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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력과 내력의 싸움에서 버티고 있는 우리에게, <나의 아저씨>(2018)

편안함에 이를 때까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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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2018)/출처: imbc
▲<나의 아저씨>(2018)/출처: imbc

기자가 박해영 작가의 <나의 아저씨>(2018)를 택한 건 인생의 쓴맛을 많이 볼수록 더 많이 위로받고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행복하자” 는 뻔한 말이 유독 특별하게 느껴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하루를 버틴다. 각각 다른 퍼즐 조각처럼 모두 다른 사연이 있고 버티는 방식도 다르지만 서로를 통해 ‘행복’이라는 퍼즐을 마침내 완성시킨다.

<나의 아저씨>에는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아저씨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 중에는 정리해고를 당하고, 여러 번 말아 먹은 장사로 아내와 별거 중인 첫째 ‘상훈’, 유일하게 성공해서 대기업을 다니는 둘째 ‘동훈’, 20년째 데뷔도 못한 조감독인 막내 ‘기훈’. 이렇게 아저씨 삼형제가 있다. 그리고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는 21살 소녀 가장 ‘지안’이 등장한다. 지안과 삼형제는 모두 ‘후계동’ 주민이다. 기자는 인천 동구에 위치한 따뜻한 동네 후계동으로 그들을 따라가 봤다.

지안은 여섯 살 어린나이에 듣지도, 말하지도, 홀로 움직일 수도 없는 할머니 ‘봉애’와 단둘이 남겨졌다. 꿈, 계획, 희망은 쓰레기통에 갖다 버린 지 오래다. 버는 족족 사채 빚을 갚고, 닥치는 대로 일 하고 먹고 현실을 버틴다. 여태까지 지안을 도와줬던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들은 딱 네 번씩 도와주고 도망갔다. 그런 탓에 세상과 인간에 대한 냉소와 불신만 남게 된다.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보던 도중 지안의 ‘특기는 달리기’가 써져 있는 이력서가 동훈의 눈에 띈다. 그리고 지안은 동훈이 다니는 대기업 건설회사 ‘삼안 E&C’ 에 단기 계약직으로 취직하게 된다.

지안은 회사를 다니던 도중 사채업자로부터 벗어날 좋은 기회를 잡는다. 건설 회사 사장 ‘도준영’의 뇌물이 동훈에게 잘못 전달됐고, 이 사건이 드러날까 두려웠던 준영이 지안을 꼬드긴다. 돈이 절실한 지안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준영의 지시에 따라 동훈을 도청한다. 동훈의 약점을 찾아 회사에서 자르기 위해 말이다.

 

봉애 : (수화로) 좋은 사람같애. 

지안 :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

 

지안은 자신과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 정당방위가 인정돼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세상은 ‘살인’을 해본 아이를 곱게 봐주지 않는다. 하지만 동훈은 달랐다. 과거를 붙들고 늘어지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지안을 바라봐줬다.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있던 지안은 동훈도 다른 이들과 다를 것 없다 생각하고 곁을 주지 않는다. 이런 지안이 사람을 믿기 시작하게 된 건 후계동 어른들을 만나고 나서부터다. 후계동은 친구 아버지가 초등학교 선배고 아버지들끼리는 동창인 그냥 서로 다 아는 사이인 동네다.

그리고 여기는 간판은 없지만 후계동 사람들의 아지트인 동네 술집, ‘정희네’다. 이곳에서 동훈네 삼형제와 친구들은 술 한잔하며 수다도 떨고 푸념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한다. 정희네는 기자가 작품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다. 유독 이 장소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어른들의 솔직함, 씁쓸함, 유치함을 볼 수 있다. 후계동 사람들은 한때 잘 나갔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실패’한 상태다. 사업에서든, 결혼에서든. 그래서인지 동훈을 동네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사람이라 한다. 가정도 직장도 있기 때문이다.

 

▲후계동 어른들의 아지트, 정희네
▲후계동 어른들의 아지트, 정희네

동훈 :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

 

동훈은 순리대로 인생을 살아가며 모험은 절대 하지 않는 안전제일주의자다. 눈에 띄는 걸 불편해하며 “이만하면 됐다”를 입에 달고 산다. 기자는 이 작품을 16살 때 처음 봤다. 당시에는 동훈을 ‘당하고만 사는 답답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아직도 많이 어리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마주한 동훈은 ‘어른’이었다. 당한 게 아니라 강한 내력으로 버틴 것이었고, 답답한 사람이 아니라 의리 있고 예의를 지키는 어른이었다.

하루 종일 이어폰을 끼고 동훈을 도청하며 그의 일상을 지켜본 지안은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그리고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게 하루를 꾸역꾸역 버티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에게 대가없이 친절을 베푸는 ‘어른’ 동훈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약점을 찾기 위해 시작한 도청은 어느새 그를 이해하는 창구가 된다.

지안 : 처음으로 사람대접 받아봤고, 어쩌면 내가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 이 회사에, 박동훈 부장님께 감사할겁니다. 여기서 일했던 3개월이 21년 제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습니다.

워낙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지안은 회사 사람들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다. 물론 회사 사람들도 지안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그리고 동훈을 이해하기 전 그의 약점 을 만들기 위해 했던 행동들과 회사 내에서의 안 좋은 평판으로 인해 지안은 회사에서 잘릴 위기에 처한다. 위 대사는 회사 임원진과 회장님 앞에서 지안이 한 말이다. 21년, 252개월 중에서 고작 3개월 동안 느낀 따뜻함 덕분에 지안은 과거의 짐을 훌훌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하지만 따뜻함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았다. 지안을 증오하는 사채업자 ‘광일’에게 갚아야 할 돈은 여전했다. 착실하게 돈을 갚는데도 광일은 툭하면 폭력을 썼다. 광일이 이러는 이유는 두 가지다. 위에서 말했던 지안이 죽인 사람이 광일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광일은 지안을 좋아했다. 하지만 보고 자란 것이 아버지의 음주와 폭행뿐이었던 그는 삐뚤어지기 시작했고 지안이 자신을 보게 만드는 방법은 괴롭히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안 : 착했던 애에요. 나한테 잘해줬었고. 걔네 아버지가 나 때리고, 말리다가 대신 맞고. 그땐 눈빛이 지금 같지 않았어요. 걘 날 좋아했던 기억 때문에 괴롭고, 난 걔가 착했던 기억 때문에 괴롭고.

 

여기는 인천 항동의 연안부두 인근, 광일 의 ‘영광대부’ 사무실이 있는 건물이다. 약 4년 전에 촬영된 드라마 속 건물보다 페인트칠이 더 많이 벗겨져 있었고 1층 상가는 거의 문을 닫은 상태였다. 바닷가 근처인데다 기자가 방문한 시각이 해가 질락 말락하는 오후 5시쯤이어서 그런지 회색 건물이 더욱 칙칙해보였다. 이 장소는 지안이 빚을 갚으러 오는 장면과 동훈이 지안을 괴롭히는 광일을 찾아와 싸우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동훈 : 내가 행복하게 사는 꼴 보여주지 못하면 넌 계속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할 거고,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너 생각하면 나도 마음 아파 못 살거고. 그러니까 봐. 어?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사나. 꼭 봐. 나 안 망가져. 행복할거야. 행복할게.

 

▲영광대부 사무실
▲영광대부 사무실

동훈의 아내 ‘윤희’는 준영과 불륜 관계다. 동훈은 이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윤희에게 바람을 핀 순간 자신에게 사망선고를 내린 거나 다름없다며 분노하고 오열했고, 도청 중이었던 지안은 이 상황을 모두 듣는다. 동훈이 지안을 위해 광일을 찾아갔던 것처럼 지안 역시 윤희를 찾아 간다. 준영이 윤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윤희에게 폭로해버린다. 그리고 여태까 지의 도청 사실을 알게 된 동훈은 지안에게 자신의 보잘것없는 인생을 다 듣고도 편을 들어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그러곤 행복을 다짐한다. 기자는 이 장면을 보며 큰 힘을 얻었던 기억이 있다. 망가지지 않겠다고, 행복해지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동훈의 눈은 슬프지만 반짝반짝 빛난다. 순리대로 욕심 없이 양보하며 살아온 동훈에게 행복에 대한 욕심과 앞 날에 대한 확신이 느껴졌다.

 

▲지안이네 집 앞
▲지안이네 집 앞

이곳은 후계동에 위치한 지안과 봉애가 살던 집이다. 집 앞 계단에서 지안은 광일에게 맞기도 하고, 홀로 멍하니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실제 그 주변은 매우 한산했다. 찾아가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집을 찾자마자 마주한 것은 대문에 붙은 노란 ‘출입 금지’ 딱지였다. 곧 쓰러질 듯 낡은 터라 안전을 위해 출입을 막은 것 같았지만 촬영 장소가 영영 사라지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언덕 위쪽에 위치한 지안의 집 앞에서는 동네 전경이 보인다. 벌레가 많아 오래 머물지 못했지만 주변을 둘러보며 고된 하루를 버텼을 지안을 떠올려봤다.

 

봉애 : (수화로) 참 좋은 인연이다. 귀한 인연이고. 가만히 보면 모든 인연이 다 신기하고 귀해. 갚아야 돼. 행복하게 살아. 그게 갚는 거야.

 

지안의 유일한 버팀목이자 가족이었던 할머니 봉애가 결국 눈을 감는다. 그리고 후계동 어른들은 지안과 함께 봉애의 마지막 가는 길을 끝까지 지킨다. 할머니를 보내드린 뒤, 은혜를 갚겠다며 지안이 감사 인사를 전하자 어른들은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니라며 지안을 토닥인다. 우울과 분노로 가득 차있던 21살 소녀는 진정한 어른들을 만나 마침내 이름대로 살게 된다. 이를 ‘지(至)’, 편안할 ‘안(安)’. 편안함에 이르게 된다.

 

▲지안과 동훈/출처: imbc
▲지안과 동훈/출처: imbc

요즘 우리에게 유독 힘든 일이 많았다. 이럴 때일수록 어른들의 존재가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그들은 힘들어도 서로가 서로를 다독이며 버텨야 한다고 말한다. 아직은 어린 우리 세대도 훗날 고난이 닥쳤을 때 다음 세대를 이렇게 위로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진정한 어른이 되는 그 날까지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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