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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의 시대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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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은 손잡이에 긴 끈을 달아 만든 물체이다. 손잡이의 작은 움직임은 끝으로 갈수록 커지며 큰 위력을 만든다. 이러한 채찍의 특성에서 따온 개념으로 ‘채찍효과’(Bullwhip Effect)가 있다. 채찍효과는 고객의 수요가 상부로 전달될수록 수요의 변동성이 증가하는 현상이다. 경영학 생산 부문에서 사용되는 개념이지만, 사회 현상을 설명할 때도 사용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문화방송>(MBC)을 제재했다. 지난 9일(수), 대통령실은 11일(금)부터 16일(수)까지 진행되는 동남아시아 순방 일정에 MBC 취재진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다고 통보했다. MBC의 외교 관련 왜곡, 편파 보도가 반복되어 온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에 대해 여러 언론협회들은 다음 날 긴급 공동성명문을 내며, 해당 결정을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정부 측 사과나 해명은 없었으며, 지난 18일(금) 대통령 약식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MBC의 전용기 탑승 불허에 대해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써 부득이한 조치였다”라며 기존 입장을 공고히 했다.

위와 같은 결정이 진정 헌법을 수호하려는 선의에서 비롯됐다 하더라도, 정부의 언론사 차별은 MBC 이외에도 여러 곳에 영향을 미친다. 일차적으로 여당 의원의 입에 영향을 미쳤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은 국민의힘 지도부 회의에서 “MBC는 윤석열 대통령과 현 정부에 악의적인 보도와 의도적 비난으로 뉴스를 채워왔다”라며 “삼성과 여러 기업들이 MBC에 광고로 동력을 제공하는 것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제 언론사에 광고하는 기업도 당사자가 됐다.

채찍효과는 경제적 비효율을 낳는다. 수요의 작은 변동이 상부 제조업체에 전달될 때마다 채찍효과로 인해 변동 폭은 커진다. 정보 왜곡은 제조업체가 정확한 수요를 알 수 없어 재고 관리를 어렵게 한다. 이는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간다. 기업이 재고관리에 발생하는 비용을 충당하고자 소비자가격을 올리기도 하며, 재고가 없어 소비자가 상품을 제때 받을 수 없는 상황도 직면하게 된다.

MBC에 광고를 중단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대기업이 해당 말에 민감하게 반응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광고가 주 수입원인 대한민국 언론 현실상 여당 의원이 광고주에게 압박을 가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언론사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언론사의 논지에 따라 차별할 수 있다는 정부의 언론관은 언론사가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를 지양하게 만들며 정부 눈치를 보는, 소위 ‘알아서 기어야 하는 상황’을 만든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여러 언론 단체들이 해당 결정을 규탄하는 이유는 이러한 논리에서다.

채찍효과를 줄이는 방법은 교과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첫째는 공동계획 및 공동실행이다. 몸집이 거대한 중앙정부가 공동으로 행동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지만, 중간 체계를 건너뜀으로써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윤 정부는 청와대를 나와 용산 청사 시대를 열며 아침마다 도어스테핑을 시작했다. 청와대 시절 대통령 밑 인사를 건너 건너 언론사로 향하던 정보 흐름이 ‘대통령-언론사-국민’으로 간결해졌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도구임에도 한계는 나타났다. 윤 대통령은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기도 했다. 18일(금) 도어스테핑에서 MBC가 악의적인 보도를 한다고 규정한 대통령에 대해 한 MBC 기자가 “무엇이 악의적 보도냐”고 물어도 윤 대통령은 직접 답변을 피했다. 둘째는 정보 공유다. 정부는 정보를 언론에 공유해 채찍효과를 줄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최근 대통령 전용기에서 친분 있는 기자 둘만 따로 불러 1시간가량 비공개 대화를 나눴다. 그저 사적 대화였다는 정부의 해명에도, MBC 기자의 전용기 탑승 불허를 미루어 볼 때, 언론 길들이기의 신호로 해석된다.

언론사는 정보를 소비하고 싶은 소비자들의 수요에 응답하여 형성된 기업이다. 채찍효과로 인한 정보 왜곡으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결국 정보 소비자인 국민이다. 권력이 언론에 채찍을 드는 것이 위험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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