그 대상에 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Q. 시를 쓸 때 힘들었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A. 내 경우에는 시를 굉장히 힘들게 쓴다. 하나의 시를 쓰더라도 수십 번 수백 번 퇴고한다. 지금 여기 앞에 켜져 있는 촛불에 대한 이야기를 쓰더라도 촛불이 하는 말을 잘 들어야 촛불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시를 통해 전할 수 있고, 그것을 사람의 이야기로 잘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Q. 작가님의 시에 큰 영향을 미친 시기나 경험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A. 우리나라 시인 중 백석이라는 시인이 있다. 난 20대부터 백석 시인을 매우 좋아했다. 그 시기가 시를 쓸 때 영향을 많이 받은 때인 것 같다. 지금도 백석이라는 시인을 좋아하고, 내가 시를 쓰는 데 있어서 그 시인의 영향을 받았다.

 

Q. 시에 ‘누이’라는 소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러한 소재를 많이 사용한 이유가 있을까?

A. 실제로 우리 집은 사형제이기 때문에 누나가 없다. 따라서 우리 어머니는 평생 ‘딸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하셨다. 이러한 우리 어머니의 마음이 나한테는 ‘나도 여동생이나 누나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전해진 것 같다. 이처럼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시에서라도 누나라고 불러 보고 싶었다.

▲안도현 시인께서 기자에게 선물해 주신 시집
▲안도현 시인께서 기자에게 선물해 주신 시집

Q. 작가님의 시 <무빙>이나 <삼례에서 전주까지>처럼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의 시를 주로 쓰신 이유가 궁금하다.

A. 지금은 농사짓는 인구가 적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농사를 짓는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농경사회의 문화를 그냥 받아들인 세대로 자랐고 내 삶이 그랬으므로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시에 저절로 묻어나온 것 같다. 번쩍번쩍한 도시보다는 낡은 것을 더 선호한다. 너무 빠른 것보다는 조금 느리더라도 기차를 타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하다. 

 

Q.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라는 시집을 보면, 내용 중 가족 공동체와 관련된 시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처럼 가족 공동체를 종종 언급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문학을 하면서 제일 관심 있었던 것이 사람과의 관계, 너와 나라는 개인과 이웃 공동체의 관계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옛날에 비해 관계는 분열되고 갈등에 빠지고 있다. 이처럼 뒤틀리고 분열된 여러 관계들을 다시 공동체 속의 관계처럼 회복하는데 내 글이 약간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가족이나 공동체 이야기를 많이 쓰게 됐다. 

 

Q. 앞으로 어떤 내용을 중심으로 시를 쓰실 계획인지 궁금하다.

A. 시를 쓸 때 어떤 내용을 쓰겠다고 미리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학에는 여러 장르가 있다. 따라서 나는 시도 쓰고 동시도 쓰는 등 여러 장르를 쓰는데, 올겨울에는 동시를 좀 더 집중해서 쓸 예정이다.

▲안도현 시인이 학생들로부터 받은 편지
▲안도현 시인이 학생들로부터 받은 편지

Q. 시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린다. 

A.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일하면서 학기 초 학생들에게 집에 시집이 몇 권 꽂혀 있는지 물어본다. 적게는 5권에서 많게는 7~80권이 꽂혀있다고 답한다. 그 아이들이 제출한 시를 보면 당연히 시집이 많이 꽂혀있는 아이들이 시를 훨씬 잘 쓴다. 많이 꽂혀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읽었다는 것이고, 시를 많이 읽는 것은 시를 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 번째로 시를 많이 읽으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두 번째로는 뭐든 자기가 쓰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애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 생명 없는 컵에 관해 쓰더라도 그 컵을 오래 바라보며 컵에 대한 애정을 가지면 그전엔 생각하지 못했던 문장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훈련을 열심히 한 운동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처럼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즉, 시인이 되고 싶거나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자기를 자꾸 훈련 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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