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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회 홍대 학・예술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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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부문

최우수상 장승재(국어국문3)

「생물4」

우수상 오지환 (자율3)

「필름 현상」

 

최우수

<생물4>

옥수수 대신 까마귀가 영그는 밭에

녹색의 해진 셔츠가 바람처럼 불었다

그녀는 셔츠를 입고 있었고 해가 지고 있었다는

딱 그쯤의 기다림이었고

그때 그녀의 머리칼은 젖어 있었다

비가 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네가 날 선택했던 건 나를 잘 모르기 때문이었을거야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있지만 사실 나는 뒤통수에 눈이 달렸어

눈꺼풀이 없는 눈이야

우리가 등을 맞대고 누우면

나는 계속 너를 감시하고 있을 텐데 말이야

 

밤새 누가 방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었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젖고는

내가 너를 잘못 키웠네

말하는 소리가

한참 작아진 다음에도 그녀는 오지 않았고 마치

내가 너를 버린 것 마냥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종종 마음과 반대로 말하기를 장난처럼 즐겼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마음에도 없는 말이었다

그녀가 떠나던 밤에도 나는 징그러운 눈을 뜨고 있었고

그럼에도 내가 뭘 어떻게 하고 싶은지는 알 수 없었다

 

녹색 셔츠를 입은 아이가 나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녀의 머리칼은 젖어 있었고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비가 왔던가

가끔은 그랬던 것도 같다

셔츠가 펄럭이고

그녀는 녹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풀냄새가 났다

너를 입고 갈 거야

가슴이 뛰었다

 

최우수 당선소감

장승재 (국어국문3)

생물이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었고 저는 그 광경을 가장 순진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생물은 자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감히 생물이 되려 하고 있 었고(생물) 생물이 비로소 ‘살아있음’의 절정으로 나아갈 때는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기도 하였습니다(생물2). 그러나 생물은 어느새 두려움의 악령만이 머 릿속을 어지럽히는 늙은이가 되어 있었고 그 늙음을 다른 생물에게 전달하 려 시도하는 공간에서는 두 다리로 서 있기가 힘들었습니다(생물3). 결국 모 든 생물과 무생물은 기억이 되어가고 그들을 생물로 기억할지는 우리의 몫인 것만 같습니다(생물4). 생물은 투쟁합니다. 생물이 되기 위하여 인정하고, 사랑하고, 기다리는 모든 시간들을 저는 투쟁이라 합니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장면이어서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이름도 붙이지 않고 생물이라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어쩌면 모든 장면들이 전부 생물이었고 그 속에는 언제나 생명력이 움트고 있었음을 믿으려 시를 씁니다. 시를 쓰고 저도 어느새 생물이 되어 있겠지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절실한 두 눈으로 뚫어져라 응시하던 것들이 있 습니다. 차마 보지 못했다고 속일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우수

<필름 현상>

엷은 빛이 스미는 겨울 창가에 앉아 

고개를 옆으로 뉘이면 

비스듬한 그림자 얼굴이 되어

흐물거리는 노란색 깃발에 눈길 던진다 

 

해묵은 비탈엔 오랜 아이들이 걸어 오르곤 했다고 

오래된 옛 선생이 말을 흘렸고 

그때마다 내 마음이 홀쭉해지다 가라앉았고 

이윽고 넙치처럼 모로 누워서는 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돼 버렸다 

 

인간의 우두머리 바뀌듯 세기의 우두머리 바뀌고 

왼눈은 깊은 바닥에 잠겨 닫힌 채 

오른눈만이 한쪽 세상을 향해 열리고, 

얄팍하고 어설픈 시선에 담기는

노란 깃발. 

 

옛 선생의 비탈은 편편한 검은색 도로가 되어

무신경하게 뻗어 가니 

차들도 무심히 한 발 뻗어 무구한 얼굴인 양 

새초롬 나아간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십미터 대문 하나에 

아침 세수 마친 뽀얀 얼굴 보내고자 

조그만 어미들 

한 팔 올려 깃발 든다

 

우수 당선소감

 

오지환 (자율3)

시를 쓰는 마음과 시를 쓰는 사람의 마음 때문에 시를 쓰게 됐습니다. 시 를 쓰는 사람이 가진 마음이 탐났습니다. 시를 쓰는 마음도 갖고 싶었지 만 그건 탐내지 않았습니다. 어정쩡한 마음으로 쓰는 시가 편했습니다. 어 정쩡한 시나 썼으니 욕심 같은 건 가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참 이상하게도 자꾸 욕심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어정쩡한 마음으로 계속 시를 쓰고 있습니다. 어정쩡하지 않으려고 생각도 많이 하고 있습니 다만, 생각한 만큼 시가 잘 써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계속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시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잘 지켜보고 있으니 모두 건 강한 시인으로 남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심사평

 

이승복 (국어교육과 교수)

일상과 몽상의 거리

언어의 체계는 언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이 지니는 체계로 작동되기도 하고 사회와 역사의 체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의 체계를 분석하면 서 인간에 대한 또는 역사에 대한 또는 사회에 대한 또 아니면 시대에 대한 이해를 기대해 왔으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다. 시라는 예술 양식 역시 언어 체계의 하나임은 물론이다. 매우 독특 하고 극적인 체계이다. 그래서 인간과 사회의 매우 독특하고 극적인 순 간을 표시하기도 하고 대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학예술상 시부문에 참여한 많은 학생들의 작품은 그 다양한 작품 경향과 상당히 뛰어난 언어활용 능력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큰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일 상,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이 한데 만나고 어울리며 관계를 이어가는 사회적 자아는 잠시 접어두고 있 다. 그보다는 몽상, 그러니까 혼자만의 소통에 잠식된 경향과 비중이 유독 크게 느껴진다. 코로나 탓 일까?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일상과 몽상의 적정한 비중과 순조로운 접점에 대해 자꾸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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