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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이들의 이야기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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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언가를 잃어본 경험이 있는가? 우린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가 잃고 만다. 그것이 아끼던 볼펜이든지, 키우던 금붕어라든지, 사랑하는 사람이라든지 말이다. 우린 무언가를 잃고 슬퍼한다. 그것을 그리워하고 추억을 되새겨 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하는가? 아끼고 사랑한 무언가를 잃은 후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생일> (2019), <애프터 양(After Yang)> (2022), <업(Up)>(2009)을 소개하고자 한다. 

 

【당신 없는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여기,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는 ‘박순남’이 있다. 그녀의 남편 ‘정일’은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으로 떠났다가 몇 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일은 그의 가족들이 사는 집으로 찾아간다. 하지만 순남은 초인종을 거듭해서 누르는 정일을 외면한 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성인 여성 신발 하나, 여자 어린이 신발 하나 있는 현관, 무언가 적막한 집안 분위기, 제멋대로 깜빡이는 현관 조명. 이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2014년의 4월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영화 <생일>은 세월호 참사로 아들 ‘수호’를 잃고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다. 뒤늦게라도 아빠 노릇을 하기 위해 정일은 가족들에게 천천히 다가가지만, 순남은 그런 정일이 불편할 뿐이다. 그러던 중, 1년에 딱 하루뿐인 수호의 생일이 돌아왔다. 순남은 수호를 보내지 못했다. 여전히 순남의 세상엔 살아있는 수호가 있다. 수호의 방도 어느 하나 치운 흔적 없이 그대로다. 순남은 항상 거실에서 잠을 잔다. 항상 제멋대로인 현관 조명이 켜지면 순남은 수호를 맞이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순남은 여러 이들의 설득으로 수호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그곳에서 수호의 사진과 영상을 보며 수호를 기억하는 이들이 다 함께 웃고, 울고, 서로를 위로한다. 그들의 생일 파티는 슬프지만 우울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지만 웃음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떠난 이를 기억한다.

영화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배경 음악 없이 흘러간다. 인물의 한숨 소리, 표정, 울음 등이 스크린 밖 관객들에게 더욱 직접적으로 와닿게 된다. 그들의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줌으로써, 어떻게 보면 더욱 슬프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영화 속의 인물들이 받는 위로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유가족뿐만 아니라 어쩌면 모두의 아픔으로 남은 그때를 위로해준다.

 

【무엇을 남기고 싶었어, 양?】

‘양’은 중국인 입양아 ‘미카’를 키우는 백인 남성 ‘제이크’와 흑인 여성 ‘키라’와 함께 사는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처음엔 딸 미카의 교육을 위해 양을 들였지만, 어느새 양은 미카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함께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양이 멈췄다. 양의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제이크는 양을 고치기 위해 양을 데려왔던 중고 가게로 가지만 그곳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다른 수리점을 가도 양은 중심부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새로 사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다. 제이크는 어쩔 수 없이 이웃 주민이 알려준 비밀스러운 기술자를 찾아가게 된다. 기술자는 양에게서 스파이웨어라 주장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분석하기 위해선 특수 판독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의심스럽지만 양을 깨우는 것이 우선인 제이크는 특수 판독기를 구하기 위해 기술 박물관을 찾아가게 되고, 우연한 기회로 양이 남긴 기억을 보게 된다.

영화 <애프터 양>은 안드로이드 로봇의 죽음이라는 다소 생소한 주제를 다뤘다. 로봇과 죽음. 어찌 보면 모순되는 단어들의 조합이라 볼 수도 있다. 로봇이 어떻게 죽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미카 가족에게 있어 전원이 켜지지 않는 양은 더 이상 말을 걸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죽음과도 다름없는 것이기에 어색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제이크는 계속해서 양의 기억을 쫓아간다. 양이 남긴 기억들은 대개 5초 분량의 짧은 영상들이다. 특별한 건 아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 키라가 책을 읽는 모습, 미카가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모습 등 아주 사소한 일상의 순간들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양의 장례식이라고 불렀다. 제이크, 키라, 미카는 일상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양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양이 떠나도 남겨진 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다만 그와 함께한 기억을 마음에 품고 살아갈 따름이다.

 

【너는 나의 인생, 나의 꿈】

딱 보기에도 고집스러워 보이고 세상만사 귀찮아 보이는 할아버지 ‘칼’은 몇 년 전 아내 ‘엘리’를 떠나보내고 혼자 살고 있다. 칼과 엘리는 어린 시절 모험가라는 공통의 꿈을 안고 친구가 되었다. 밝고 화사한 성격의 엘리는 소심하고 겁 많은 칼을 항상 웃음 짓게 했다. 그들은 그렇게 사랑에 빠졌고 그들이 처음 만난 빈집을 고쳐 함께 살 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함께할 모험을 꿈꾸며 일상을 살아왔다. 엘리는 위대한 모험가 ‘찰스 먼츠’가 모험을 떠났던 파라다이스 폭포 옆에 작은 집을 짓고 살아가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칼도 그 꿈을 함께하고자 돈을 모으려 노력하지만 현실이 그렇듯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엘리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칼에게 있어 집이란 엘리와의 추억이 담긴, 어쩌면 엘리 그 자체이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집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칼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아주 위대한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집은 집일뿐이야” 영화 후반부 칼은 엘리와 함께 살았던 집을 잃는다. 앞 대사는 집을 끔찍이도 아꼈던 칼이었기에 함께 모험을 떠났던 ‘러셀’이 칼을 걱정해 한 말이다. 칼은 그녀의 꿈을 끝내 이루어주지 못한 채로 떠나보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았을 것이다. 칼은 우여곡절 끝에 집을 이끌고 파라다이스 폭포에 도착하게 된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집 안에서 펼쳐본 엘리의 모험 책 뒤 페이지엔 칼의 생각과는 다소 다른 엘리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모험을 다 끝내고 돌아온 칼은 이제 알고 있을 것이다. 엘리는 이젠 없지만 그녀와 함께한 추억은 여전히 남아있다. 엘리와 함께한 집은 없어도 기억은 남아있다. 그리고 그녀의 모험 책을 가득 채운 엘리와 칼의 사진은 말해준다. 그녀에게 있어 그와 함께한 인생은 모험 그 자체였다는 것을.

 

세 영화의 공통점은 영화에 나오는 이들이 모두 모종의 이유로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삶을 살아간다. 남겨진 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그들의 삶은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떠난 이를 외면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를 기억하며 남은 삶을 살아간다. 그들이 남긴 기억들을 품고. 그들이 없더라도 시간은 흘러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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