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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보사의 역할: 단면 자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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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쿤스트할(Kunsthal)은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 1944~)의 의해 설계됐다. 쿤스트할의 특징에는 렘 콜하스가 건물 전체적으로 구성과 외관에 있어 비대칭에 집착했다는 것과 그가 계산한 시나리오대로 관객이 전시관 내부를 둘러보게 했다는 점이 있다. 그는 제1전시관에서 제2전시관을 지나 제3전시관을 가는 동선을 철저히 계산했다. 그리고 기둥과 바닥의 타일, 위 천장 등을 이용해 관객의 동선을 유도했다. 여기서 또 재밌는 점은 건축물의 다양한 레이어(layer)다. 쿤스트할은 여러 방면에서 자르는 단면이, 혹은 같은 면이라도 얼마나 많이 자르느냐에 따라 단면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는 쿤스트할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같은 건물인지도 알기 어려울 정도다. 사실 쿤스트할도 다양한 단면을 가진 건축물 중 하나일 뿐이지, 유일한 건물은 아니다. 즉 대부분의 잘 지어진, 유명한 건축물은 한 건물에도 다양하고 재밌는 여러 단면을 숨기고 있다. 기자는 건축물의 여러 단면을 보면서, 정확히는 같은 건물이라도 다른 단면을 가진 것을 보면서 기사 취재할 때가 생각났다.

기자는 여태까지 기사를 많이 쓴 편은 아니지만, 준기자였던 지난 한 학기 동안 다양한 기사에 참여했다. 본교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현재는 본교 공식 마스코트가 된 ‘와우’ 캐릭터 저작권 위반 사건, 미대 A교수 해임 기자회견 등 다른 기자가 맡기 꺼렸던 기사를 도맡아 했다. 이런 사건을 취재할수록 기자는 초반 기획서를 쓸 때 각 사건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았음을 깨달았다. 성폭력 피해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KT 대리점에 찾아가고, A교수 파면 공동행동 측의 변호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단면을 계속 잘랐다. 다양한 사람과 단면을 자를수록 같은 사건이지만 다른 단면을 발견했다. 또 기사화되진 않았지만, 본교 근처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한 적이 있었다. 5개가 넘는 부동산을 직접 방문해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같은 상황에 대해 여러 부동산 업계 분들의 단면은 전부 달랐다.

이번 56대 총학생회(이하 총학) WE, HIGHER는 좋은 선본이었다. 내세운 공약을 충실히 이행했으며, 아직 이행되지 않은 공약들도 본교 측과 충분히 논의 중인 것을 여러 회의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각종 온·오프라인 행사는 학우들의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며 성황리에 마쳤다. 갑작스럽게 취소된 와우플레이그라운드를 대신한 홍당무 마켓 또한 적절한 대처였다. 그러나 과연 ‘모든’ 학우에게 좋은 선본이었나? 이번 학기 홍대신문은 총학에게 여러 차례 취재를 요청했다. 그리고 이번 3면의 공약점검 기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기사에서 취재 요청은 거절 당했다.

정치 기관이 언론사와 충분한 소통을 하지 않고 일방적인 통보 형식만을 가진다면 이를 올바르다 볼 수 있는가?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MBC 전용기 배제’ 사건이 문제가 되는 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언론은 굵직굵직한 이슈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굵직한 이슈 원인 제공자인 현 정부, 즉 윤 대통령이나 대학으로 따지자면 총학에게 취재의 방향성이 흘러간다. 따라서 총학의 답변을 듣지 못했을 때 어떠한 사건에 여러 본교 기관이나 학우들의 단면을 잘라냈다 하더라도, 숨겨진 단면 하나를 발견하지 못한 느낌이 든다. 아직 이 건물의 구조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채 기사를 쓰게 되는 것이다.

총학에겐 여러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4월 보궐선거로 당선됐기에 이전 총학과는 짧은 임기 내 공약을 이행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학보사의 취재에 협조하지 않는 걸 합리화할 순 없다. 이는 비단 서울캠퍼스의 문제만은 아니다. 세종캠퍼스 모든 단과대학 학생회에 취재 요청을 했을 때도 취재에 협조한 곳은 조형대학 한 곳뿐이었다.

기성 언론사은 셀 수 없이 많다. 당연히 대통령은 그 모든 언론사의 취재 요청에 응답하지 못한다. 그러나 대학교 내 학보사는 단 하나다. 현 본교의 상황, 학우들의 생각, 또 총학의 상황을 정확한 글로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또 본교와 총학에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견제할 수 있는 기관이기도 하다.

곧 2023년도 서울캠퍼스 단결 홍익 총선거가 다가온다. 기자가 편집국장으로서, 또 기자로서 쓰게 되는 기사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에 후배 기자들이 새로운 학생회와 단면을 함께 자르고, 그들의 단면을 잘라내는 건강한 언론사를 만들어 나가길 응원하겠다. 또 본지의 독자들도 홍대신문이 학보사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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